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 박태훈 대표 인터뷰
“다들 두 시간짜리 영화 보려고 한 시간 동안 뭘 볼지 찾아 헤맨 적 있잖아요”
왓챠 박태훈(34) 대표는 원래 영화감독을 꿈꿨다. 카이스트 전산학과 1학년 재학 시절, 대학 방송국 동아리에서 18분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SF 물이었다. 반응은 극과 극. 누군가는 참신한 상상력이라 칭찬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봐서 시간을 낭비했다는 말도 했다. 상반된 반응을 보면서 생각했다. 애초에 취향에 맞는 사람들이 자신의 영화를 봤다면 좋았을 텐데. 사업 아이템이 떠올랐다.
영화 평점을 매겨 영화를 추천해주는 서비스 ‘왓챠’는 2011년 9월 나왔다. 5년 후, 영화 평점과 추천을 참고해 모바일로 영상을 볼 수 있는 ‘왓챠 플레이’를 출시했다. 같은 시기 국내에 넷플릭스가 진출했다. 자연스럽게 경쟁구도가 만들어졌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 가입자 수 1억2500만명을 보유한 글로벌 IT 기업이다. 직원 수 50명에 불과한 국내 스타트업이 상대하기엔 막강한 상대다. 그러나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2017년 왓챠 연 매출은 53억원. 2018년 7월 이후 넷플릭스 코리아 매출을 넘어섰다.’해볼 만한 싸움’이라는 관측이다. 성장세도 가파르다. 2014년 이후로 왓챠 매출은 매년 2배 이상 상승해왔다. 독자적인 기술력과 철학으로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강남 본사에서 왓챠 창업자, 박태훈 대표를 만났다.
| ‘영화 마니아’ 타게팅 했던 별점 서비스
“추천 가능한 분야는 맛집·음악 등 많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어 취향이 가장 분명한 콘텐츠죠. 영화는 무성에서 유성으로, 흑백에서 컬러로, 3D에서 4D로 진화해왔습니다. 아무리 특수한 문화나 언어를 가진 사람이라 해도 영화 포스터 하나면 의미를 전할 수 있어요. 또, 영화 마니아들은 언제나 존재해왔습니다. 이들의 평가로 비교적 정확한 데이터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왓챠는 창업 초기부터 목표가 분명했어요. 바로 정확한 추천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었죠. 그 결과, 국내 스타트업이 글로벌 기업 넷플릭스에 대항할 수 있을 정도로 영화 콘텐츠 비즈니스를 키울 수 있었다 생각합니다.”
영화는 지루하면 리모컨 버튼을 눌러 다른 채널을 선택할 수 있는 텔레비전이나 책장을 덮어버리면 끝나는 책과 다르다. 적어도 한 시간 이상 봐야 한다. 시간뿐만 아니라 비용도 든다. 뉴스·드라마·예능은 무료라 생각하지만 영화에는 기꺼이 돈을 낸다. 돈과 시간을 들이는 만큼 재밌는 영화를 보고 싶어 한다. 박 대표는 이 점을 주목했다.
“대학교 1학년이었던 2003년, 영화감독을 하기엔 재능이 없다 포기했던 때였어요. 한국 IT 업계에 폭풍이 몰아쳤어요. 네이버·엠파스·다음 등 국내 포털이 치열한 각축전을 펼쳤습니다. 구글코리아가 처음 한국에 들어왔죠. 예술가의 길 대신 창업하겠다 결심했습니다. 넥슨에서 병역 특례를 마칠 때까지 사업 아이디어를 떠오르는 대로 적었어요. 군 복무가 끝날 때쯤 50개 정도 완성한 목록에 세 가지 공통 키워드가 있더군요. 개인화·자동화·추천화였어요.”
박태훈 대표는 서울과학고를 조기졸업해 2003년 카이스트 전산학부에 입학했다. 영화 다음 관심사는 IT 기술이었다. 관련 분야 뉴스·논문 등을 찾아 읽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최신 과학 논문에 빅데이터·머신러닝 등에 대한 기술 연구가 주로 등장했다. 박대표는 앞으로 살아남는 IT 서비스는 개인 관심사를 알고 자동으로 추천해주는 기능이라 생각했다.
| 2005년부터 ‘대세’라 예측했던 자동 추천 기능
박태훈 대표 예상대로, 개인에 맞춘 추천 서비스를 펼치는 IT 기업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했다. 사용자가 검색한 내용을 분석해 보다 정확한 정보를 상위에 올리는 구글, 고객 취향을 알고 제품을 추천하는 아마존이 그 사례다. IT기업이 추천 서비스를 하는 이유가 있다.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의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데이터를 활용해야 다시 서비스를 사용하도록 불러들일 수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이용자 시간을 아낄 수 있어 편리하다. 또, 스스로 내리는 선택보다 더 정확하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낼 수도 있다. 왓챠 박태훈 대표는 2006년부터 머신러닝 관련 논문을 접하면서 이 서비스가 IT 기업의 핵심 서비스가 될 것이라 예상했다고 한다. 머신러닝은 인공지능의 한 분야다. 데이터를 입력하면 일정한 패턴을 발견해 스스로 기술을 개발한다.
