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파 스튜디오 윤성원 감독
교환학생 용돈 벌기 위해 유튜브 채널 개설
독창적인 시각의 51개 영상으로 2억뷰 기록
뉴욕타임스 등 해외 외신까지 소개
10살 남자아이와 8살 여자아이가 처음 만났다. 두 아이의 국적은 달랐다. ‘아임 낫 스피크 잉글리쉬...’, ‘한국말 할 줄 알아?’ 각각 한국어와 영어가 서툴렀다.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번역기를 틀었다.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어디서 왔어’. 스마트폰 번역기를 통해 질문이 오고 갔다. ‘한국아이가 미국 아이를 처음 만나면 하는 말’이라는 4분 분량의 유튜브 영상은 35000만뷰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영상감독 윤성원(30) 감독의 작품이었다.
◇영화감독의 길 고민하다 ‘일단 찍자’
“하고 싶었던 직업은 딱 하나였어요. 영화감독이요. 어떻게 영화감독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해봤을 때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았어요. 한국에선 그나마 영화감독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는 루트 두개가 있어요. 기성 영화감독 밑에서 10년간 조연출하는것, 공모전에 당선되는것. 봉준호 감독님을 좋아했는데 봉 감독님도 살인의 추억 전까지 형편이 어려웠다 하시더군요. 도저히 20대를 그렇게 힘겹게 보낼 순 없겠다 생각했습니다. 마침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있는데 영상을 올리면 돈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해외에는 유튜브에서 활약하던 영상 전문가가 미국 드라마를 촬영하는 사례를 접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길이 열릴 거라 생각했습니다. 일단 영상을 만들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윤성원 감독은 20살 이후부터 10년 넘게 영상을 만들어왔다. 2009년 연세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에 입학했다. 대학교 1학년 때 영상동아리 ‘몽상가들’을 만들었다. 영상 공모전을 두드렸다. 군대 입대 전에는 8분짜리 독립영화를 찍었다. 혼자 대본·연출·연기 등을 맡았다. 아버지와 지인들에게 부탁해 6mm 필름 카메라로 촬영했다. 전역한 후에는 2013년 영상 프로덕션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함께 일하던 동료가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것을 봤다. 왜 하냐고 묻자 유튜브로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마침 윤감독도 교환학생을 떠나기 전이었다. 용돈이 필요했다. 출연자를 모집해 11분30초 분량의 ‘니키 미나즈 ‘아나콘다’를 본 한국 여자들의 반응’을 찍었다. 촬영 장소는 스타트업 지원 센터를 대관해 무료였다. 이 영상은 2019년 11월 기준 500만 이상 조회수를 기록했다. 그다음 영상 ‘미국 과자를 처음 먹어본 한국 여자들의 반응’은 830만명 이상이 봤다. 유명한 연예인이 출연한 것도, 선정적인 영상도 아니었는데 파급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국내 언론은 물론 뉴욕타임스 등 해외 주요 일간지에도 기사가 실렸다.
“처음 채널을 개설 당시 유튜브에는 미국·유럽 등 사용자가 대다수였습니다. 인기를 몰던 유튜브 콘텐츠 중에는 미국인이 아시아에서 만든 과자를 보면서 괴성을 내지르고 신기해하는 영상이 많았습니다. 그 영상을 보면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이 사람들 뭐지?’ 싶었죠. 왜 자기네 기준에 맞춰 아시아권 과자가 이상하다고 저렇게 거침없이 표현할 수 있지? 거꾸로 아시아인 기준에서 미국의 뮤직비디오나 과자 등을 평가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궁금했어요. 니키 미나즈라는 미국 유명 팝가수가 엉덩이가 흔들고 과감한 춤 동작이 담긴 비디오였죠. 한국인들의 시각에선 이들이 어떻게 보이는지 고스란히 담았어요. 지금은 흔한 리액션(reaction·반응형) 영상이지만 2014년 당시만 해도 신선하다는 평이 많았어요.”
◇영상감독 윤성원의 고민
대학 졸업 후에도 유튜브에 영상을 올렸다. 어떻게 철학적인 질문을 재밌게 담을 수 있는지 고민했다. “사람들이 관심 갖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관찰합니다. 예를 들어 소수의 의견이 있어요. 이걸 어떻게 대중에게 풀어낼 수 있는지 고민했죠. 일상에서 원어민 강사나 초등학생 등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기란 쉽지 않죠. 하지만 영상으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유발한다면? 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으면서 사람들에게 재미를 안겨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초등학생이 생각하는 죽음’, ‘냄새로 외국인 맞히기’ 등의 영상은 그렇게 만들어졌어요.”
한국 사회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익숙한 편견들을 부각시켰다. 819만 조회수를 기록한 ‘한국인들이 미국 수능 수학을 풀어본다면’은 국내외 반응이 모두 뜨거웠다. 영상에 등장한 대다수 한국인 출연자들은 손쉽게 미국 수학 시험문제를 풀었다. 해외 구독자들은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다’, ‘아시아인들은 수학을 너무 잘한다’ 등의 댓글을 달았다. 한국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난이도 높은 수학 교과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던 영상이었다. ‘한국 여자가 서양식 화장을 당해본다면(1115만 조회수)’이라는 영상에는 한국 여자들이 서양식 화장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댓글 창에는 미국·스페인·포르투갈 등 여러 국가의 구독자들이 서양권과 아시아권에서 왜 다른 스타일의 눈썹을 그리게 됐는지에 대한 열띤 토론이 펼쳐졌다.
