딸들에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기를
비가 그쳤다 오전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더니 오후가 되니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었다. 다시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었다. 우리 네 식구는 빵집으로 향했다. 빵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다가 서점으로 향했다. 우리 집 주말의 오래된 습관이다. 아직까지는 아이들이 잘 놀아준다.
첫째 딸은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한다. 둘째는 춤추는 것을 좋아한다. 서점에 가면 각자 관심 있는 책을 보러 흩어진다. 읽고 싶은 책을 한 권씩 사서 책을 볼 카페로 간다. 그러니 둘째는 서점에 오면 심심하다. 다음 행선지도 책을 읽으러 가는 곳이니 흥이 날 일이 없다. 그렇다고 같이 춤을 춰 줄 수도 없으니 어떡해야 할까.
두 딸들이 고1, 중1이 되었다. 아직까지 엄마, 아빠와 잘 놀아주고 어디를 가든 함께 나선다. 나는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아이들과 친구가 되기를 바랐고 친구처럼 지냈다. 되도록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보내려 했는데 운이 좋게도 지금까지는 남들보다 더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며 지낼 수 있었다.
아이들은 최근 몇 년 사이에 훌쩍 컸다. 자기 생각과 취향이 뚜렷하고 아빠를 닮아 고집도 세다. 어릴 때처럼 적당한 사탕발림으로 부모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나이다.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에 변화가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호자로서의 부모에서 상담자로서의 부모의 역할이 커져간다.
상담자는 들어주는 사람이다. 우리가 누군가의 속내를 듣고 싶다면 내 생각을 먼저 강요해서는 안 된다. 위에서 내려보는 시선으로도 가르치려 하여도 상대의 진심을 들을 수 없다. 함께 고민하고 공감하는 사람으로 가장 편한 관계는 친구 사이가 아닐까. 나는 딸들과 놀아주는 친구에서 이야기하는 친구가 되고 싶다.
부모이자 친구로 자식들과 지내기 위하여는 변화와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나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하여 화내거나 잔소리를 하지 않을 것. 이 부분이 내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세상에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 천지인데 내 자식이란 이유로 먼저 화를 내거나 잔소리를 하게 된다.
생각을 나누기 위해서는 생각이 다른 이유가 미숙함이 아닌 입장과 경험의 차이에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야 한다. 그 전제 위에서 상대를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부모는 자식들의 입장이 나의 어린 시절과 같으리라는 전제에서 이야기를 할 때가 많다. 자식이건 부모이건 서로 말이 안 통한다 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세대와 환경, 나이가 다른 자식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까, 공감이 가능할까. 비슷한 세대와 환경, 나이라고 하여도 상대를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오히려 이해와 공감은 비슷한 처지를 떠나 이해하고 자하는 의지와 노력의 결과가 아닐까. 우리는 수 백 년 전에 쓰인 고전에도 공감하지 않는가.
잘 듣는 데는 연습이 필요하다. 끝까지 듣기 전에 툭하고 결론을 말하거나 어설프게 조언을 해서는 안된다. 나는 여자들과 말하는 법을 배우는 데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존 그레이)만 한 책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남녀를 떠나 우리가 모두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대화를 할 때는 경청이 우선이다.
나는 딸들과 아주 잘 논다. 이제 놀아주는 쪽은 딸들이다. 요즘에는 아빠, 엄마와 놀러 나온 아들, 딸들이 많이 보이니 단지 우리 집만의 변화는 아닌 모양이다. 나는 두 딸이 중년이 되고 노인이 되어서도 지금처럼 나와 놀고 싶어 하면 좋겠다. 내가 언제나 재미있는 아빠로, 친절한 조력자로, 진실한 상담자로 옆에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