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범죄도시' 강윤성 감독
'Happiness Project'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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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신만의 길을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 이들을 소개합니다.
2018. 01. 12
영화 ‘범죄도시’ 강윤성 감독
17년 기다려 상업영화감독 데뷔
“벼랑 끝에서 만든 영화”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 ‘범죄도시’는 강윤성(46) 감독의 첫 상업영화다. 2004년 서울 가리봉동에서 활동한 조선족 범죄조직 ‘흑사파’와 금천경찰서 강력반 형사들의 분투를 담았다. 탄탄한 구성, 배우 윤계상과 마동석의 실감 나는 연기로 큰 인기를 얻었다. 누적 관객수 690만으로 지난해 한국 영화 흥행 순위 3위에 올랐다. 영화계 입문 17년만에 성공적인 감독 데뷔를 마친 그를 만났다.
물리학을 전공했다. 영화감독이 돼야겠다고 생각한 건 스물두 살 때.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저수지의 개들’, ‘펄프픽션’을 보고 ‘이런 영화를 만든 감독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싶었다. 내성적인 성격의 그는 영화 속에서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하고 끼를 발산하는 배우들을 동경했다.
“군대에서 휴가 나왔을 때 본 ‘저수지의 개들’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영화였죠.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까지 하는 감독을 꿈꿨어요. 1997년 영화를 배우러 미국 유학(Academy of Art University)을 갔습니다. 하루 종일 학교 영상실에 틀어박혀 있었어요. 많이, 오래 쓰면 시나리오 쓰는 실력이 늘 것 같아 매일 8~9시간 앉아 글만 썼던 것 같아요.”
2000년 유학 중 쓴 공포영화 시나리오를 여러 제작사에 보냈다. 한 메이저사에서 ‘영화로 제작할 수 있을 것 같으니 귀국하라’는 답변이 왔다.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귀국했다. 제작 준비에 돌입한지 1년이 지나 회사가 도산했다. 눈앞에서 기회를 날렸다. 오기가 생겼다. 미국에 돌아갈 수 없었다. 영화 제작 현장에서 경험을 쌓자고 생각했다. 영화 스태프·뮤직비디오 제작·프로덕션 외주작업 등 영화 관련 일로 생계를 꾸렸다.
생활고에 감독 데뷔를 포기하려 했던 때도 있었다. 2005년 한 게임회사에 스토리 작가로 입사했다. 생전 처음으로 안정적인 수익이 들어왔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미련이 계속 남았다. 회사 다니면서 틈틈이 쓴 영화 시나리오가 공모전에서 입상했다. 영화사에서는 영화 제작을 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결국 6개월 만에 회사를 관두고, 다시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부인은 그의 선택을 존중해줬다. 그가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동분서주할 때 부인은 서울 삼청동과 광화문에서 의류매장을 운영하며 생계를 책임졌다.
강 감독의 시나리오는 언제나 영화제작 직전에 있었다. “시나리오는 좋지만 제작비가 비싸다”, “투자사에서 관심 있게 보고 있다” 등의 말을 자주 들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진전은 없었다. 그러던 중 평소 친분이 있던 배우 마동석이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경찰 소재 영화를 만들자’는 것.
“마동석씨 연락을 받고 간 사무실에 그의 후배가 와 있었어요. 서울 방배 경찰서 강력팀 형사였는데, 2004년 범죄조직 흑사파를 검거한 사건 당사자였죠. 하룻밤만에 조직폭력배 14명을 검거한 이야기를 2시간에 걸쳐 들었어요. 듣는 내내 ‘한국판 히어로물’이 떠올랐습니다. 시나리오 초고는 3개월 만에 완성했어요.”
영화 제작 예산은 47억원이었다. 하지만 주요 제작사들은 “조폭 이야기는 식상하다"라는 말로 거절했다. 부부는 운영 중이던 작은 가게를 정리했다. 한국 생활에 지친 상태였다. 전 재산을 털어 무작정 스페인으로 떠났다. 그런데 스페인에서 기적 같은 연락 한 통을 받는다. 영화 제작에 필요한 투자를 받을 수 있게 됐다는 것. 범죄도시에 투자를 결정한 키위미디어는 영화에 대해 “시나리오 완성도가 높고 캐릭터들의 개성이 돋보였다”고 밝혔다.
“살면서 영화 관련 일 외에는 관심도 없었어요. 포기하다가도 ‘조금만 더 기다려보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매일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살았습니다. ‘범죄도시’는 마지막 벼랑 끝에서 탄생한 작품이죠”
17년 세월 한풀이한 리얼리티 액션물 ‘범죄도시’
2000년대 초반 서울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던 강 감독은 가리봉동 연길 거리를 촬영 장소로 정했다. 거리는 간판에 LED 조명만 빼면 그 시절과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형사들의 열악한 컨테이너 생활 등도 10여년 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큐멘터리를 오래 연출한 강 감독은 디테일한 현실 묘사에 힘썼다.
“약 300명의 배우들을 오디션했죠. 저는 사실적인 연기를 좋아합니다. 얼마나 실감 나게 연기를 하는지 봤어요. ‘범죄도시’는 무명배우들의 연기력이 빛을 발한 영화입니다. 배우들이 너무 실감 나게 연기해서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게 아닐까 생각해요. 제작진은 당연히 15세 등급을 받을 줄 알았거든요.”
한국에서 조폭물은 진부한 소재다. ‘범죄도시’의 흥행 요인은 스토리보다는 영화 곳곳에서 발견되는 독특함에 있다. 조선족 연기자들의 대사 속 ‘동포’라는 단어의 이질감, 대림동이 연출하는 거리 분위기, 악역을 연기한 윤계상의 새로운 재발견 등이다.
신인감독이 만든 조폭영화에 대중들의 기대감은 낮았다. 지난해 10월 개봉 첫날 관객 점유율은 6~7%였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적었지만 입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개봉 7일 만에 관객 수는 200만명을 넘었다. 손익분기점을 넘긴 것. 총 누적 관객 수는 약 690만명으로 지난해 개봉한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 중 흥행 순위 1위를 기록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그는 현재 차기 작품을 여럿 검토 중이다.
“‘범죄도시’ 속 막내 경찰이 사실 저를 대변하는 캐릭터에요. 순진하게 강력반 형사가 되겠다고 뛰어들었다가 조직폭력배들에게 비웃음을 사고 뜨거운 기름을 뒤집어쓰는 등 된통 당하죠. 강력반 형사를 포기하려다 마지막에 용기를 내 범인 검거에 결정적으로 기여합니다. 막연히 영화를 동경하는 마음에 영화감독을 꿈꿨죠. 그렇게 17년간 고생만 했어요. 올해는 영화 제작뿐만 아니라 출연까지 다양한 계획을 염두에 두고 있어요. 영화는 어쩔 수 없는 제 운명이자 업인 것 같아요”
글 jobsN 김지아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