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기분을 내어보자.
어제저녁에는 수박 반통을 속을 비우고 사이다를 담아 수박화채를 만들었다. 작년 익선동에서 열린 칠성사이다의 팝업 스토어에서 기념품으로 받은 사이다이다. 오래전 레시피를 재현한 사이다인데 과당이나 대체당이 아닌 순설탕을 넣어 만들었다. 요즘 같이 칼로리를 죄악시하는 분위기에 대담한 역발상이다.
미국에서는 트럼프의 주도로 코카콜라에 과당 대신 설탕이 들어가기로 했다는 뉴스가 들린다. 미국의 대통령은 국민의 입맛까지 꼼꼼하게 챙기는가. 멕시코의 코카콜라에는 이전부터 과당 대신 설탕이 들어간다. 미국에서도 멕시코산 콜라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설탕을 넣은 쪽이 왠지 더 맛있다고 생각한다.
전 국민에 민생지원금이 나온다고 하여 동사무소를 들렀다. 서류를 한참 적어 내었는 데 나의 주소지는 다른 구로 되어 있어 접수를 못했다. 주민등록상 주소지의 해당 구청과 주민센터에서만 접수가 된다고 한다. 공돈이 생긴다고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좋다. 이런 기분이 소비를 증진시키는 것이구나.
오늘은 금요일이라 금요일의 기분을 한껏 내어보려 했다. 점심에는 특식이랍시고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먹었다. 모자람이 없는 시대에는 배불리 먹는 것보다 조금 부족하게 먹는 것이 미덕이다. 앞으로 생일날에는 축하하는 사람들이 모여 기념 단식을 하면 어떨까. (나부터 해보라면 대답은 No 입니다만)
퇴근하고 아내의 집밥을 먹었다. 금요일이기 때문에 치킨도 한 마리 배달시켰지만 아내의 음식에 비할 바가 못 되었기 때문에 그다지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치킨을 세 조각이나 남겼는 데 우리 네 식구에게 이는 전무한 일이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 나는 절재를 잃고 항상 넘치게 먹는다. 후회가며 또 반복하는 것이 인생인가.
저녁밥을 먹으며 <소풍>이란 영화를 보았다. 노배우들의 명연기에 비하여 결론은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이다. 젊은이들이 보는 노인이란 아프고 불편하고 좌절하며 내리막이기만 할 것 같지만 그렇다고 노인들이 결코 쉬이 죽음을 결심할 만큼 약하지도 않다.
역시 금요일의 기분을 내어 보려 늦은 시간에 딸과 함께 집 앞 카페에 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 나는 꾸벅꾸벅 졸다가 깨기를 반복하고 있다. 10시가 넘었는 데 카페는 여전히 북적인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커피숍에서 금요일을 즐기는구나. 나는 대부분의 주말 저녁을 술과 함께 지냈다. 그때는 그게 낭만이라고 생각했다.
토요일의 상쾌한 아침을 위하여 이제 잠을 청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