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성공의 왕좌를 지킬 것인가.
이번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사를 오며 가장 많은 부피를 차지한 짐은 나의 책들이었다. 서재 안 책들은 나의 전리품들이다. 책을 읽은 시간과 책을 읽는 동안의 생각들이 페이지마다 녹아들어 있다. 이 책들 중에 몇몇 책은 여러 번 다시 읽기도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 책들도 많다. 하지만 서재에서 제목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서재는 영감을 주는 공간이다.
아내는 나보다 책을 많이 읽지만 나와 책에 대한 다른 감성을 가지고 있다. 아내는 이사할 적마다 가지고 있는 책을 박스 채로 내다 버린다. 어릴 적에는 방안에 만화책들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책을 버리다니, 나로서는 이해가 안 가는 일이다. 아내는 책의 물성에 집착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여러 해 전부터는 전자책을 가지고 다니며 읽는다.
나는 출장이 많다. 비행시간 중이나 아침, 저녁의 혼자만의 시간은 책을 읽기에 딱 좋은 시간이다. 그래서 두껍고 무거운 책 대신 전자책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을 했다. 결국에는 '종이를 넘기는 느낌이 좋아서', '이미 읽은 부분을 빠르게 찾아보지 못해서'라는 변명으로 전자책 읽는 것을 포기했다. 리더기도 생각날 때마다 충전을 하지만 정작 그때뿐이다. 신문과 책은 종이로! 구세대란 나같이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이들을 말한다.
요즘은 나의 독서 슬럼프에 빠져있다. 최근에 여러 권의 책을 읽다가 중도에 포기했다. 그럼에도 다시 서점에 가서 재미있는 책이 없을까 하고 고르게 된다. 독서에 대한 열망은 있지만 내 입맛에 맞는 책을 찾지 못했거나, 나의 상황과 정서가 책을 읽기에 적당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책 보다 재미있는 소일거리가 더 많이 생겼다. 책의 느린 전개가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변화일까.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一日不读书,口生荆棘, 루쉰)라는 말을 듣고 자란 나의 세대는 여전히 책에 대한 여러 신화를 지니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책은 여전히 대체될 수 없는 쓰임을 지니고 있다고도 말한다. 나도 이 말에 반쯤 동의하면서도 동시에 정말 책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가 있을까 하고 의심해 본다. 우리 시대에 마치 성공의 필요조건처럼 여겨지던 독서는 여전히 그 왕좌를 지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