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리도 못가 발병이 나
커뮤니케이션이론 중
그라노베터의 Strength of weak tie, 약한 연대 이론은
인맥에 관한 이론이다.
그는 관계의 밀도를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과, 감정적 강도, 친밀도,
그리고 상호간의 교환작용 등으로 정의했다.
그는 A라는 사람이 B와 C와 시간을 각각 보낼 때
B와, C가 관계를 맺을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결국 B와 C와의 관계도 생겨나는데, 이것이 인간관계의 ‘다리’다.
이 다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람은 자신에게 이상적인 연인을 만나거나, 직업을 찾는데 유리해진다는게
그라노베터 (Granovetter, 1973)의 주장이다.
즉, 소위 마당발일수록 = 인맥이 넓을수록 이 사회를 살아가기에 유리하기 떄문에
소셜미디어는 인간의 삶에 더 많은 기회를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약한 연대가 주는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얼마전 나는
사적인 관계 중심의 소셜미디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비활성화했다.
이왕 이론을 언급한 김에,
그라노베터의 의견과는 다소 반대되는 주장을 펼친
커뮤니케이션 학자이자 진화인류학자인 로빈 던바를 소개하고자 한다.
던바의 수 (Dunbar’s Number)는
인간이 사람을 아무리 가깝게 사귄다고 할지라도 최대 150명을 넘길 수 없다는 의미다.
사회적 뇌 가설(social brain hypothesis)’은 전형적으로
인간은 어느 시기에나 150명 넘는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예측한다.
이런 제약은 부분적으로는 뇌 용량과, 시간의 제약 때문이다.
(반드시 친족 관계일 필요 없는) 가까운 관계(friendship)가 유지되는 것은 거기에 들이는 시간 덕분이며, 그렇자 못할 때 그 관계의 질이 원치 않더라도 악화한다. - Dunbar, 2012
페이스북의 친구 수가 아무리 많다고 할지라도
신경쓰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의 수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내겐 그라노베터보단 던바의 이론이 더 설득력 있었다.
어느순간 이런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체 이만큼 ‘잘 살고 있다’는 표식은 누구를 향한 선언일까?
그럼, SNS 사용시 의식하며 눈치보며 전하는 나의 #일상#근황은
늘 연락하며 지내는 가까운 지인들일까,
아니면 그 여집합인
얼굴이 가물가물한 중학교 동창, 옛 썸남, 이전 직장의 과장님 등인걸까?
나는 아무래도 후자였다.
그래서 소셜미디어를 그만뒀다.
당신은 피드백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은 자신이 팔로잉한 사람이 자신을 팔로우 했는지 안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어플을 설치하며 틈틈이 보고 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말을 하는 이의 인스타그램은 왠지 두려워져서 언팔로우를 끝까지 누를 수 없었다.
그의 삶이 아주 많이 궁금한 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버튼 하나로 종결돼버리는 관계들과
무심코 던지는 돌같은 댓글,
어쩐지 계속 확인하게 되는 좋아요 수 등
SNS의 피로감은 가상공간일 뿐인데도 이렇게 관계의 미묘한 융털을 건드린다.
확실히 이곳은 혼잡한 배설공간
인정한다. 나는 열심히 배설해댔고, 최선을 다해 타인을 관음했다.
그리고 어느날, 그런 나를 관음하는 타인의 시선을 상상했을 때, 왠지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이곳에 들어온 이상 구원은 없다’
하거나, 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였다.
링 아래로 내려가 완전히 투명해지고 싶었다.
그만두고 나니 이런게 좋다
그리운 사람들은 그리운대로
‘어떻게 살까’
왠지 궁금해지는 먼 사람들의 근황,
누군가는 근사한 직장에 취업을 했겠고
그렇게 취업에 성공했어도 또 나름의 어려움을 겪고 있을테다.
어떤 이는 환상적인 바닷가 해변에 누워 사진을 올리며
해외여행사진들을 포스팅했을 것이다.
혹은 연인과의 사진을, 오늘 먹은 음식을, 예쁜 몸매를
올렸을 것이다.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잘 살고 있겠지 다들
상상력에 맡겨두는 공백이 썩 나쁘지 않다.
스마트폰 이용 콘텐츠의 변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간이 확실히 줄었다.
뿐만아니라 전문적인 언론사의 뉴스기사들을 많이 찾아보게 됐다.
페이스북에도 좋은 정보들이 많긴 하다.
하지만 불확실한 유언비어와 찌라시가 떠도는 편이고,
조회수를 올리기 위한 잔인하거나, 야한 사진들을 볼때면 스트레스가 더 가중되는 기분이었다.
잡음에서 해방된 기분이다.
하지만 언제 또다시 변덕이 도질지 모른다
어느 사회 집단에 속해있는가에 따라 소셜미디어 사용목적이나 이유 또한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대화 화제 자체가 SNS 이슈성 얘기로 맞춰진다거나, 어떤 맛집이 핫하다거나 하는 순간,
불쑥불쑥 다시 접속에 대한 욕구가 생겨난다.
그럴때마다 일단은 참아보려한다.
언제나 고요와, 평화가 깃들기를.
아직은 집중해야할 것들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한다.
*덧, 우리나라에서 보편화된 SNS라는 표현은
엄밀히 말하면 콩글리쉬라고 합니다.
소셜미디어 라는 표현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단어입니다.
이번에 핀란드 학생과 팀프로젝트를 하면서 저도 배웠던 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