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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아 Nov 28. 2018

헤어와 메이크업, 패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남자

백스테이지 마술사를 소개합니다

“얘 아직 마무리 안 했어? 다음 쇼 어디야? 이 컬은 중간컬로 넣어. 나 리허설 간다”


패션쇼장에 드나드는 사람마다 발자국을 찍어본다. 누가 가장 많은 자취를 남길까? 런웨이 모델? 패션 디자이너? 포토그래퍼? 적어도 대한민국 패션쇼장에서라면 유력한 인물이 있다. 바로 뷰티 디렉터 오민이다.


패션과 헤어, 메이크업의 경계를 넘나드는 ‘백스테이지의 이단아’라 불리는 오민 감독

오민 대표는 대한민국 패션쇼장에 헤어 메이크업 작업을 들여온 최초의 인물이다. 1986년 조이너스, 논노, 까뜨리네뜨 등 브랜드 패션쇼부터 시작해 2019 S/S 헤라 서울 패션위크까지. 30여 년간 약 4500개의 런웨이의 뷰티 디렉터로 활동했다. 

총괄 헤어 아트 디렉팅을 맡은 2017 f/w 헤라서울패션위크 진태옥 디자이너의 쇼.


“지금이야 패션쇼 백스테이지에 헤어 메이크업 스텝이 있는 게 당연하지만 80년대만 해도 아니었죠. 모델이 가까운 미용실 가서 기분대로 ‘블루 섀도 칠해주세요’, ‘머리는 올려주세요’ 한 다음 공연장으로 오는 시스템이었습니다. 패션쇼는 예쁘게 꾸민 모델이 옷만 잘 보여주면 된다고 여겼던 거죠. 하지만 제 생각은 달랐어요. 쇼란 의상뿐만 아니라 헤어, 메이크업, 조명, 음악 등 모든 것이 어우러진 종합 예술입니다. 디자이너가 쇼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콘셉트를 창작해내는 게 제 일이에요”


두칸의 최충훈 디자이너와 함께 쇼의 컨셉을 논의중인 오민 감독의 모습 (오) 타겟 연령층과 고객 성향 분석 등 오민 담독의 철저한 시장조사로 탄생한 두칸 2019 s/s 헤라서울패

패션과 뷰티를 결합해 브랜드 콘셉트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헤어 아티스트 오민. 그의 창작물은 미용실이 아닌 패션쇼, 광고, 화보 등이다. 패션과 뷰티, 아트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는 원래 음악가를 꿈꿨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락밴드를 했다. 춥고 배고픈 음악가에게 미용을 배울 기회가 찾아왔다. 성남시 남한산성 클럽 근처 분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때였다. 손님으로 온 미용협회 회장이 그를 알아보곤 미용을 배워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왼) 오랜시간 인연을 맺어온 모델 출신 배우 차승원과 함께 (오) 백스테이지 어디서나 오민감독의 열정적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쁘지 않은 스타일이었나 봐요. 체구가 왜소하니 머릴 만져도 여성 손님들이 겁내진 않겠다 판단하신 거겠죠. 음악이 좋았지만 현실적 문제로 진로 고민을 하던 때였습니다. 부모님께 비밀로 하고 사촌누나의 도움을 받아 1984년도 종로에 있는 예림 미용학원에 등록했습니다. 대략 300명의 원생들이 다니던 곳인데 제가 유일한 남자였어요. 주변에서 야유가 쏟아졌죠. 쏟아지는 시선이 두려워 소주 한 병 비우고 등교한 적도 있습니다.”


동료들의 텃세를 묵묵하고 성실하게 견뎌내는 그였다. 그 모습을 눈여겨본 학원 원장님은 당대 최고 헤어디자이너를 소개했다. 70년대 국내 단발머리 돌풍을 일으킨 그레이스 리. 한국 최초 유학파 출신 헤어디자이너인 그녀는 오민 대표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은사다. 


2016년 12월 보그코리아의 크리스마스 특집 화보. 오민 감독이 꼽는 가장 기억에 남는 화보 중 하나다.


“사실 절 건축인부로 고용하셨더라고요. 대학로에 건물 짓는데 벽돌 나르기부터 담쟁이넝쿨 올리는 일까지 도맡았죠. 그래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매일 4시간 자면서 미용실에 가장 먼저 출근해 청소하고 마지막까지 정리했죠. 3년 동안 매일 같은 날을 반복해 보냈어요. 문득 바깥에 뛰쳐나오고 싶더라고요. 명동거리를 걷다 발견한 문화체육관 (현재 정동극장)에 무작정 들어갔습니다. 패션쇼가 펼쳐지고 있었죠.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음악 하던 사람이잖아요. 무대를 보고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다’ 싶었어요.”

헤어 아트 디렉팅을 총괄해 신진 디자이너들과 파격적인 작업을 보여줬던 2019 s/s 헤라서울패션위크의 오민 감독의 작품들.


서울시내 모든 패션쇼장에는 그가 있었다. 3개월쯤 지나자 모델들을 스토킹 하는 변태라는 의심을 샀다. 경호원이 입구에서 그를 막아서고 있을 때였다. 한 모델이 차에서 내리다 머리가 풀려 헝클어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그는 가방 속 미용 물품을 꺼내 들었다. 임시방편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완벽한 솜씨였다. 이후 당당히 백스테이지에 들어가 모델들의 머리를 정리해주는 공식 헤어 디자이너로 활동할 수 있었다. 


“사람이 좋아하는 걸 하면 미쳐버리는 때가 옵니다. 무대, 헤어, 패션은 가장 사랑하는 것들이었어요. 1987년 독립해 패션쇼의 헤어를 전담했죠. 패션 디자인을 보고 헤어와 메이크업까지 전체적인 스타일을 만드니까 여기저기서 작업하자는 제의가 쏟아졌어요. 이젠 디자이너들이 찾아와 이번 콘셉트를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봅니다. 기술만 파는 시대가 지난 거죠. 전 미용실 밖에서 오민 뷰티만의 감성과 브랜드를 만들어왔어요. 30년 걸렸습니다. 창작가라는 아이덴티티는 프랜차이즈 미용실 100개보다 큰 유산이라 생각해요.”


이상봉 디자이너와 협업한 2012 런던올림픽 개막식 축하 패션쇼


아트 디렉터, 오민 크리에이티브 CEO, 뷰티학과 교수 등 맡은 직함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목표는 하나다. 한국의 뷰티 산업을 세계로 진출시키겠다는 것. 꿈은 이미 완성형에 가깝다. 2012년 뷰티 총연출을 맡은 런던올림픽 개막식 축하 패션쇼에서 기와를 머리장식으로 올렸다. 그때 사용한 머리장식은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이 소장 중이다. 2013년부터 홍콩·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 패션위크 연출을 맡았다. 2019년 3월 베트남 호찌민시에 한국의 뷰티 제품과 뷰티아카데미가 위치한 ‘오민몰’을 만든다.


한국의 뷰티산업을 세계로 진출시키겠다는 그의 꿈은 이미 실현중이다. (왼) 2016년 세계적인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와 함께 (오) 2016년 헤어 아트를 총괄 디렉팅한 한중 설명


“올해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화예술학과에 입학해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어떤 날은 교수로, 어떤 날은 학생으로 살고 있죠. 1학기엔 장학금을 타기도 했어요. 배울게 한참 남았습니다. 제 꿈이 누군가의 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더 치열해지거든요. 다시 태어나도 이 일을 할 거예요. 제 제자들이 꿈을 활짝 펼치는 그날까지 말입니다.” 



글 | 디자인프레스 자유기고가&현직모델 김지아 (Instagram : freejia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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