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주재원 4년 차) 연차가 쌓여도 주재원은 힘들다
(주재원 4년 차의 여전한 고충, 인간관계)
이 머나먼 타국에서 해외 주재원으로 근무한 지 만 3년이 지나 이제 이곳 생활 4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별다른 사유가 없는 한 올해까지가 저에게 주어진 임기이며, 내년 초에 후임 주재원이 부임하면 몇 주간의 업무 인수인계 후에 저는 다시 한국 본사로 귀임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이곳 생활도 딱 1년 여가 남은 셈이죠. 그런데 무엇보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정말 쉽지 않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만 3년이 지난 지금도 고비 때마다 그 어려움을 계속 느끼고 있을 정도니까요. 한편, 주재원 본인이 일을 하면서 느끼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그렇다 치더라도 가족들의 인간관계는 쉽게 헤쳐 나갈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그중 아이들의 국제학교를 중심으로 맺어지는 타사 포함 여러 주재원 가족들과의 관계가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인데요, 가깝게 지내던 여러 가족을 떠나보낸 저희 가족에게는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이 조금은 지쳐가는 것 같습니다. 특히, 편하게 지내는 (주로 타사의) 주재원 가족이 떠날 때 느끼는 상실감은 생각보다 큰 것 같네요. 이웃에 살던 관계사 주재원 가족을 지난 연말에 떠나보내면서 이제 저희 가족만 남아버린 이 단지에서 저는 조금은 우울하게 한 해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1년 내내 쉼 없이 일만 하느라 매우 지쳐있던 저는, 이슬람 문화권이라 유럽이나 미주의 성탄절과 연말 같은 연휴가 없는 이곳에서도 과감하게, 코로나로 사용하지 못했던 하기휴가를 뒤늦게 내서 성탄절 당일부터 주말 포함 열흘 간 집에서 가족들과 푹 쉬었습니다. 이곳 정부의 통행금지 시행 탓에 저는 가까운 마트나 쇼핑 몰 정도 방문한 것 말고는 줄곧 집에서 시간을 보냈는데요, 그동안 주중에는 퇴근 후 집에서 야근, 주말에도 재택근무를 하던 터라 잊고 지내던 일상을 누려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습니다. 대개는 코로나로 일상을 빼앗겼다고 하지만 저는 일상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집에서 빈둥빈둥 대면서 쉰 것만으로도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 달 전 코로나 확진자가 일 3만 명 대에서 지금은 일 1만 명 대로 줄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확진자가 나오고 있는, 미국-인도-브라질-러시아-프랑스-영국에 이은 누적 확진자 세계 7위 국가에서 올해도 별 탈 없이 가족 모두 건강하게 잘 버티고 귀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그런데, 연차가 쌓여도 주재원은 힘들다.)
기본적으로 분업화된 조직을 갖춘 대기업에서 일을 하면서 아무리 업무분장을 칼 같이 해놓는다 한들 경계에 있는 일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일을 할 때에도 자신의 영역을 가둬놓고 그 경계 밖의 일에 대해서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회사만 그런지 아니면 이 회사에서 제가 근무하는 곳만 특히 더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같은 언어를 쓰고 있으면서도 소통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참 많고 어느 정도 소통이 된다 하더라도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는 것 같네요. 업무뿐만 아니라 주재 생활 측면에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 그리고 가족과 가족 사이에는 서로 감추고 싶어 하는 게 많은 것 같습니다. 나와 내 가족의 살 길만 챙기다 보니 무언가를 공개적으로 알려주기를 꺼려하지요. 특히, 이곳은 한국 음식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보니(정부에서 수입 규제를 심하게 합니다.) 누군가가 어떤 아이템을 어떻게 구하는지 정보를 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특히 출장자가 현저하게 줄어든 코로나 시국에는 이게 더 심한 것 같네요. 그런데 때로는 이웃집 아이들에 의해 "우리 집에 너구리(라면)가 들어왔다. 아버지가 출장도 다녀오지 않았는데 갑자기 회사에서 가져오셨다."는 정보가 의도치 않게 전해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 집 어머니께서는 다급하게 아이의 입을 막고 뭔가를 숨깁니다. 심지어 “안녕하세요. 어제 누구 만나셨어요?”라고 물었는데, “네, 어제 누구 좀 만나고 왔어요”라고 대답하는 경우도 허다(許多)합니다. 누군가를 만났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만난 사람이 누군지를 확인하는 질문인데, 이런 식으로 대답하면 그다음부터는 서로 대화하고 싶지 않죠. 이런 관계 참 답답하고 불편합니다. 특히, 직설적이고 시원시원하게 묻고 대답하고, 또 뭔가 마음에 안 들고 하는 게 있으면 바로 말해버리는 타입의 저에게는 꿍하고 숨기고 피하는 사람들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어쩌면 그들도 저와 같은 사람들이 잘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고 또 저 같은 사람들로 인해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머나먼 이국 땅에서 굳이 불편함을 이겨내며 대화하는 것보다는 그냥 외로운 왕따 주재원으로 지내는 게 더 나을 것 같기도 합니다. 직장생활도 쉽지 않고, 해외 주재원 생활은 더더욱 쉽지 않고, 타국 생활 또한 녹록지 않네요.
