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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아 Jun 22. 2016

축축한 습작 1

아몰라 쓸거야

S#1  J의 방. 새벽 5시에서 6시 사이


방 주위는 어지럽게 옷가지들로 늘어져 있고 

책상에는 책들이 잔뜩 쌓여있다.

J, 부스스 일어나 거울을 본다. 허리춤을 만져보며 살들을 체크하며

부엌으로 기어간다.


1리터 주전자에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 6:4로 채우고

물병째 꿀꺽꿀꺽 마신다음

 

시리얼과 견과류들을 두유에 담는다.

멍한 채 침대 옆에 앉아

어제 읽다 잤던 책들을 꺼내보거나 

핸드폰에 고개를 박은 채 새로운 인터넷 뉴스들을 읽어낸다.

아침식사는 금방 동이 난다. 


두시간 후에 있을 아침드라마 모니터링 전에 

옷을 갈아입고 - 씻고 - 하루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한다.


J의 아빠가 등장해 베란다에 수영복을 챙기고

신문을 방 앞에 가져다 준다.


J는 아직도 누워있다.

시계를 초조하게 본다.


S#2  거실 

근처 헬스장에서 샤워를 하고 운동을 하고 급히 문을 여는 J

빠르게 텔레비전을 켠다.

텔레비전 소리에 J의 엄마는 방문을 닫는다.

다행이 아직 광고중이다.



S#3  카페

슬리퍼를 신고 분홍색 노트북 케이스를 한쪽 팔에 낀 채

카페로 출근한다.

오천원 아이스 녹차.

맑은 티가 좋은 J는 녹차를 달라 하는데 점원은 몇번이나

녹차라떼냐고 묻는다. 금세 험악해지는 J의 표정. 

단골이지만 호감이 가지 않는 그녀다.


드라마 대본을 꺼내 읽는다.

불륜과 출생의 비밀들이 한올한올 엮여진 한 회 대본들의

오타를 수정하고

대사들을 맛깔나게 고친다.


중복되는 씬들은 빨간 폰트로 칠하고

기울어지는 효과를 써서 새로운 에피소드를 추가한다.

어느새 3시간이 지나있다.


'허리가 무겁게 가라앉는다.

오른쪽 갈비뼈가 조금 튀어나온다.

눈이 시큼거린다.'



S#4  근처 방송국


메일을 보내고

방송국 1층 까페로 가 앉는다.

방송국은 출입증이 있어야 진입이 가능하지만

특성상 외부인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라 까페는 개방돼있다.


"작가님! 여기요"

"박PD님 왜 안오신대요?

"아니...PD가 편집하기 싫다는게 말이 돼요?"


작가들이 PD를 뒷담까고

PD들은 험상궂은 표정으로 로비를 가로질러간다.

엄마들은 화장한 어린 아이들의 손을 잡고 방문증을 쓴다.

J는 론리 플래닛을 꺼내든다.


여행 포르노지를 처음부터 끝가지 탐독하는 J의 모습을

카페 직원은 흘끗거린다.


더운 날 상의부터 하의까지 무늬 없는 검정색으로만 입고

캡모자를 눌러쓴 채 몇일 전부터 출몰하는 젊은 여성은

묘한 언밸런스지만 


때때로 뽀로로 분장을 한 인형탈이나

방귀쟁이 뿡뿡이도 쉬었다 가는 공간이라

상관없다. 풍경이란 이해할 수 없어서 눈 앞에 놓인다.



S#5  책 대여점


머리가 긴 남자가 무협만화 코너에서 신중하게 책을 고른다.

하얗게 센 머리지만 숱이 많아 빈티나지 않는 주인 할머니가 

빨간 루즈를 바르고 앉아있다.

그 안엔 선풍기만 살아있다.


J가 불쑥 들어온다.

1권부터 10권까지 담긴 <봉신연의> 쇼핑백을 주인할머니께

건네고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빌린다.


연체료 "2000원에 대여료 1700원. 3700원." 

수요일까지만 갖다주면 된다던 주인할머니의 말이

달라져있다는 걸 느끼며

날카롭게 되묻는다. "연체됐어요?"

어쩌고 저쩌고 말이 이어진다 

J는 제대로 듣지 못한다.


흥미없는 주제였던 것 뿐만 아니라 귀찮아지기까지 해서

아주 쉽게 논쟁을 포기한다.

약간의 분노의 몸짓으로 오천원을 건네고.

그걸 읽은 주인할머니는 2000원을 거슬러준다.



S# 장마의 시작


장마가 내린다.

안도감을 느끼며 집안에 머무른다.

방학이 시작된 이후로 교통카드 지불 목소리를 한번도 못들었다.

'돈버는 게 별건가. 아끼는거지'.

벌러덩 누우며 하루키를 편다.

'이 아저씨는 적어도 변태성이 없어보여. 청순한 편이야'



S# 사람을 별로 만나지 않는 이유


사람들을 만나면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한 찬사가 공통적인 화제다.

공무원과 교사라는 직업은 안정적이고, 보수가 높다는 점에서

훌륭한 직업이라는 것이다.



불확실성-이라는 건

멋진건데 그 비밀은 불행하고 어깨동무하면서 버무려져있어서

잘 나타나지를 않는다..


하긴 이미 세상이 많이 상해버려서

얼마나 노오오오오력한들.

눈 껌쩍 할 수나 있을런지.

다들 그런 현실이 너무 무거우니까 하는 소리일거다.



어쨌거나 드라마는 100회까지 쓰여질 것이고

매일매일의 노동을 타자기는 기다린다.

J는 일단 누워있기로 한다.

평화로운 것들은 모두 누워있기에.


야 ! 인생? 네트워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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