‘개인의 취향’을 담아낸 영상은 솔파의 대표 콘텐츠다. ‘40대 1 이상형 찾기’ 영상은 남자와 여자편 모두 14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상형 10명 한번에 만나기’라는 영상은 3493만회 이상 재생됐다.
“데이팅 앱을 보면서 기획을 떠올렸습니다. 데이팅 앱을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이성에 대해 몸매·키·주량 등 세부적인 취향을 선택할 수 있죠. 앱에서는 자신의 취향과 조건에 맞춰 쉽게 타인을 거릅니다. 과연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현실에서도 이 과정이 쉬울까 궁금했어요. 자신의 사소한 취향으로 연인이 될 수도 있었던 상대방과의 만남 기회가 날아가는 과정을 찍고 싶었습니다. 출연자들은 자리를 떠나는 상대방의 모습을 보면서 어쩔 줄 몰라 했죠.”
출연자가 이성에 대한 자신의 취향을 공개할수록 주위에 모여든 이상형 후보군은 점점 줄어들었다. 서로에 대한 정보를 모르는 상태에서 출연자는 ‘대학을 졸업했는지’, ‘월급 150만원 이상인지’. ‘하루에 담배를 반갑 넘게 피우는지’ 등을 질문했다. 기준에 못 미치는 후보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출연자는 당황했다. 시청자들은 출연자들의 생생한 반응에 스스로를 대입시켜 상상했다.
◇지속 가능한 영상 제작을 위해 ODG 채널 개설
윤성원 감독이 만든 영상의 구독자는 국적이 다양하다. 영상에 담긴 독특한 시각에 ‘솔파스럽다’, ‘솔파 같다’ 등 신조어가 탄생했다. 2018년 8월 솔파 채널은 구독자 100만명을 돌파했다. 솔파 채널의 영상들의 총 조회 수는 2억뷰에 달한다. 유명 연예인이 출연한 것도, 자극적인 주제를 담은 것도 아니다. 다만 일반 유튜브 채널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전문 촬영 스튜디오에서 장비를 갖고 섬세하게 공들여 촬영한다는 점이다. 윤 감독이 5년간 유튜브 채널 SOLFA를 운영하며 올린 영상은 51개가 전부다.
“영상을 왜 이렇게 안 올리냐고 채근하는 구독자분도 많으세요. 영상 관계자들하고 미팅을 하다가도 ‘아이디어 하나만 줘봐’ 하세요. 아유 제가 자판기는 아니잖아요. 매일 아이디어가 샘솟아서 하루에 한편씩 영상을 촬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또 금전적인 문제도 있어요. 매일 인기 유튜버가 수천억대 돈을 번다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지만 솔파 채널은 예외입니다. 100만명 이상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중 솔파가 가장 수익이 적을지도 몰라요. 일반 유튜버와 달리 출연자를 섭외하고 장소를 빌려 촬영을 하니 출연료·장소 대여비 등의 지출도 나가죠. 그래서 보다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했습니다. 콘텐츠와 이커머스를 결함한 ODG 채널을 개설했어요.”
ODG는 윤성원 감독이 솔파에 이어 두번째로 연 유튜브 채널. ‘누구나 한번쯤 아이였다(You were a kid once)’는 슬로건에 맞게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키즈 출연자가 입고 나온 옷은 모두 ODG라는 키즈 쇼핑몰에서 판다. 영상을 보면 제품 구매로 이어지는 일종의 브이커머스 형태(Video Commerce)의 채널이다. 2019년 4월에 시작한 ODG 채널은 20여개 영상으로 7개월만에 구독자 75만명을 모았다. 네이버 블로그로도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최근 ODG 채널엔 유명 가수 지코가 출연해 아이들에게 노래를 들려줬다. 감성 짙은 노래에 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냈다. ‘얼마 전에 헤어졌어요? 지코와 이별에 대해 얘기하는 아이들’ 영상은 업로드한지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2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매일 새벽 3~4시까지 일하고 있어요. 팀원을 5명 두고 있는 엄연한 사업체죠. '소유냐 존재냐’라는 철학자 에리히 프롬의 질문을 떠올리면서 제 정체성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묻곤 해요.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제가 예술가인지 사업가인지에 대해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기로 했어요. 성공한 예술은 사업 형태가 될 수도 있고, 사업의 끝판왕은 예술적 형태로 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찍는 영상이 영화인가, 영화가 아닌가라는 질문 역시 미완성 상태예요. 요즘 시대에는 영화와 드라마, 유튜브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끝없이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놓치지 않으면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할 거예요. 솔파가 세계적인 영상 콘텐츠 제작사가 되는 그날까지 말이죠.”
글 jobsN 김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