(이스탄불의 겨울 이상기후)
이스탄불은 지난 10월 33년 만에 가장 더운 10월을 기록한 이후 11월에도 이상 고온을 보이다가 12월 낮 기온도 영상 15도 이상으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저희 단지에는 벌써 봄 꽃이 피었고요. 12월 말 휴가 중에도 낮기온은 18도 정도였고 새해를 맞아서도 역시 비슷한 기온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지 내에서 산책하는데 7부 바지 입고 후드 티 하나 입고 합니다. 물론 마스크는 꼭 쓰고 있고요. 원래 이스탄불의 겨울은 눈비가 자주 오면서 흐리고 습하고 우중충한 게 특징입니다만, 올해에는 그런 날이 11월에만 잠깐 보이다가 사라졌습니다. 이 겨울이 지나면 이제 이곳에서는 모든 계절이 딱 한 번씩만 남게 되네요. 겨울 다운 겨울이건 따뜻한 겨울이건 어떻게든 계절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덧붙임)
이 글은 2021년 1월 초에 귀임을 딱 1년 남겨두고, 개인 facebook에 썼던 글입니다. 그리고 위의 사진은 이스탄불의 날씨 정보인데요. 우리나라는 최저기온 - 최고기온 순으로 표시해서 옷차림을 최저기온에 맞추는 반면, 터키(現 튀르키예)는 최고기온 - 최저기온 순이어서 이곳 사람들은 옷차림을 최고기온에 맞춥니다. 그래서 언제라도 반소매 차림이 될 수 있도록 하죠. 심지어 반소매에 가죽점퍼 혹은 반소매에 패딩점퍼 이런 조합의 옷차림도 많습니다. 사실 저도 그랬습니다. 저도 뭔가 이곳 사람들과 같은 유목민(遊牧民)의 피가 제 몸에 흐르는 것 같았거든요. 한편, 날짜표기도 우리는 "연-월-일"인데 반해 대부분의 서양 국가는 "일-월-년" 이렇게 표기하죠. 터키(現 튀르키예)도 그렇습니다. 뭔가 순서가 우리가 익숙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구조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1월에 신년을 시작하는 건 어디나 다 같았습니다. 지금은 2026년 1월의 서울이고 이때는 벌써 5년이나 지난 일인데, 1월이 되니 그때 그 따뜻했던 현지의 겨울이 불현듯 생각이 났습니다. 연차가 쌓여도 힘들었던 주재원 4년 차의 고충(苦衷), 5년이 지나니 이젠 저도 그 고충이 왜 생기는지 그나마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 너구리 라면에 대한 부연설명
과거 2014년, 터키(現 튀르키예)에 수출하려던 '삼양라면'에서 GMO가 검출 돼 전량 회수 폐기된 사례가 있습니다. (※ 참고 보도자료 : 'GMO라면'사태로 본 한국의 허술한 GMO 관리) 그래서인지, 터키 현지에서는 한국 라면 구하기가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제가 주재 생활했을 땐 사실상 불가했었죠. 심지어 이스탄불 시내에 몇 개 없는 한인 마트에 가도 오히려 중국이나 아시아 식품이 더 많았고, 한국 식품은 들어오자마자 거의 바로 다 팔려버려서 그랬는지 뭔가 눈에 들어오는 건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현지 한국 식당에서도 라면은 끓여서 팔았지만, 라면 제품 자체를 팔진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희는 주재 중 1년에 한 번 있는 본국 휴가 때 한국에 들어가면 수하물이 초과되어 페널티를 낸다 하더라도 한국 식품을 엄청나게 담아 핸드 캐리(Hand Carry) 해서 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라면은 유통기한이 그리 길지 않아 유통기한이 지나면 흔히 말하는 "라면 쩐내"가 났는데요. 