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이동 즈음에 가장 생각나는 직원
결국 연말에 부서 이동을 하게 되었다. 자의(自意)가 아닌 순전히 타의(他意)만으로. 소속 부서에서 직무순환을 위한 근속연수가 다 채워지지 않았는데도 그냥 다른 부서로 가라는 무언(無言)의 압박을 받다 못해 언젠가부턴 대놓고 협박까지 받아서, 기어이 나는 거기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조금 더 버티더라도 내가 패(敗) 할 수밖에 없는, 결국엔 승부가 정해져 있는 이런 직장생활은 참으로 힘들다. 게다가 이런 불똥은 언제나 나에게만 튀는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오니 더욱더 힘들다. 그런데 나는 다소 비굴하게도, 이미 '26년 사업계획으로 매우 세밀하게 계획해서 재가(裁可)를 받은 일들을 마무리할 때까지는 부서이동을 좀 기다려 달라고 부서장에게 부탁을 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에 대한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한 채, 얼마 후 부서이동 인사(人事) 명령(命令)이 사내 그룹웨어에 게시(揭示)된 것을 보았다. 심지어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나의 부서장으로부터 얘기를 들은 게 아니라, 인사 담당 직원이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사전에 나에게 넌지시 건넨 메시지를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부서장에게 내가 아주 심하게 차인 셈이다. 아주 더럽고 더럽게. 기존의 부서이동 때와는 매우 다르게. 그런데 사실, 결혼 전에 몇 번의 연애(戀愛)를 할 때에도 주로 나는 차이는 쪽이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이렇게 더럽게 차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한 게 아닌지. 일방적인 부서이동 통보 이후 이렇게 계속 무작정 나를 씹는 건 정말 최악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물론, 내가 먼저 나의 거취(去就)를 알게 된 이후 부서장으로부터 뜬금없이 이메일을 한통 받긴 했었다. 그러나 그런 통보 이후에도 제대로 된 리더라면, 형식적인 면담을 통해서라도 직원의 감정을 어느 정도는 들어줘야 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나는 이 부서에서 그동안 개인사업자처럼 일을 해와서 그랬는지, 심지어 내가 수행했던 일을 인계(引繼)할 대상인원조차도 없다. 결국 이제 와서 보니, 사람 하나를 떠나보내고 그 사람이 하던 업무는 그냥 조용히 묻어서 없애버리는 게 이 조직의 목표였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다.
물론, 나도 눈치라는 게 있으니까, 언젠간 이렇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이렇게까지 빨리 실현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개 조직은 연말이면 뭔가 정리를 단행하는 법. 그래, 받아들인다. 그리고 미련 없이 떠난다. 그런데 사실, 작년에도 이랬다. 아니, 작년엔 더 심했던 것 같다. 1년 정도가 지나니 기억이 좀 희미해진 걸 수도 있는데, 이 조직의 수법은 언제나 같았다. 다만, 작년엔 내가 먼저 떠난다고 했다는 게 다르다면 다른 점. 하지만 그때 그들은 나에게 뭔가 더 빼먹을 게 있다면서 나를 붙잡았다. 나는 그들이 나로부터 구체적으로 뭘 빼먹으려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구나 그 "빼먹는다"는 표현 자체가 굉장히 기분 나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작년 이맘때쯤 보직을 내려놓는 순간 나는 그 시점에 맞춰 다른 곳으로 바로 이동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땐 어떤 이미지 관리 차원이었는지 그들은 나의 뜻대로 그렇게 되게끔 절대 허락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더욱이 그들은 그때 그렇게 대놓고 "빼먹겠다"는 표현을 썼는데, 이젠 아마도 그 무언가를 다 빼먹은 것 같았다. 가령 생선으로 치면, 나름대로 가시를 잘 바른 뒤 그들이 원하는 살을 잘 빼먹었겠지. 그런데 나는 내가 갑작스럽게 이렇게 방출이 되는 것도 기분 나빴지만, 이젠 나에게서 더 이상 빼먹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드니 뭔가 더 슬펐다.
