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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연속 야근하고 이틀 연속 술자리

아, 직장생활 진짜 어렵다

by freejazz


그렇다. 직장생활 진짜 어렵고 힘들다. 이틀(월, 화) 연속 야근하고 이틀(수, 목) 연속 술 마시고 나니 금요일이 되었다. 그렇게 술이 덜 깬 금요일 아침, 알코올 분해를 위해 숙취 해소 음료를 입 속에 때려 넣고 기적적으로 출근했다. 게다가 술 마신 다음날엔 어쩔 수 없이 자주, 택시를 잡아타고 출근을 하는데, 그날따라 잡힌 택시는 기사 아저씨께서 뭐가 그렇게 급하셨는지 아침부터 걸리는 신호에서마다 마치 롤러코스터에 탄 느낌을 받았다. 주황불에 속도를 미친 듯이 올리거나, 혹은 급브레이크를 밟는다거나 하는, 말하자면 일종의 난폭운전이었는데, 심지어 내가 탑승한 차는 알고 보니 전기차였다. 그래서 회생제동(回生制動)까지 또 난리 법석이어서... 심한 울렁거림 탓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직전, 나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뒤 택시에서 겨우 내렸다. 그러자 당장이라도 휴가를 써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어쨌든 사무실까지 왔으니 일단 자리에 들어가서 앉았고. 술을 깨기 위해 나는 시원한 탄산음료를 계속 벌컥벌컥 들이켰다. 닥터 페퍼(Dr. Pepper)... 요새 또 이거 없음 술 먹은 다음 날 절대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나의 최애(最愛) 음료인데, 그날따라 그 닥터 페퍼의 유니크(Unique)한 체리향(香)이 한편으론 잭콕(Jack & Coke) 느낌으로 번져서... 아... 이건 뭐... 낮술도 아닌 아침 해장술을 마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점심시간까지만 버텨보자는 심정으로 전날에 쓰다만 보고서를 계속 보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아침부터 카톡이 계속 울렸다. 발신자는 사무실 근처에서 부동산 관련 자영업을 하고 있는 고등학교 친구. 오랜만에 점심시간에 일하지 않고 좀 쉬려 했는데... 이 놈이 또 회사 앞까지 찾아온단다. 젠장... 그래서 억지로 점심식사를 같이 했는데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하마터면 그 친구가 하는 말에 다 속아 넘어갈 뻔했다. 그러다 오후엔 보고서에 들어갈 고차원적인 그래프(고등학교 수학 때 배우던 가우스 함수 같은 것!)를 그리다 그제야 술이 완전히 깼다. 그런데 그렇게 한창 일을 하다 보니 퇴근시간을 넘겨 또다시 야근을 했고... 야근과 회식, 그리고 억지 휴식이 마치 도돌이표처럼 계속되는 그런 직장생활이 힘겹게 이어지고 있었다.


한편, 이틀 연속으로 야근을 하고 왔던 날인 화요일 밤엔, 집에 도착하니 거의 밤 열한 시가 되었는데, 웬일인지 맞벌이하는 아내가 저녁밥을 다 차려주었다. 그리곤 곧 첫째 아이 학원 픽업 다녀와야 한다며, 저녁식사도 못 하고 그 시간까지 일했냐며 너무나도 쿨하게 말하고는 아내가 기가 막히게 맛있는 반찬을 내놓는데, 고3 때 수능시험 2교시 수리(數理) 영역(→ 언젠가 "수학" 영역으로 바뀌었는데, 그 당시에는 분명히 "수리" 영역이었다.)을 개(?) 망치고 나서 어머니께서 정말 정성스럽게 싸주신 도시락을 열었을 때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1996년 11월, 역대급 "불수능"이었던 그 해 수학능력시험. 특히 수리영역은 최상위권만 변별력이 있었을 뿐, 중위권 이하는 잘 찍은 하위권과 같이 묶였던, 그 미친 난이도. 그래서 그 시험의 영향을 받은 나는, 그날 일제(日製) 보온(保溫) 도시락의 뚜껑을 열었을 때, 어머니께서 아들내미 시험 잘 보라고 말도 안 되는 반찬을 싸주신 걸 발견하고는, 뭔가 되게 미안함에 고마움까지 겹치면서 목이 메어와 이걸 입으로 먹는 건지 아님 코로 먹는 건지도 모르게, 밥이 막 우걱우걱 입으로 계속 들어간 그때의 그 느낌과 비슷한, 아무튼 뭐 그런 느낌이 그 늦은 시간에 들었다. 이윽고 첫째 아이는 학원에서 돌아왔고, 이틀 만에 본 아빠의 모습에, 이틀간 한국 프로야구, 즉 KBO리그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줄줄이 읊었는데, 이게 과연 이틀간 일어난 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새롭고 낯선 사건들이 내 머리를 때렸다. 그렇게 화요일 밤이 깊어갔고... 하지만 늦은 시간에 밥을 꾸역꾸역 먹어서 그랬는지 그날따라 잠이 오지 않았다. 아니, 잠을 잘 수가 없었을 거다. 마치 다음 날 일어날 일을 미리 예상이라도 하듯이. 사실 이게 미친 듯이 바쁘다 보면,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는 뉴스조차도 잘 모르고 넘어가는 일이 생긴다. 그때도 물론 그랬다. 나는 정말 미친 듯이 바빴고, 심지어 보고서 3개를 동시에 쓰고 있었는데, 내용이 혼합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일 정도였다. 그때 누군가는 옆에서 미국 비자 얘길 했고, 누군가는 대놓고 지금 미국 출장은 나가면 안 된다고 했다. 음.. 그걸 듣고 있던 나는, "그래? 지금 미국 가면 뭐가 있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일에만 집중을 했는데, 상호관세 말고 또 뭐냐.. 뭐 이런 자세로.. 그냥 지금 하는 거 빨리만 끝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또 버티고 있었다. 한편, 아침마다 받아보는 조간신문은 읽지도 펼치지도 못한 채 집 한구석에 쌓여만 가고 있었다.