사실 이건 산패(酸敗) 신호이므로 먹지 말고 버리는 게 안전합니다. 그래서 그런 경우엔 아이들에게는 현지에서 조달한 면에 한국 라면 수프를 첨가한 사실상의 한국 라면을 제공했습니다. 그렇지만 기름 쩐내가 나는 면은 또 버리기엔 아까워서(아마도 이걸 어떻게 가지고 왔는데... 뭐 이런 생각 때문이었을 겁니다.) 저나 아내가 먹어서 잘 처리(?) 했었죠. 그래서 한국에서 출장자들이 들어올 때면 출장자분들에게 한국 라면을 사달라고 부탁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하지만 이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가장 접하기 쉬운, 그리고 가장 무난한(?) "신(辛)라면"을 가장 많이 사 왔습니다. 물론, 간혹 가다 "진(眞)라면"이나 "안성탕면" 정도 사다 주시는 분들도 있었고 또한 국물 라면이 아닌, "짜파게티"나 "비빔면" 혹은 "불닭볶음면"을 제공해 주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엔 이분들이 출장 오시기 전에 저에게 무슨 라면을 좋아하냐고 묻는 경우에 한해서였던 것 같은데요. 그들의 질문에 저는 마지못해 제품명을 알려줘서 아주 다행스럽게도 원하는(?) 라면을 받게 되는 경우도 물론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구리"는 잘 없었죠. 게다가 저의 주재(駐在) 3년 차가 막 시작됐던 그 시점에 운 나쁘게 코로나가 터져버려서 제한된 인원만 현지로 출장을 올 수 있어 코로나 시기엔 저의 출장자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자가격리" 때문에 본국 휴가도 갈 수 없었지요. 그래서 라면 재고(在庫)가 점점 떨어져 가던 그 시기에 저희 아이들은 현지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할랄(Halal) 인증 라면인, 인도미(Indomie : 인도네시아 기업에서 생산하는 인스턴트 국수(라면과 유사) 브랜드)를 먹기 시작했는데요. 하지만 얼큰한 국물을 곁들일 수 있는 한국의 매운맛 라면과 비교했을 때 이슬람 라면은 큰 아쉬움이 있었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너구리" 라면! 이건 정말 전 세계 어디에서도 접하기 어려운 쫄깃쫄깃 오동통통 면발이 가미된 초특급 우동 라면이었기에... 그래서 이걸 보유한 현지 한국 가정에서는, 아이들은 대놓고 자랑을 했고, 그들의 엄마들은 아이들의 입을 막았던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그 "너구리" 라면을 어디에서 어떻게 얻었는지 정보를 주면 안 되는 거였으니까요! 현지에서 이건 비단 한국 음식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과외 공부 선생님도 그랬었는데요. 여러 가지 항목에서 비밀리에 정보가 유통되지 않았던 것들이 있어 뭔가 많이 아쉬웠던, 다소 폐쇄적(閉鎖的)인 한인 주재원 사회였습니다.
(사진) 국내에서 생산된, 수출용 "너구리" 라면,
해외 주재원 시절엔 현지에서 이게 그렇게 먹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