참고로 이 글은 회사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재즈풍의 크리스마스 캐럴 음악을 들으며 쓰고 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참 슬프다. 이곳 임대건물의 화장실에선 우리 조직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게, 11월 중순부터 크리스마스 캐럴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 스피커에선, "라팜팜파" 하는 노래의 멜로디가 아주 구슬프게 흘러나온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처량하게 음악을 연주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들려오는 멜로디가 몹시 구슬프다. 한편, 사무실에선 조금 전에 인사명령이 게시되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자리에 돌아와서 모니터를 통해 인사 명령지(紙)만 뚫어지게 바라봤다. 나와 같이 이동 대상 명단에 올라간 다른 직원들은 그래도 소속 부서장에게 미리 귀띔을 받았겠지, 하며 왜 나만 이런가 하는 불만과 함께. 하지만 그래도 떠날 때 인사는 정중(鄭重)하게 해야 하는 법. 인사명령 게시 직후에 나는 부서장과 부문장(부서장의 직속상관)을 차례로 찾아갔다. 그러나 그들은 기술적으로 아주 기가 막히게 나를 피했다. 할 수 없이 나는 내가 곧 가게 될 곳의 부서장과 부문장께 먼저 인사를 드리고 왔다. 그런데 그들은 아직까지도 자리에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근처에서 그들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시간이 꽤 흐른 것 같았는데, 그들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이윽고 부문장이 오긴 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니 표정이 뭔가 많이 떨떠름하다. 그러자 나는, 어차피 갈 사람인데, 좀 좋게 인사를 받아 주면 안 되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꾹 참는다. 그냥 내가 해야 할 도리(道理)로 전출(轉出) 인사를 했다는 것에 의의(意義)를 둔다. 더군다나 부서장은 아직 자리에 오지도 않았다. 그가 어디에서 뭘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사실 시즌이 시즌인지라, 지금은 모두가 연착륙 중인 연말이다 보니 특별히 급하게 해야 할 일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빤히 보일 정도로 속이 좁게 느껴지도록, 한참이 지나서야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그가 돌아오자마자 바로 인사를 건넸다. 솔직히 맘에는 없었지만 그래도 인사는 제대로 해야 하니까. 인사명령이 게시되었다고, 그동안 감사했다고, 그렇게 짧게 인사를 했는데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 채, "봤어요."라고 굳이 존댓말을 써서 짧게 대답한 뒤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를 호출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약 5초 정도 서 있었는데, 그때쯤 부서의 직원 두 명이 헐레벌떡 뛰어서 부서장의 자리로 왔다. 그러자 그들은 부서장의 "갑시다."라는 말과 함께 어딘가로 사라졌다. 나는 "이게 맞나?" 싶은 마음이었지만, 이 또한 참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씁쓸한 기분과 함께 내 자리로 돌아왔다. 모니터의 화면보호기 암호를 해제하자 인사명령 게시 직후라서 그랬는지, 사내 메신저의 쪽지가 수없이 많이 수신되어 있었다. 주머니 속에 넣어둔 핸드폰에서도 기다리는 동안 진동이 많이 울리던데, 가까운 직원들로부터 카톡이나 문자 메시지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한편으로 나는 이번 인사이동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건 스스로 좀 꺼려졌고 또한 너무 갑작스러웠던 터라, 수신된 메시지에 일일이 답을 주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그래도 인사명령지를 보자마자 나에게 뭔가 메시지를 남겨준 직원들이 고맙게 느껴져서, 나는 그들 한 명 한 명에게 연말 인사 겸(兼) 해서 나름대로 정성을 들여 답장을 썼다.
