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스무 살 청년이 있다.
성인기에 접어든 그는 혼란스러운 내면을 감추기 위한 어리버리한 진지함을 연기한다.
그 연기의 일환으로 학생 운동회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당연한 수순으로 한 여자를 좋아하게 된다.
이 청년에겐 최선의 방법은 없다.
상상할 수 있는 최악과 차악의 구애로 여자의 주위를 빙빙 돈다.
여자는 평일에는 아르바이트와 공부, 주말엔 촛불집회에 나가는 성실하고 모범적인 대한민국 20대다.
읽기만해도 식은땀이 베어들 것만 같은 그의 카톡에 네다섯시간 이상 걸려 답장하는건 기본이고 하루가 넘어갈 때도 종종 있다.
청년은 그녀가 보낸 성실하지만 그녀의 일상에 그가 필요하다는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답장에 괴롭다.
그에겐 현재 시국이란 조금 황사가 낀 답답한 날씨일 뿐, 사실은 당위와 분노를느낄 수 없다.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일단 그가 가장 화나는 현실은 촛불을 든 채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프로필 사진이다.
아무리 SNS를 추적해도 누구와 동행했는지에 대한 미스테리는 풀리지 않는 것이다. 심사가 뒤틀린다.
남 : “오늘도 집회에 나가니?” (전날 오후 1시)
녀 : “대한민국에 민주주의 정신이 진정으로 수호되는 그날까지 나갈거야!" (다음날 오후 8시)
남자는 부아가 치민다. 답장이 어떻게 이렇게 느릴 수 있지?
페북에 사진 올린걸 보면 내 카톡을 못본건 아닐텐데.
그는 촛불도 사서 종이컵에 끼워놓고, 그녀에게 건넬 핫팩도 (너무 많이) 사놓는 등
모든 채비를 마친 후 그녀의 답장만 기다렸다.
하지만 완벽한 준비성(아마도 계획 실현의 가능성을 낮추는)에도 불구하고 신발을 신은 채 밖엔 나가보지도 못하고 현관문가에 앉아 생중계하는 촛불 뉴스들을 보며 주말 저녁을 보냈다.
남자는 어금니를 깨물며 생각한다. 도발하겠다고.
“민주주의 정신이란 인류의 몽상일 뿐이야!”
마초적 말투 속 남성성에 만족하며 핸드폰을 던져버린다.
나쁜년. 강선배랑 썸타고 있는 게 분명해.
지난번에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도 둘이 히히덕거리고 있었지. 여자들의 어장관리 지긋지긋해.
그는 학생회를 탈퇴하고 다른 동아리에 들어갈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스무살 남자들의 계획이 그러하듯, 무산된다.
평생 험한 말이라곤 접해본 적 없던 짝녀는 그 악의에 찬 카톡을 캡쳐해 주위에 보여줬고, 썸타던 강선배를 비롯한 학생회원들은 분노한다. 이윽고 그 카톡은 SNS에 올라온다. ‘OO대 박사모남’이란 수식어를 들으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조롱과 돌팔매질을 당한 그는 이제 휴학하고 군입대에 서둘러야만 한다. 박이 아닌 동기 여자애를 사모했을 뿐인 스무살은 그렇게 학교로 돌아갈 수가 없다.
아, 오해는 마세요.
밀란 쿤데라의 <농담>에 대한 줄거리가 오늘같은 때에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에 대한 픽션입니다.
잘 생각해 보면 나도 실은 마르케나가 주장했던 것 하나하나마다 모두 같은 의견이었고, 그녀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서유럽의 혁명을 믿었다. 내가 동의하지 않은 것은 단 하나, 나는 그녀를 애타게 그리워하는데 그녀는 만족스럽고 행복해한다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엽서를 한 장 사서 (그녀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충격을 주고, 혼란에 빠지게 하려고) 이렇게 썼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루드비크 - 59p, 농담
밀란 쿤데라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뭐지(긁적)’ 하고 느꼈던 지점을 예리한 핀셋으로 도려내 그 실체를 독자의 눈 앞에 드러낸다.
그 불일치란 감각 속에서 황급히 다른 시공간으로 옮겼던 우리에게 ‘너도 사실은 알고 있었잖아. 모호함이 저절로 선명해질 때까지 내버려 뒀을뿐.’ 이라고 농을 건넨다. 딜레마는 이렇게 공기나 수분처럼 강한 줄기를 맞지 않는 한 주위에 계속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식하기란 불가능하다.
젊음이란 참혹한 것이다. 그것은 어린아이들이 희랍비극 배우의 장화를 신고 다양한 무대 의상 차림으로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면서 광적으로 신봉하는 대사들을 외워서 읊으며 누비고 다니는 그런 무대다. 역사 또한, 미숙한 이들에게 너무도 자주 놀이터가 되어 주는 이 역사 또한 끔찍한 것이다. (중략) 이런 생각을 하면 내 머릿속에서 모든 가치 체계가 흔들려 버리고 젊음이라는 것에 대해 엄청난 분노를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또 반대로 역사의 불한당들이 한 일이 갑자기 그저 미숙아들의 무시무시한 동요로밖에 보이지 않으면서 그들에 대하여 역설적인 너그러움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 152p. 농담
요즘과 같은 때에 정말 필요한 문장이다. 모든 천기누설의 시작은 최순실네 강아지였다는 것이 개같은 팩트니까. 하지만 광장에 모인 시민들에게도 물을 수 밖에 없다. 헌법 질서가 무너진 국가에서 어떤 선진국가에서도 찾을 수 없던 수준 높은 행진을 보여 온 그들이다. 그러나 탄핵이 가결된 후의 촛불은 또 다른 양상이었다. 그곳에는 보다 더 복잡하고 다양한 욕망을 지닌 사람들이 있었다. 거짓말, 농담 같은 현실에 성난 사람들과 그 응집력에 편승한 많은 노점상들. 제대로 쓰이지도 않는 세금을 왜 내야하느냐고 묻는다면 이 또한 답할 수 없는 딜레마다. 영하의 기온에 오랜 시간 한 자리에 서 있는 의경들의 저린 발을 바라보며 초반에 타올랐던 순수한 열망이 변질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