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불인즉란대모(小不忍則亂大謀)
이제 저의 회사생활도 어느덧 19년 차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저는, 이 거대한 회사에서 어떤 자세로 어떻게 임해야 하는지를, 또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정말 참고 참다가도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나.', '아니꼽고 더러워서 원…', '내가 이렇게까지 참고 회사 생활을 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들이 차례로 머릿속을 때리며 울화통이 터지는 순간도 가끔 생깁니다. 하지만, 그래도 제가 계속 참고 견뎌야 하는 게 맞는 건지를 진지하게 고민을 할 때도 간혹 있습니다.
한편, 저는 “업무개선”이라는 직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엔 조직의 자율성을 강조하다 보니, 개선 업무를 하다 보면 예전보다 현업(現業)의 반발이 훨씬 더 거세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업 부문을 잘 리드하지 못하면 오히려 역공(逆攻)을 당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한, 자칫하면 강압적이거나 독단적으로 비칠 수 있는 소지가 있어 언행이나 보고서의 문체에 더욱더 신경을 써야 하지요. 그래서 요즘에는 이런 “업무개선”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현업의 눈치를 미리부터 보는 탓인지, 오히려 내부적으로 더 많은 제한을 두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현업과의 관계가 틀어지게 되면 관리부문의 리더들 또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인데요. 그러다 보니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식의 어중간한 태도로 큰 문제를 덮고 가거나 혹은 문제를 축소시켜 서로 대충 짜고 정리하는 식의, 제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현안(懸案)을 정리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의 '보고서'는 Top-down으로 하달받은 업무가 아닌 이상, 현상과 문제점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개선방안이 도출되어야 하고 또한 결론에는 보고자의 의견이 명확하게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수많은 Data를 분석해서 내린 결론이라면, 심지어 엑셀의 행수(1,048,576행) 보다 더 큰, 105만 개가 넘는 샘플을 통해 얻은 것이라면(엑셀 파일 2개로 각각 피벗을 걸어 겨우 도출된 것이라면) 더욱더 명확한 결론이 내려지겠지요. 그러나 만약 보고를 진행하는 도중에, 그 보고서의 결론이 뒤집어진다면, 보고서의 원작자(原作者)는 매우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가령 대중가요의 곡을 쓰는 것에 비유를 하자면, 작곡가가 곡에 어울리는 노랫말까지 모두 완성해 왔는데 제작자가 노랫말을 전부 바꾼다거나, 혹은 원곡의 멜로디와 리듬을 가져오긴 했지만 원곡의 느낌과는 매우 다르게 제작자가 편곡을 하는 것과 유사하다 할 수 있을까요.
아무튼 저는 저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대규모 프로젝트를 묵묵히 혼자 수행했습니다. 게다가 저는 4월 초 벚꽃이 완연(宛然)하게 개화(開花)했던 특급주말까지 바쳐가면서 본문 8장에 첨부 30장인 보고서를 완성했고, 장장 2주에 걸쳐 내부 보고까지 끝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레 석연치 않은 사유로 담당이 변경된다는 말을 들으니 저는 그저 머리가 띵 할 뿐이었습니다. 그것도 담당자가 연차가 얼마 되지도 않은 직원 2명으로 바뀐다고 하니 말이지요. 심지어 제가 분석한 Data를 기반으로 도출된 모든 개선안이 윗분들의 입맛에 맞게 전부 새로 바뀌면서 현재 해당 프로젝트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더구나, 그 프로젝트를 최초로 기획하여 보고서까지 쓰고 또 보고까지 직접 했던 제가 그 프로젝트에서 힘없이 배제되었으니 이건 뭐 울컥할 겨를도 없이 바로 그냥 돌아버리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거기에 더해, 일부러 의도한 건지는 몰라도 그들이 제 자리 근처 테이블에서 회의를 하면서 제가 도출한 결론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것을 굳이 제 옆에서 들려주니 정말 울화통이 터지겠더라고요.
그러자 저는 이런 상황을 견디기 어려워 윗분들께 개인 면담을 신청했고, 그 결과 조직의 리더들과 꽉 막힌 회의실에서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요. 그들은, 조만간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다소 더러운 업무를 할 적임자가 저 밖에 없다는, 구차한 핑계를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그 때문에 제가 수행 중인 개인 프로젝트를 어쩔 수 없이 다른 직원들에게 넘기게 됐다는, 다소 비겁한 말을 했습니다. 사실 그건 명백하게 선후관계(先後關係)가 뒤집어진 거였습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저는 더 이상 뭐라고 할 수 없었네요. 그래서 저는 힘없이 그냥, 알겠다는 답을 하고는 회의실을 나왔습니다.
논어(論語)에 ‘소불인즉란대모(小不忍則亂大謀)’라는 말이 나옵니다. 작은 것을 참지 못하면 대사(大事)를 그르친다는 뜻인데요. 제 보고서는 나름 괜찮았지만 제가 제안(提案)한 개선안(改善案)이나 혹은 문제해결 방법론이 조직의 리더 뜻과 다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들의 방식대로 일을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머리가 큰 저 같은 사람보다는 그나마 말을 잘 듣는 어린 직원들이 필요했겠지요. 그러자 저는 그제야 논어에 나온 그 말의 무게를 실감했습니다. 절제(節制)와 인내(忍耐)는 덕(德)을 가진 자의 중요한 덕목(德目)이고 큰 일을 앞두고는 더욱 큰 인내가 필요하다는 그 의미를요. 물론, 그때 저는 그래도 그들 앞에서는 참고 참으면서 저의 속내를 드러내진 않았습니다. 더불어 저는, 당시 제가 느꼈던 더럽고 아니꼬왔던 감정까지 겨우겨우 죽였습니다. 하지만, 그랬다면 계속해서 참았어야지, 뒤에서 괜한 분통을 터뜨리지는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지난주 내내 욱 하는 마음에 짜증과 분노를 제 얼굴에 팍팍 표출하던 소인배(小人輩) 같은 저는, ‘소불인즉란대모(小不忍則亂大謀)’를 깨닫기에는 저의 인성(人性) 수양(修養)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여기까지 쓰다가 문득 책상의 시계를 보니, 일요일 밤이 순식간에 끝났습니다. 짧았던 주말이 이제 다 지나버렸네요. 회사 내에서 저의 위상(位相)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월요일에 출근하면 다시 또 새롭게 시작될 것 같습니다. 해외 주재원으로도 고충이 많던 저는 본사로 귀임(歸任)하면 모든 것이 다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요. 하지만 그게 또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다시 한국 특유의, 혹은 이 회사 특유의 조직사회로 던져진 저는, 스스로 살 길을 찾고 인내하는 법을 빨리 체득해야 마음의 병(病) 없이 직장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23년 4월의 이스탄불은 라마단(Ramadan) 금식(禁食) 기간이 끝나 축제가 시작되는 봄이라면, 2023년 4월의 서울은 흐리고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저에게는 조금 잔인하게 느껴지는 봄입니다.
(참고)
이 글은 2023년 4월 말의 어느 일요일에, 개인 페이스북(Facebook)에 썼던 글입니다. 그런데, 직장생활 22년 차에 접어든 지금 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 좀 씁쓸하고 안타깝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