하지만 외롭고 힘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나는 여기에서 3년간 정말 야근도 마다하지 않고 여러 어려운 일들을 마무리했고, 또한 조직에서 나에게 요구했던 역할에 충실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위에서는 정치적인 것을 가장 먼저 따졌다. 위에서 소통을 중시한다 하면서 조직 구성원들에게 의견을 내라고 하길래, 솔직하게 의견을 냈더니 나는 그저 말이 많은 피곤한 직원으로 낙인(烙印) 찍혔다. 아울러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유연근무제를 시행한다 했지만 막상 그 제도 안에서 내가 뭔가를 새롭게 시도하니 위에선 나에게 심할 정도로 눈치를 줬다. 물론, 평소엔 그와 관련해서 대놓고 비난을 듣진 않았지만, 회식 자리에서 술만 마시면 모든 화살이 나에게만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근데 나는 그게 더 싫었다. 솔직히 좀 치사했다. 아니, 졸렬(拙劣) 하다고 생각됐다. 결론적으로 이 조직에선, 다소 맞지 않더라도 위에서 말하는 건 모두 다 진실이었고, 의견을 내라고 하면 위에서 얘기한 의견에 그냥 동조(同調)하는 게 그들이 원하는 정답(正答)이었다. 그러니까, 상명하달(上命下達)을 거스르면 대역죄인(大逆罪人)이었고, 의사결정(意思決定)은 언제나 윗선의 뜻에 따르는 거였다. 1+1도 2가 아니라, 위에서 1이라고 하면 1이었고, 위에서 0이라고 하면 0인 것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중력의 법칙에 따라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만 윗선에서 물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다고 하면 그런 것이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고 "네네 맞습니다.", 이렇게 했어야 했다. 위에서 원하는 대로, 뭐 하나라도 그에 들어맞는 증거(證據)를 어떻게든 찾고, 궤변(詭辯)일지라도 억지로 논리(論理)를 만들어서 그렇게 서류를 꾸몄어야 했는데, 그러나 나는 선천적으로도 그리고 후천적으로도 그렇게 하진 못 했다. 그래서 내가 분과장(分課長)을 했을 때 같이 일하던 직원들에게도 나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실무자로서 개인적인 의견이 있으면 반드시 말을 해야 한다고. 대신 그 의견이 정말 타당한지 사전에 제대로 검증을 해 봐야 하고 또한 의견을 제시할 땐 무엇보다 논리적으로 말을 해야 한다고.
물론, 윗사람이 우리보다 경험은 많겠지만 항상 맞는 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실무자가 해당 업무의 전문가(專門家)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설득(說得)할 수 있다는 식으로 나는 말을 해 왔다. 위에서 하라는 대로만 하는 사람은 삼류이고, 위에서 하라고 하는 것을 그대로 하되 비판적(批判的)으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이류, 그리고 결과가 어떻든 간에 위에서 하라고 하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득해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 줄 아는 사람은 일류라고. 단, 상대방이 윗사람이기 때문에 그분들이 기분 나쁘지 않게, 최대한 예의 바르게, 그리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면서 나는 언제나 후배 직원들을 응원해 왔다. Top-Down의 지시(Order)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Bottom-Up의 제안(Suggestion)도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그래서 주도적(主導的)이고 자주적(自主的)으로, 그리고 자발적(自發的)으로 일을 하자고, 중간관리자로서 나는 직원들에게 그렇게 동기부여(動機附與)를 했다. 군대에서부터 지겹도록 들었던, 그 모티베이션(motivation). 조직이 크고 작고와는 무관하게, 동기부여는 조직을 지탱하는 핵심 요소라고 나는 믿어왔으니까. 물론, 회사 조직을 스포츠에 빗댔을 때, 감독이나 코치가 지시하는 것을 대놓고 무시하긴 당연히 매우 어렵다. 직장 생활도 물론 마찬가지다. 하지만, 스포츠에서 발생하는 수만 가지 상황을 모두 다 감독이나 코치가 지시할 순 없는 법. 운동 경기 중엔 때론 순발력이 필요한 상황도 발생한다. 그건 직장 생활도 역시 마찬가지다. 더구나 프로의 세계에서 경기 중 굳이 선후배를 따져야 하는가? 물론 선배들에게 어떤 예우(禮遇)는 해 줘야겠지. 하지만 그걸 깨뜨려야 경기를 더 잘 풀어갈 수 있지 않은가. 일례로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회 직전의 한국축구가 그랬다. 미드필드 라인에서 최전방으로 공을 배급할 때 미드필더들은 주로 고참(古參) 공격수에게만 패스를 했다. 그래서 결정적인 기회는 선배들이 다 가져갔다. 