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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아 Jun 05. 2016

믿음에 돌을 던져라 : 곡성

한국판 엑소시스트 + 다이하드

작년 충무로 악마는 유아인이었다면

하반기에는 차원을 넘어선 악마를 보여준 2016년의 문제작

<곡성>



좋은 해석들이 이미 많지만 여운이 길게 남아 쓰고싶다.

지극히 나의 주관적인 입장과 현재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집중하는 해설이 될 것 같다.



1. 영화는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가?


영원히 고통받는 존재, 아버지라는 이름

 


조용한 마을에서 경찰로 임무를 다하며 평화롭게 가정을 일궈나갔던 종구는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이게 뭔 일이래..." 하며 출동했던 첫번째 사건에도 별다른 열의 없이 사무적으로 임한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역할이었다.


효진이 그런 아버지에게 악에 받쳐 욕을 내지르는 장면

이성복의 시가 떠올랐다.



어떤 싸움의 기록


                                       이성복



그는 아버지의 다리를 잡고 개새끼 건방진 자식 하며

비틀거리며 아버지의 샤쓰를 찢어발기고 아버지는 주먹을

휘둘러 그의 얼굴을 내리쳤지만 나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 또 눈알을 부라리며 이 씨발놈아 비겁한 놈아 하며

아버지의 팔을 꺾었고 아버지는 겨우 그의 모가지를

문 밖으로 보고만 있었다 (...)



  

종구는 아내와도, 장모에게도 사건의 경위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도움을 요청하지도, 고민을 털어놓지도 않는다.

혼자 계속해 고군분투해나갈뿐이다.



곽도원의 먹먹한 눈빛과 어찌할 바를 모르는 눈빛에서 



인간은 어떻게 이렇게 혼자일까.

철저히 고독한 존재라는 사실을 또한번 자각한다.



 



아버지는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한다.

부지깽이를 들고서라도 외지인을 찾아간다.

사실 그가 외지인을 의심하는 이유의 근거는 빈약하다.

그럼에도 무작정 찾아가 그의 집기를 다 부수고, 협박한다.



여기서 주체할 수 없는 그의 분노가 왜 이렇게 낯설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어려운 상황과 마주했을 때,

불편하고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을 때,

행동으로 먼저 옮기는 아버지의 모습.


종구는 경찰이기 이전에 아버지였다.



2. 인간의 선택과 믿음으로 운명은 바뀔 수 있는가?


 


신화에 항상 등장하는 조건이 있다.


판도라는 상자를 열어보면 안되고, 프시케는 촛불을 밝혀 에로스의 비밀을 들춰낸다.

에우리디케를 지하세계에서 데리고 오려는 오르페우스 또한 금기를 저버리고 만다.

지하세계가 모두 끝나긴 전까지, 절대로 고개를 돌리지 말라는 조건을 어기는 것이다.


 


천만원을 준비하라는 무당의 조건과는 달리, 무명의 요구는 간단하면서도 심오했다.



무명의 말대로

만약 닭이 세번 울기 전까지 무명과 함께 있었다면 결말은 달라졌을까? 



종구는 굿판을 그만두게 하고, 무당의 전화도 받지 않으면서도

무명의 말도 따르지 않는다.



사제역할로 출연한 양이삼도 그렇다.

당신은 악마다.

라고 선언한 이후에도

당신은 정말 악마인가?

하고 반문한다.

악마는 이런 인간의 본성에 웃음을 터뜨린다.



인간의 믿음이라는 것은 얼마나 취약한가.

사람의 선택이라는 것은 얼마나 쉽게 바뀔 수 있는가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는 북한도 남한도 아닌 중립국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 결국 죽음을 선택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결국 고통받는 인간의 숙명은 스스로의 선택과 믿음으로 바꿀 수 없다는 걸까?

질문하고 회의하는 인간 내부의 목소리가 악 그 자체인건 아닐까?




3. 마녀는 존재해야만 한다.  


감독은 왜 곡성을 만들었나라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중앙일보. 나홍진이 말하는 곡성의 결말. 전형화 기자)

죽지 않아야 할 상황이었던 가까운 가족이 죽었다. 라고 대답한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한다. 너무 선한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세상을 떠났으니까.

설명이 필요했다고.



진실이 무엇이던간에

악의 대상은 있어야만 했다.



원흉이 도대체 누구인지

영화의 칼춤에 따라 지켜보는 관객들도 진지하게 구상한다.




그게 외지인이건, 여성이건

불태울 화형은 반드시 집행돼야만 한다.



"도대체 왜 나야?"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이유또한 마찬가지다.



무당은 단순하게 설명한다.

아무 이유 없다고. 그저 미끼를 물었을 뿐이라고.

아마도 이 대답이 이 영화에서 가장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의 대사일 것이다.



"니가 살아서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말해봐" 라는 추격자 속 하정우의 싸늘한 대사가

떠오르는 나홍진 감독만의 세계관이다.

 



번외 ) 영화적 기법



1. 외지인의 개


영화 속에 강렬한 존재감으로 등장하는

국민 악역전문 견


 


잠깐...어디서 많이 안봤어요...?



베테랑에서 조태오의 강아지로 출연해서 폭풍 카리스마와 신음소리를 안겨준 그...!

다음 영화 출연때는 끝까지 살아있자...☆




2. 비

영화 내내 비가 너무 많이 온다.

종구는 한번도 우산을 쓰지 않는다.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하늘에서 뚝뚝 떨어지는 불행을 뒤집어쓴다.



3. 자연 속의 고립


 


높은 건물 하나 없는 공간이 어떻게 이렇게 답답할 수 있을까.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들을 넓게 잡는 장면에서조차 숨이 막혔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속에서처럼 

나무와 풀 그 모든 것들이 살아 움직이고 지켜봐지고 있는 것 같은 의식이 든다.







++ 진짜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웠던 장면이 무엇이었나요?

저는 

1. 번개가 번쩍할 때 창밖에 보였던 마을 여자의 모습 

2. 좀비로 변한 이가 마을사람들을 습격하는 장면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스릴러라 

무서운 씬들이 자꾸 세수할때마다...컴컴한 창문 시야에 뜨일때마다...엄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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