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호기심

#1 평범해도 괜찮아

by 스몰빅토크

지하철에서, 길가에서 마주친 이름모를 타인들의

놀란 시선이 향하는 곳은 나의 발이다.


어떤 높은 굽을 신었길래 저렇게 커지지 하는 호기심이

납작한 스니커즈에 다다랐을 때 충격으로 바뀌는 정서변화를

목격하는 건 눈 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청소년기에 잠을 많이 잤고

눈 떠 있는 시간에는 쉴새없이 피구하고 철봉에 매달렸다.

간식으로 감자와 사과를 좋아했다.



친환경적 식습관과 웰-빙 취미로 인해

아가씨가 된 이후 측정한 종착키는 177.8 cm.

남자들은 자꾸 내가 180cm 이라 한다.

자신의 키가 177인데 내가 더 크다면서.



이렇듯 몸가지가 길어 슬픈 생물은 대한민국의 여성이 아닐까 싶다.


작고 귀여운 여자가 이상형이라며 철벽쳤던 짝사랑 오빠도,

어떤 동작을 해도 나부끼는 풍선인형같아 외면받았던

댄스 장기자랑 날도,

아빠 심부름으로 직장인 거리에서 밤늦게 서 있다

술취한 아저씨가 전봇대냐며 노상방뇨를 하려는 걸보고 그대로 뜀박질했던 기억도.



어쩐지 모두 내가 못났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한쪽 구석에서 존재만 하고있을 뿐인데.



결심했다.

그들의 판단미스를 알게하리라.


어딜가나 남들이 고개만 조금 들면 얼굴을 들킬 수 있는 포지션의

나는 약간 자의식이 강한 캐릭터라고만 생각했지

패션모델을 동경하며 감히 꿈꿔본 적은 없었다.


나는 글쓰기 시간에 ‘나같은 게 세상에 차지하는 비율이 큰 건 비극이다.’

라는 문장을 쓰며 자기학대를 즐겼던 멋대가리 없는 고딩이었다.


찢어진 청바지가 연청이냐 진청이냐 하는 논란에,

구두를 장식하는 털이 토끼냐 여우냐 하는 문제에,


너무 깊이 생각하는 패션계의

간지를 향한 그들의 끝없는 열망에

환상보다는 현기증을 느꼈다.


그래서 다른 행성에서 온것만 같은 비현실적인 우월함에 반해

모델이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단지 내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정말 그뿐이었다.



키가 몇센티냐는 질문에

무릎을 굽히고 등을 구부리며

조금이라도 작은 모습으로

대답하는 꼬인 마음을 고치고싶었고


호감이 있는 남자가

아담한 스타일이 좋다고 할지라도

쉽게 마음을 포기하고 단념하기보단 또다른 나의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스무살이 되던 해

운좋게 원하던 대학에 합격하고

부모님께 한번만 원하는 것을 해보겠다며

등록한 모델 아카데미.


299만원의 카드 긁히는 소리.


돌아간다면 절대 절대 절대

부모님의 돈을 그런곳에 낭비하지 않겠다 생각하지만


철없던 그 날을 시작으로

나의 모델 이야기가 쓰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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