더 좋은 위치에 후배 공격수가 파고들어 공간이 완전히 비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거스 히딩크 감독이 부임하면서 그런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병폐(病弊)는 잠시나마 없어졌었지. 다른 사례로, 그와 비슷한 문화로 인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여자 프로농구는 어떤가? 거기에선 이른바 "언니농구" 논쟁이 한창이다. 그런데 이게 진짜 맞는 건가? 우리가 모두 프로의 세계에 있다고는 하는데, 운동 경기 중에 혹은 직장에서 업무 중에 선배들의 눈치를 꼭 봐가면서 해야 하는 건지?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 나만 혼자 떠나려니 나와 같이 일했던 후배 직원들이 많이 걱정되기도 했다. 혹시라도 조직 내에서 나와 같이 일했다는 것 때문에 어떤 불이익을 받진 않을까 하는 걱정. 마치 최근 인기리에 방영했던 오피스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에서 송 과장, 정 대리, 그리고 권 사원이 "김낙수 부장의 새끼들"이었다는 것 때문에 어이없는 차별을 당했던 것처럼, 나와 함께 일했던 후배들도 그렇게 될까 봐 나는 무척이나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특히 나와 가까웠던, 내가 좋아하는 후배 직원이 혹시라도 차별을 당할까 봐 내가 떠나면 가급적 나와 같이 일했던 방식을 빨리 버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그러자 그 직원은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답과 함께 이런저런 말들을 남겼다. 책임님이 정말 가시는구나 싶어서 마음이 싱숭생숭하다는 문장으로 시작해서, 생각보다 내게 업무적으로 많이 의지를 했었다는 기분 좋은 고백까지. 게다가 부족하게 느껴졌던 자신을, 의견이 있으면 말도 하고 주장이란 걸 할 수 있는 직원으로 성장시켜 줘서 나에게 고마웠다는 메시지를 전해왔다. 내가 본인을 이렇게 키워줬다는, 생각지도 못했던 문장을 마지막으로 남기면서. 그렇게 나에게 너무나도 큰 감동(感動)을 줬던 그녀. 사실 내가 작년에 보직에서 내려왔을 때 그녀는 나에게 이런 피드백을 주기도 했었다. 책임님이 이끌어가시는 방향이 벅찬 순간들도 물론 있었지만, 돌아보면 참 많이 배웠던 것 같다는 피드백. 거기에 덧붙여 가끔 솔직히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일이 너무 많아져서 힘들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다 이유가 있고 오히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꼼꼼한 업무지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런 피드백. 그걸 읽고 나는 목이 메어올 정도로 울컥했었는데, 올해 이렇게 떠나는 마당에도 작년보다 한층 더 업그레이된 내용의 전출 인사에 나는 한참 동안이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었다. 내가 직장 생활하면서 이런 기분을 과연 언제 또 느낄 수 있을지. 기분 좋은 떨림에서 시작해서 잔잔하게 느껴지던 인간미와 함께 진한 아쉬움으로 종결되는 그 "얼음"이었던 순간. 그렇게 나에겐 늘 고마운 직원이 있다. 부서이동 즈음에 더욱더 생각나는 그 직원. 이럴 때 나는, 그래도 내가 회사생활을 헛되이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 1) 내가 읽으면서 울컥했던 그 메시지 中 일부
초반엔,,, 사실,, 솔직히 ㅎㅎ,,,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일이 많아지니 힘들다는 생각만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다 이유가 있고,
오히려 저에게 도움이 되는
꼼꼼한 업무지시였다는 생각이 들면서 ㅎㅎ
그때부터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많이 배우고 싶었고,
같이 일하게 된 게 너무 감사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 주시고 공감해 주셔서
많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진심으로요!
(참고 2) 그 고마운 직원에게 보내고 싶은 새해 메시지
내가 좋아하는 Hallmark 연하장 문구가 딱인 것 같댜.
(참고 3) "언니농구" 관련 기사
출범 10주년을 맞이한 박신자컵에서 ‘언니농구’가 키워드로 떠올랐다. 줄곧 남자농구 현장에서 지도자로 활약하다 올해 여자농구에 첫 발을 내디딘 이상범 부천 하나은행 감독이 지난 2일 “(여자농구에) 언니농구가 있다. 왜 코트 밖이 아닌 안에서도 선후배 관계가 존재하느냐”라고 말하면서부터다.
(출처 : 스포츠 경향 기사('25. 9. 4.) https://sports.khan.co.kr/article/202509040005006?pt=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