그러다 수요일 아침이 되었는데, 갑자기 인사팀에서 그것도 인사팀장이 직접 나를 호출했다. "어? 뭐지? 왜? 나를?" 아무튼 그런 생각을 잠시 했지만 오래 생각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없어, 어쩔 수 없이 급박하게 면담에 응했는데, 물어보는 게 "혹시 추석 때 일정 있으세요?" 였다. 그러자 나는 "이 사람이 나를 어디를 보내려고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되받아쳤다. "추석 때 일정 없는 사람도 있습니까?" 라고.. 그러자 그가 뭔가를 줄줄이 사탕으로 읊어댔다. 위에서 당신을 찍었고, 우리 조직에선 당신이 필요하고... 뭐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통상적으론 그런 파견은 그들이 제안한 기간보다 길어지니까, 그때 두 달 정도를 제안했다면 아마 최소 석 달 이상 걸릴 거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되면 연말이 되겠구나 싶었고. 그럼 나는 그때 어디에 있을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이 순식간에 내 머릿속에서 계산이 되었다. 미국, 현지사, 파견, 그리고 약 8주 정도의 기간. 보통 수요가 있는 쪽에서 뭔가를 제안하면 그에 합당한 trade-off 같은 것들도 따져봐야 하는데, 이건 그런 계산도 하기 전부터 급박하게 나오는 거라 뭔가 수락하기 어려운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시국에 미국을? 그것도 비자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뭐 그런 게 컸던 것 같다. 그래서 그랬는지 수요일과 목요일에 있던 술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직원들에게는 알려주진 않았지만, 뭔가 매번 이렇게 트레이드 카드로만 활용되는 내 자신이 좀 불쌍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당연히 그에 대한 영향이 있었기에 혼자서 더 오버하며 술을 쭉쭉 들이켰다. 앞자리에 계신 전(前) 팀장님께서 말릴 정도로 빨리. 심지어 안주로 나온 전어 세꼬시를 씹다가 소주를 들이켜니 목이 막 따끔따끔해지기도 했다. 아 몰라, 미국 가기 싫어… 그래서 추석연휴 때 별다른 일정이 없었다면 뭔가를 만들어서라도 "못해, 못가." 라고 말했을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편, 나는 인사 관련 업무를 하는 후배직원에게 이 사실을 유일하게 털어놨는데, 하지만 그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윗사람들에게 미리 빚을 지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어려운 시기에 그 제안을 흔쾌히 수락한 뒤 파견을 가면, 돌아와서 뭐라도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만약 그런 나의 역(逆) 제안들이 당장 실현되진 않더라도 나중에 꼭 필요한 시기에 이 건을 내세워서, 윗선에 있는 누군가가 마치 나에게 빚을 진 것처럼 해놓는 것도 좋지 않겠냐는... 그리고 또 직장에서는 간혹, "예스맨(Yes Man)" 이미지도 만들어줄 필요도 있다면서...


그리고 지금, 어렵게 맞은 주말, 머릿속이 아주 복잡하다. 나에게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나"인지 아니면 "가족"인지, 혹은 "나의 일"인지 아니면 "조직의 일"인지. 주재원으로 있던 기간 동안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다른 아빠 주재원들에 비해 나의 근무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아 가족들이 늘 불평불만으로 가득 차도 나는 당연히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는데, 가족들은 그런 나에게 큰 불평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몇 차례 외국에서 응급실을 들락거리던 아빠가 혹은 남편이 좀 불쌍했는지, 항상 걱정 어린 말을 해줬다. 나는 그게 늘 고마웠는데, 얼마 전에 다시 찾은 터키에서 가족들이 사실은 그때 그런 내가 조금은 원망스러웠다는 얘길 했었다. 거의 처음으로. 그나마 이젠 시간이 좀 지나서 별 큰 느낌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그런 말들이 나온다 하면서. 그런데 한국으로 다시 들어온 지 3년 반이 넘었지만, 사실 여기에서도 나는 크게 변한 건 없었다. 본사로 복귀한 뒤에도 나는 늘 회사에서 바빴고 또 직원들과 술을 자주 마셨다. 물론 가족들과는 주말에 같이 시간을 보내긴 하지만 가족들이 요구하는 그 정도의 수준으로는 혹은 그들이 원하는 눈높이로는 맞춰주지 못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점점 커가고 나도 점점 늙어갔다. 한편, 회사에서 오래 앉아 있는다고 야근을 밥 먹듯 한다고 인정해 주는 시대는 이미 한참 전에 지났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걸 원하진 않는다. 그러나 남들이 기피하는 업무는 늘 나에게 온다. 게다가 나는 항상 정공법(正攻法)과 정합성(正攻法)만 강조하느라, 뭔가를 끝까지 파헤치면서 결과물을 가져오지만, 그로 인해 가족들이, 남들과 다른 나를 힘들어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일주일 치 일간지과 경제지를 이제야 읽는다. 다음 주엔 야근도, 회식도 좀 없었으면 좋겠다.




(사진 1) 테헤란로의 초저녁,

매일 이 시간에 퇴근할 수 있음 정말 좋겠다.




(사진 2) 테헤란로의 초저녁,

창밖으론 오늘도 해가 지고,

이제 연장근무 내지는 잔업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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