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생 할머니가 안국역에서 파는 오방색 조각보 가격
“텔레비전을 보는데 진품명품(KBS 골동품 감정 프로그램)에 골동 조각보가 나왔어. 옛날 보자기 천이 150만 원이더라고. 해가 묵으니 가격이 저렇게 올라가는구나 했지. 그걸 보고 조각보를 만들고 싶었어.”
김춘자(78)여사는 조각보를 만들어 안국역 6번 출구 앞에서 판다. 조각보는 자투리 천을 이어붙인 보자기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파리가 날아들지 않게 밥상 덮개용으로 썼다. 지금은 실생활에 쓸 일이 거의 없다. 손으로 조각보를 만드는 이도 드물다. 김 여사는 그런 조각보를 만들기 위해 새벽 2시에 자서 5시에 일어난다. 하루 종일 한자리에서 조각보를 깁는다. 조각보 하나 탄생하기까지 2시간 걸린다.
“13년 동안 조각보 팔아 1억8000만원 벌었어. 왜 하냐고? 돈 있으면 했겄(겠)니? 사연이 깊어. 말로 다 못해. 원래 면목동에 서른여덟 평(약 125㎡) 아파트가 있었어. 남편이 현대건설에서 버스 운전기사로 일했어. 난 그냥 집에서 살림만 했지. 2005년에 막내 여동생이 사정이 어렵대. 아파트 보증을 서줬어. 그 뒤로 빚이 생겼어. 나이 예순여섯이었어. 청소라도 하려고 알아봤는데 나이가 많아 안된대”
1941년 6남매 맏딸로 인천에서 태어났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전라도 이리(전라북도 익산시 옛 이름)로 피난 갔다.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스물다섯에 결혼해 쭉 전업주부였다. 남편 직장을 따라 30대에 서울에 왔다. 아들 둘을 낳았다. 취미는 식물 기르기와 바느질이었다. 평범하고 순탄한 삶이라 생각했다. 예순여섯에 갑자기 형편이 어려워졌다. 자식에게 손 벌리고 싶지 않았다. 먹고 살 방법을 생각하다 떠올린 게 조각보였다.
“원래 손재주가 좋았어. (집에 있는 커튼을 가리키며) 저것도 내가 만든 거야. 저걸 팔라고? 에이. 그럼 못써. 저런 건 그냥 만드는 거고. 대접하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해야지. 이것 봐. 쉬운 것 같아도 조각보 하나 만드는 게 이렇게 품이 들어가. 원단을 정사각형으로 잘라야하지, 색깔 합쳤을 때 보기 싫지 않고 어울리게 맞추지, 잘라서 반듯이 꿰매야지. 아무나 못해 이거. 우리 손녀도 미대 나왔는데 할머니 대단하다 그랬어. 나 아가씨 때부터 살림하면서 했으니까 내다 팔 실력 정도는 되는 거지. 그래도 양심상 1만 원만 받아.”
2005년 조각보 20장을 가지고 안국역 일대를 돌았다. 부채, 도자기, 병풍 등 한국의 전통 제품을 판매하는 상점에서 관심을 가졌다. 그곳에선 조각보를 1만원에 사서 3만원에 팔았다고 한다. 마음이 불편해진 김춘자 여사는 직접 리어카를 끌고 안국역에서 노점상을 했다. 김 여사의 집은 경기도 양주시다. 안국역까지 가려면 버스를 2번 갈아타야 한다. 오고 가고 왕복 3시간 걸린다. 몸은 힘들어도 조각보를 사고 싶어 하는 행인을 만날 수 있어 감사했다고 한다.
“신기한 게 장사 첫날부터 반응이 참 좋았어. 지나가던 외국인도 멈춰 서서 오랫동안 쓰다듬고 구경하고 갔어. 옛날부터 오방색이 집안에 있으면 잡귀가 없다 그랬거든. 알록달록한 천을 만지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 그래서 조각보를 만들어 팔았지. 태어나 잘한 일이야. 원래 인사동에 조각보 다루는 곳이 없었거든. 내가 장사하고 나서 여기저기 조각보 파는 상점이 많아졌어. 한국적인(한국의 전통문양) 걸 알린 공이 있지? 가격은 안 올릴 거야. 나이 먹어 욕심부리면 못써.”
△조각보 할머니 이춘자 여사의 조각보 제작 영상
오방색은 노랑(黃)·파랑(靑)·하양(白)·빨강(赤)·검정(黑) 5가지 색을 말한다. 전통적으로 물, 불, 흙 등 조화로운 자연을 의미한다. 원단은 동대문 시장에서 한복지를 주문해 만든다. 1롤당 약 5000원 정도 하는 고급 재질이다. 김춘자 여사 조각보는 꼼꼼한 바느질 마무리와 감각적인 색 조합으로 인기가 많다. 오랜 단골 중 유명 인사도 있다. 중견배우 고두심이다. 조각보를 20개나 사 갔다. 올해 초 김 여사의 집에 제주도 빵과 떡을 보냈다고 한다.
“엄마들이 좋아해. 이런 색이 없대. 삐뚤빼뚤해도 괜찮다나. 아무리 반듯하게 똑바로 오리고 붙이려 해도 잘 안돼. 사람이 하는 거라. 재봉틀, 가위 전부 나 결혼할 때 장만한 거야. 지금까지 버텨준 게 신기하지. 오래됐다고 무시하면 안 돼. 노인도 마찬가지야. 손을 움직여주면 머리에 좋잖아. 난 주문한 고객들 이름 주소 다 외워. 나이 먹고 노인정 가서 막걸리 마시고 춤추면 뭐 해. 열심히 살아야지. 가끔 일 때문에 어깨가 아프긴 해. 그래도 사람들이 조각보 사고 싶어서 기다리잖아. 주저앉지 않고 열심히 만들어야지. 지금 주문하면 3월 둘째주에나 받아볼 수 있어.”
전국구로 입소문 나기 시작한 건 김 여사가 2016년 SBS ‘생활의 달인’에 출연하면서부터다. 김 여사에게 조각보를 산 한 블로거가 인터넷에 사진과 함께 핸드폰 번호를 올렸다. 방송을 본 네티즌이 ‘안국역 조각보 할머니’로 검색했다. 그 후 길거리에 나가 장사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주문이 밀려들었다. 주문이 많아도 그만큼 못 판다. 지난달에는 70장 정도 팔았다. 2월 말까지 배송하지 못한 조각보 주문이 150장이다.
“나도 모르겠어. 어떻게 된 건지. 나 죽을 때까지 1만원씩 해서 조금씩만 벌어보려고. 싸구려 빌라라도 있지. 영감 있지. 큰며느리랑 작은며느리가 매달 용돈도 줘. 하루도 안 틀리고 보내주지. 넉넉진 않아도 버틸만해. 할머니가 80살 평생 살다 보니 정답이 없어.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게 있다면 바로 돈 벌어서 밥 먹고 사는 일이야. 그런데 이렇게 사람들이 알아봐 주니 좀 좋아. 죽을 때까지 조각보 만들 거야. 김춘자 조각보가 시간 지나 100만원으로 오를지 누가 알아?”
글 jobsN 김지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기사 원본 : https://1boon.kakao.com/jobsN/5c73aa1a6a8e5100018b50a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