“왓챠는 처음부터 모바일 서비스를 공략했어요. 웹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라 판단했죠. 2009년, 애플이 아이폰 3G를 미국에 출시했던 때였죠.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어요. 일단 휴학계를 내고 학교 사람들을 붙잡고 말했죠. ‘아이폰 나왔다. 이거(영화 추천 어플 서비스)해야한다. 앞으로 사람들은 영화 고르기 전 왓챠 먼저 할거다’ 말이죠. 보고 싶은 영화를 정확히 추천받고 싶은 마음, 본 영화를 기록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분명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니즈를 이용해 영화 추천 서비스 왓챠를 만들었습니다. 모바일로 영상을 보는 시대가 오면서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왓챠 플레이를 내놓았습니다.”
별점 매기는 서비스인 왓챠만 구상했던 창업 초기, 수익모델은 명확지 않았다. 당연히 창업 멤버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판교테크노 밸리에 위치한 IT기업을 돌아다니면서 동문들을 만났다. 함께 사업을 하자 설득했지만 영화 추천으로 어떻게 수익을 내냐면서 의견이 나뉘었다. 박 대표는 데이터를 모을 수만 있다면 충분히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여겼다. 직감은 정확했다. 모바일로 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다. 2016년 1월, 기존 영화 추천 서비스 왓챠에 기능을 더해 왓챠 플레이를 내놓았다.
| 제작자에게도 데이터 정보 공유해 콘텐츠 시장의 파이 키워
“왓챠 수익구조는 다양해요. 유저에게 구독료를 받을 뿐만 아니라 콘텐츠 사업자를 상대로 데이터 비즈니스를 운영합니다. 정확한 평점 예측은 콘텐츠 사업자에게 돈보다 귀중한 정보입니다. 기존 영화·드라마 사업은 종사자의 경험과 감을 따랐습니다. 어떤 관객이 좋아할지, 누구에게 광고를 보여주면 가장 효과적일지는 미지의 영역이었죠. 하지만 왓챠는 이 부분을 명확히 제시합니다. 약 5억개의 사용자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오차를 최대한 줄여 논리를 제시할 수 있어요. 정확한 취향 분석과 추천 서비스는 관객과 영화 사업자 모두에게 꼭 필요한 정보입니다. 영화 사업자는 목표 관객을 제대로 설정해 비용 손실을 줄이죠. 관객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영화를 볼 수 있어 만족합니다. 기존 시장에서 관객과 콘텐츠 사업자간의 간극에서 발생했던 문제점을 왓챠가 가진 데이터로 매칭해 해결하는 방법인 겁니다.”
왓챠 플레이 시청자 약 70%가 왓챠의 추천을 받아 영화를 감상한다. 일반적인 VOD 서비스에서는 신작 위주로 소비가 일어난다. 하지만 왓챠는 옛날 영화를 추천해도 관객에게 큰 만족감을 준다. 왓챠의 정확한 추천 시스템은 제작자에게도 가치가 크다. 보유 콘텐츠 수가 국내외 콘텐츠 사업체 중 가장 많은 비결은 이 때문이다. 왓챠는 넷플릭스가 판권을 계약하지 못한 해외 주요 제작사(디즈니·HBO 등)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제작사는 투명하고 믿을 수 있는 데이터를 약속한 왓챠와 앞다퉈 계약한다.
올해 3월 말 왓챠 플레이는 박찬욱 감독의 BBC 드라마 ‘리틀드러머 걸’을 방영할 예정이다. ‘리틀드러머 걸’은 박찬욱 감독이 제작한 첫 TV 드라마다. 영국 여배우가 이스라엘 스파이로 활약하는 첩보물이다. 2018년 10월 영국 BBC, 미국 AMC에서 방영했다. 국내에는 2019년 3월 왓챠플레이가 감독판을 독점 공개한다. 2003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보고 전율했던 영화감독 지망생 박태훈 대표였다. 약 15년이 지난 지금, 동경했던 영화감독과 사업 파트너로 국내 관객을 만난다.
“큰 꿈을 꾸다 보니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왓챠 사원수는 현재 52명입니다. 작년엔 20명 뽑았죠. 올해 약 30명 채용할 계획이에요. 해마다 왓챠 인기를 실감합니다. 마케팅 인턴을 한 명 모집하면 400명 넘게 지원해요. 왓챠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토론하는 조직입니다. 직원들은 개발 직군이 아니어도 전 직군에서 데이터를 추출해 분석할 줄 알죠. 이곳에서 스터디와 교육을 통해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데이터의 가치를 알고 그걸 무기삼아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재들이 찾아와준다면 좋겠습니다.”
글 jobsN 김지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기사 원본 : https://1boon.kakao.com/jobsN/5c78b3f56a8e5100018b9a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