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못입어도 괜찮아
아네스는 생각에 잠겼다.
이 여자에게는 저 보기 흉한 정맥들을 감추고
엉덩이가 좀 덜 흉물스러운 옷을 입는 방법이 스무가지도 넘게 있었을 것이다.
헌데 왜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일까?
- 밀란쿤데라, 불멸
모델이 되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아카데미에서 보내던 스무살의 겨울방학.
말을 잘 들으면 패션쇼에도 서고 잡지 화보도 찍는 줄 알았다.
아침에 바나나 한 개를 챙겨먹고 일부러 지하철 두정거장 거리를 걸어
압구정동의 아카데미로 향했다.
‘모델의 매너’, ‘베이직한 스타일 연출법’, ‘후레시한 피부 갖는법’ 등을 알려주는
수업은 한달 반 동안 한시부터 다섯시였다.
수첩을 들고 가 빼곡히 적었다.
교실은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여있었다.
그렇게 쉽게 마주치는 내 모습은
태어날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나의 껍데기의 가치를 꾸준하게 알려줬다.
몸에 딱 달라붙는 워킹복은
물만 마셔도 배가 볼록하게 나와보였다.
그래서 아무것도 먹을수가 없었다.
먹지 않으니 살이 계속 빠져 체중은 49kg이었다.
나와 가장 친한 아이는 중학교 3학년이었는데,
살을 빼려고 이틀을 굶다 결국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갔다는 이야기를 학원에 돌아와 웃으며 했다.
그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매니지먼트의 관계자들은
학원생들과 마주치면 황급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엘리베이터 문을 빠르게 닫는다거나 했는데
그런 외면이 일말의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아니 저렇게 괜찮은 애가 있단말이야? 당장 캐스팅해야겠어.
하지만 아카데미를 수료하지 않은 사람은 자격이 안되니까 조금만 기다리지.’
라는 절제의 눈짓으로 이해를 했던 것이다.
진실이야 어쨌건 그 때 나는 예비 대한민국 대표 탑모델로서의
나날들에 푹 젖어있었고 그런 해석은 또 그런 해석대로 그 배고팠던 나날들을
견딜 수 있게 해줬다.
이처럼 자기 객관화 수치가 부족한 대신 행복 수치는 넘실댔던 내가
가장 두렵고 걱정됐던 순간은 다름 아닌 ‘패션 스타일’이었다.
20년의 인생을 살며 공부 밖의 행위가 모델학원에 다니는 게 전부였던
나의 스타일은 멋부리고 싶어하는 찌질한 범생이었다.
머리 모양도 언니가 소개해준 무슨 헤어 쇼에 나갔다가
3년 동안 길러온 긴 생머리는 처참히 잘려
비대칭 대각선으로 보라색 브릿지가 들어가 있는 단발의 머리였다.
그 매니지먼트엔 아카데미를 전담하시는 모델 출신의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분의 높고 올곧은 패션 감각에
수련회에서 일탈을 시도하는 전교일등의 사복패션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보라색 브릿지 머리 모양과 키플링 백팩,
엄마도 더 이상 입지 않는 단추가 하나 떨어진 갈색 코트를
기다란 손톱으로 하나하나 가리키며 비난했다.
처음으로 선생님께 싫은 존재가 됐다는 사실이 커다란 충격이었다.
패션테러리스트에서 벗어나고자
열심히 유명얼짱들이 모델로 있는 인터넷 쇼핑몰을 더욱 열심히 뒤졌는데,
그런 귀여운류의 옷을 입은 나는
새내기들과 친해지고 싶어하는 복학생의 수준으로 한단계 진화할 수는 있었다.
그렇게 모델학원의 교과서가 되고자 했던 시간들도 지나고
아카데미 수료생들에게 주어지는 소속사 오디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