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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아 Oct 15. 2024

40대 무직 백수 친척 언니의 인생 역전 스토리

친언니가 가수 디오에 푹 빠져서 주말 내내 콘서트장에 가 있다. 생각해보면 언니는 어렸을 때부터 늘 무언가에 깊이 잠겨 있었다. 무수한 00년대 아이돌은 물론 팬픽을 죄다 섭렵한 덕후였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삶은 늘 풍요롭다. 두 아이의 육아에, 용산에서 판교로 왕복 2시간씩 매일 출퇴근하는 생활인데도 피곤함을 토로한 적이 별로 없다. 언제나 밝은 얼굴로 헤헤 웃으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쏟아낸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쫓으면서 살아야 한다. 물질적인 성과가 나오건 나오지 않건 상관 없다. 나는 어릴적 문학에 심취해 있던, 전형적인 문학소녀였는데 작가가 되겠다고 하면 주변의 한심한 어른들이 늘 이렇게 말했다. "작가는 굶어 죽는 직업이야"

 

작가는 결코 굶어 죽지 않는다.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한다면 오히려 돈을 못 번다. 모든 선택이 그렇다. 투자가 아닌 이상, 직업과 결혼상대를 선택할 때 돈을 위해 뭔가를 선택하면, 반드시 망하거나 꼬인다.



돈 잘 벌기 위해 의사가 된 사람들은 아마 아픈 환자들만 봐도 지긋지긋할거다. 그런 상황에선 아무리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이고 많은 수입이 주어진대도 내일 당장 때려치고 싶다. 돈 많은 상대와 결혼하면 모든 복잡한 문제가 해결되고 꽃길만 걸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궁금하면 한번 해보시길 바란다. 타인과 살 부딪히며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 타인이 아무 감정이 없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함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숨막힌다.


만약 그때 어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서, '굶어죽기 싫으니 딴 거 해야지' 했다면 지금쯤 대단히 싫어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게 뭔지는 뚜렷하게 떠오르진 않지만 100억을 갖다준대도 못할 일들이 나에겐 꽤 산적해 있는 편이다.


외가 사촌 중 공부를 유독 못하던 언니가 있었다. 학교 다닐 때 거의 낙제를 받았고, 체중도 많이 나갔다. 중고등학교 때는 동네에서 유명하게 놀기도 잘 놀았던 것 같다. 가족모임을 하면 중학생 교복을 입고 노란 머리로 염색하고 나타난 게 분명 기억이 난다. 이모가 그 언니를 두고 항상 하던 말이 "어릴 때 한약을 잘못 먹어서...머리가 좀 나빠지고 살이 안빠지나봐"라고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심한 말인데 하여튼 모든 집안에는 그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존재 하나쯤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 언니가 요즘 많은 돈을 벌고 있다. 그녀는 대학을 가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네일아트 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해 네일샵을 열었다. 장사가 잘 안됐는지 샵을 접고 부동산과 학원 등에 취업하기도 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를 한다는 것 같았는데 감감무소식이었던 걸 보니 별 소득이 없었던 것 같다. 30대까지도 그녀는 방황만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성실하고, 착한 언니였다. 의리와 우애도 있어서 자기 앞가림 못할 시절에도 항상 동생들 안위를 걱정했다. 어디서 뭘 하는지는 몰라도 먼저 연락해서 안부를 묻던 그런 언니였다. 엄마한테 듣기론,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연명해 나갈 때도 이모의 용돈을 항상 챙겨줬다고 한다. 그래서 이모에게 언니는 40살까지 결혼을 못하건 백수이건 간에 언제나 자랑거리이고, 소중하고 예쁜 딸이었다.


그러던 언니는 신도시에서 순댓국집을 열어 소위 말해 '대박'을 터뜨렸다. 순댓국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오래 하다가, 사장의 눈에 들어 비결을 배운 뒤 신도시로 옮겨 자기 가게를 열었다. 그리고 그 가게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 맛집으로 소문이 났고, 이제는 줄을 서서 먹어야 할 정도로 인기 가게가 됐다. 반찬부터 김치까지 다 직접 만들어 인심을 샀다.



또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언니라 늘 웃는 낯으로 손님들을 응대했을 게 분명하고, 후한 인심으로 마구 퍼줬을 것이다. 하여튼 순댓국집은 여러곳으로부터 체인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또 다른 백수 친척 동생 중 한명을 가게에 취업시켜 기술을 알려주고, 독립을 준비시키고 있다. 경기가 안좋아 자영업이 힘든 시기라던데 대단하게 뚫어내고 있다. 식당 일이 무척 중노동인데, 친척 언니가 자랑스럽다. 또 착한 언니가 그토록 기다리던 결실을 맺은 것 같아서 너무 감사하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게 있으면 세상의 끈을 놓지 않는다. 친척 언니는 사람을 좋아했고,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할 줄 알았다. 언니는 가게에서 함께 일하던 남자와 결혼해 예쁜 가정을 꾸렸다. 아무리 돌고 돌아도 사람만 정직하고 무해하면 결국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가는 법이다.


여러분의 인생 시나리오는 어떻게 쓰여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섣불리 계산기를 두들기지 않길 바란다. 좋아하는 거 하나씩 까먹으면서 버티다보면 좋은 날 온다. 그 좋아하는게 개인적으로는 사랑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9bXaWHBec_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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