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세상 밖

쓰다 써

by 스몰빅토크

“왜 그렇게 기를 쓰고 공부해야 하는 것일까? 학원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그 전쟁에 이기면 이길수록 인생을 유리하게 보낼 수 있단다. 그 무렵 나는 전철로 통학했고, 매일 아침 만원 전철 안에 있었다. 주변의 통근하는 승객을 보고 ‘아니, 이긴 결과가 고작 이런건가’하고 기가 질려서 어딘가에서 코스를 이탈하자고 호시탐탐 타이밍을 노리게 되었다.”

- 와카바시 마사야스, 사회인 대학교 낯가림학과 졸업하기



스무살이 되면

영화 엽기적인 그녀 속 전지현처럼


평상시에는 청바지에 흰티를 입고서는

긴 생머리를 보석처럼 반짝이고


가끔은 여성스러운 원피스에 구두로

생기로 캠퍼스를 물들여야지.



무한상상 속 20대 나의 모습.


과는 다르게

급하게 쌓아올린 블록 조각처럼

빨리 자랐던 내 몸은 척추측만증에 목디스크가 생겨버렸다.


사진을 찍어도 유령인형처럼 휘었고

평상시에도 턱 방향은 비뚤어지고 어깨 또한 기울어졌다.

고질병같은 척추통증.

몸 안에 손을 넣을 수 있다면 집어넣고 잘 조립해낼텐데.



내가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 저 사람의 쇼를 서고 싶다. 라고 생각한다면 모델로서는 다시 태어나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면 노력을 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 이현이


스크린샷 2016-04-03 오전 7.18.35.png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 저 사람의 쇼를 서고 싶다. 라고 생각한다면 모델로서는 다시 태어나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노력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 이현이



아니 사실,

내가 곧은 척추와 정상적인 C자 목을 갖고 있다한들

기회가 왔을까?


어쩌면 우리 세대의 실업을 단시간에 체험하는데에는

모델지망생의 경험이 가장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세상이라 하는 것에 뛰어들고 싶었다.


그 길이 어디로 인도할지는 아주 나중에 밝혀진다해도

마음속 품어왔던 충동을 실현하는것만으로 충분했다.



마지막 아카데미 수료식이자 오디션 날,

장기자랑 없냐는 말에

윤미래의 검은행복이라는 랩을 했다.


그곳에 앉아있었던 매니지먼트 관계자들은 처음 들어봤을 것이다.

악몽을 꾸는 듯한 표정과 그들의 연령층을 고려하면 그렇다.


몇 년 후 쇼미더머니를 우연히 보게됐는데

그 프로그램만 보면

자아의 광기를 거침없이 노출했던 그 순간이 떠올라

후다닥 채널을 돌리곤한다.



심사가 끝났고 네명이 뽑혔다.



군대 제대하자마자 찾아왔다는 부산사투리 오빠,

늘 젤리와 초콜렛을 들고다니며 먹었지만

팔다리가 참 가늘었던 경영학과 졸업반 언니,

첫인상부터 혼혈인같았던 누가봐도 상모델 포스의 언니2,

그리고 나.


긴가민가 했을것이다.

아카데미 출신을 수치적으로 높이기 위해

일시적 고용이었다는 해석이 있었다.


뭐 어쨌건 일도 있었다.

그 소속사의 탑모델들이 서는 리허설 대타.



나름 사명감있게 임했기에

전체적으로 몽환적인게 컨셉이라는

디자이너의 말에

눈을 힘껏 풀어가며 정신줄을 놓으며 걸었다.


혹시, 만약, 아무도 모르는 일

이라는 가능성에 투명인간 역할을 했다.


나와 처지가 비슷했던 GJ언니.

비가 무척 오던날,

그날도 탑모델의 대타를 마치고 돌아갈 때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역까지 뛰어갔다.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채.


스스로의 처지를 인정할 수 없어서

거울같은 서로의 모습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4년 후 GJ언니를 한겨울의 길거리 패션쇼에서 다시 만나게된다.

영하 3도의 기온에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바깥에서 30분을 대기했다.


뼛속같은 추위에

이가 더그덕 부딪혔고

몸에 경련이 이는 듯 떨렸다.

우린 애틋한 커플처럼 꼭붙어서 열을 냈다.

이번쇼는 적어도 대타는 아니네. 많이 발전했다. 하면서.


훨씬 추운 날씨에 걸친 것 없이 떨고있어도

부둥켜안고 농담을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많이 컸다고 생각한다.


탑이건 듣보건

모두 세상을 살아갈 때 자기만의 저울로

어깨의 짐을 안고살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까.

세상 밖은 누구에게나 함부로인것을.



스크린샷 2016-04-03 오전 7.53.01.png


어떤 집단이나 특정인물을 비난하는 게 아니다.

무모하게 사회인으로 나서보며

원래 세상이 이렇게 함부로라는 것을

새겼던 시간을 기록하고 싶다.


오늘도 괜찮아, 괜찮아

그 시간들을 버텼으니까 앞으로도 버틸 수 있어.


산다는 건 인내심의 역치를 늘리는 일이란 공식을 이해하게 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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