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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아 Jun 15. 2024

드라마 <삼식이 삼촌>

난해함은 지루함이 된다.

어떤 드라마는 너무 쉽고 단순해서 문제인데, 어떤 드라마는 너무 난해하고 복잡하다. <삼식이 삼촌>이 그렇다. 묵직함을 안겨주는 시대극인데다 보기드문 소재와 등장인물이다. 선과 악이 분명하게 나뉘지 않는데다 등장인물들이 접하기 어려운 직업군을 갖고 있다. 그 중심 축에는 삼식이 삼촌이 있다.


삼식이 삼촌은 군인과 정치인, 정치깡패들을 모두 손에 쥐고 판을 짜는 킹메이커다. 혼란했던 1960대에서 그 틈을 타 주도면밀하고 계산적으로 움직여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미군 부대에서 유통기한 지난 물품들과 폐타이어, 사용기간이 지난 차량들을 암시장에 내다 파는 수완을 발휘한다. 그렇게 마련한 정치 비자금으로 정계 주요 인물들과 긴밀하게 지내며 자신의 입김을 불어넣는다. 김산을 정치인으로 발굴해내고, 그를 써먹는 것 또한 삼식이 삼촌의 계획이다. 완강하게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김산과, 그가 결국 마음을 바꿀 것이라고 장담하는 삼식이 삼촌의 대립이 꽤나 흥미진진하게 느껴진다. 가난한 김산의 집안 형편을 한번에 간파하고 쌀이 떨어졌을 때 쌀을 갖다주고, 갈등의 기로에 서 있을때 전화기를 선물하는 삼식이 삼촌의 계략에서 힘이 느껴진다.


삼식이 삼촌을 보고 있자면,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민식 배우가 맡았던 역할이 떠오른다. 밑바닥에서부터 가진 것 하나 없이 야망과 눈치만으로 올라와 시대의 권력층 뒷편에 서서 그림자처럼 정치인들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해대는 삼식이 삼촌의 야망을 보고 있자면 섬짓할 정도다. 다만 2부까지 보았음에도 삼식이 삼촌 캐릭터는 낯설고, 어렵다. 가족관계나 살아온 행적, 과거 등도 불투명하다. 주인공 개인적 영역에 대한 설명은 모두 빠진 채, 그가 정치적 설계를 위해 만나는 인물들이 관계의 전부다. 그래서 삼식이 삼촌이 어떤 인간적 결함이 있는 존재인지, 어떤 단점과 한계를 가진 인물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게다가 시종일관 등장인물들이 무겁게 대사를 하고 있어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가라앉고, 재미요소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범죄와의 전쟁>에서는, 사람의 밑바닥을 보이게 하는 대사들이 참 많았다. “내가 마 느그 사장하고 마 밥도 묵고, 사우나도 가고!”, “우리 삼대독자 최주화이, 니 잘봐놔라이, 대성할 놈이다” 등등 올드하지만 그 시대적 감성이 잘 드러나는 대사들이 지금까지도 유행어로 남아있다. 그래서인지 관객들이 더 이야기에 몰입하고 빨려들어가 지켜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 최민식은 상황에 따라 대단히 천박하고, 욕설도 마구 지껄여댔다. 그래서인지 더 옛날 옛적 진짜 우리 아빠같은 모습이 떠올랐다.


그에 반해 <삼식이 삼촌>에서는 모든 대사들이 지나치게 절제돼있고, 세련됐다.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감정을 잘 내비치지 않을 정도로 대사가 짤막하고, 씬 자체의 길이도 길지 않다. 물론 시대의 무게가 주는 깊이감으로 인해 드라마도 묵직한 분위기로 전개되는게 나쁘지만은 않은 선택일 수 있겠으나 그만큼 대중적 재미나 매력은 깎인다고 볼 수 있다. 이 드라마에서 무엇보다 중요한건, 뱀같고 여우같은 삼식이와 답답한 원칙주의자 김산간의 케미스트리다. 두 남자가 이 시대를 가르며 무슨 일을 벌이고, 어떻게 서로를 배신하며 이용해먹을지 시청자의 호기심을 끌어야 한다. 마지막까지 이 두사람의 관계가 해피엔딩으로 끝날지 파멸로 끝날지를 긴장감 있게 그려내야 한다.


드라마의 첫장면, 육군본부에 끌려가 김산이 심문당하는 장면으로 봐서는 두 사람의 파멸은 예정된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 결말이 시청자에게 납득할만한 여운으로 남을지, 혹은 또 다른 분노를 낳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삼식이와 김산이라는 두 남자의 서사가 굵은 줄기를 이루기 때문에 너무 복잡한 잔가지와 어수선한 시대상의 표현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드라마가 되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함은 지루함이 된다. 지루함 속에서 벌어지는 주인공의 분투는 그들만의 아우성일 뿐이다. 왜 하필 2023년 이 시점에 1960대를 돌아보는 드라마가 나와야하는지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아무곳에서나 튀어나와 분탕질을 하고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정치건달 동대문파 서대문파의 등장도 거칠게만 느껴진다. 누가 누구의 편이고, 이들의 목적은 무엇인지 대본상 정교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듯 하다. 김산이라는 남자는 너무나 전형적이라 재미가 없고, 삼식이는 그에 반해 능력이 너무나 과해 보이는데, 이들이 어떻게 한뜻을 이루어가다 꺠어져 비참한 결말에 이르게 될지 궁금증을 놓지 않는 드라마가 되길 바란다. 또 배우 송강호의 첫 드라마 도전기라고 하는데 '나이스한 개새끼'인 삼식이 캐릭터란 옷이 겉돌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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