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연애의 연장선일까

설레는 로맨스 드라마의 해피엔딩은 언제나 결혼이다.

by 스몰빅토크

부부상담.

이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많은 사람들이 부부 관계에 문제가 있거나 갈등이 극심할 때, 그리고 이혼하기 직전 부부상담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게 사이가 그렇게 좋다면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 전문가에게 상담이라는 걸 할리가 없지 않은가.


스크린샷 2026-01-20 오후 9.19.21.png Edward Hopper “Automat” (1927)


남편과 결혼 5년 차. 우린 3살 아이를 한명 키우고 있다.

작년 하반기 남편과 나는 계획하에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 그리고 나는 둘째 임신과 동시에 어떤 기억이 주루룩 떠올랐다. 첫 아이를 출산한 후 극으로 치닫던 나의 감정 기복. 남편에 대한 분노와 혐오스러운 감정들. 100일도 되지 않았던 신생아와 회복되지 않은 몸을 끌고 극악의 히스테리를 부렸던 모습.


물론 이렇게만 그린다면 나를 끔찍한 악처로 바라볼 것이다.

하지만 산후우울증이라는 건 생각보다 그리 간단하게 통제될 수 있는 감정은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정신병자 비슷하다 여겼으니까.

오죽하면 산후우울증 때문에 출산한지 얼마 안되는 엄마가 베란다를 서성이다 뛰어내리는 경우도 있을까.


모유수유를 6개월 넘게 했던 나는, 신생아 새벽수유를 모두 담당할 수 밖에 없었다. 한밤중 2~3시간마다 깨서 너덜너덜한 손목과 부서질 것만 같던 골반을 질질 끌며 아이에게 수유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시각 남편은 침대에서 쿨쿨 잠을 자고 있었다. 그에겐 아이를 낳기 전이나, 후나 듬직한 일상이 반복되고 있었다. 눈을 떠서 가야 할 회사가 있었고, 비즈니스석을 타고 한달 넘게 미국 출장도 갔다왔다. 아이를 낳고 모든 것이 변해버린 나와, 모든 것이 그대로인 남편의 관계는 결코 평온할 수 없었다.

스크린샷 2026-01-20 오후 9.20.55.png Edward Hopper “Morning Sun" (1952)

엄마가 되기 위해선 산통 뿐만 아니라 호르몬이 주는 고통도 견뎌내야 했다. 호르몬의 망령에서 벗어난 지금은 그땐 뭐가 그렇게 털끝만 스쳐도 예민하고 화가 미친듯이 났을까 싶지만, 그땐 그랬다. 남편의 작은 눈짓에도 섭섭해 눈물이 줄줄 나고, 남편이 창문을 닫는 소리에도 왜이렇게 세게 닫느냐며 따졌다.


산후우울증은 의지와 성격의 문제가 아닌, 의학적 상태다. 출산여성의 40%가까이 나타난다고 한다. 원인은 복합적인데, 가장 큰 이유로 꼽히는 건 호르몬 급변이다. 출산 직후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이 급격히 떨어져 감정 조절에 영향을 준다. 신생아를 케어하느라 수면 박탈 상태가 되어 깊은 잠이 부족한데, 이는 우울과 불안을 크게 야기시킨다. 또한 정체성 변화와 부담도 있다.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과 완벽해야 한다는 기대 때문에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도 많다.


이때는 전문가의 상담과 심리치료가 상태 완화에 도움을 주며, 수면 회복과 주변 사람들의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다.




둘째 출산을 대비하면서, 우리 부부는 이번엔 출산 후 찾아올 산후우울증을 준비하자고 생각했다. 물론 그냥 운좋게 지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평소 스스로의 커리어와 재정상태, 외모와 자기관리 등에 대한 압박과 강박을 겪고 있는 나로서는 이미 임신만으로 멘탈이 많이 무너져 있었다. (둘째 임신은 계획하고, 염두에 둔 일이라 했지만, 앞으로 헤쳐나갈 일들이 깜깜한 건 마찬가지였다. 완벽주의 성향이 이래서 살아가는데 별 도움이 안된다.)


참 이상한 일이다. 두 사람이 좋아서 결혼을 했고, 결혼을 했으니 아이를 갖고 낳아 가정을 이루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갈등과 어려움이 닥친다. 어쩌면 연애만큼이나, 아니 연애보다 훨씬 몇배는 어려운게 결혼생활일지도 모른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결혼생활이란 어려워선 결코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하호호 웃는 가족사진처럼 행복하고 웃음만 가득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인생이란 언제나 어려움이 닥치기 마련이다. 천재지변이 닥칠수도 있고, 큰 병에 걸릴 수도 있다. 잘 맞을거라 생각했던 결혼생활이 삐그덕댈 수도 있다. 또한 결혼 전에 끊이질 않았던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아이가 태어나면서 온 신경과 집중이 아이에게로 향하고, 두 사람의 일상엔 서로가 없어져버릴 수 있다. 그래선 안된다는 굳건한 믿음 말고, 그럴 수도 있다는 받아들임이 필요한 시기다.

스크린샷 2026-01-20 오후 9.23.12.png Vilhelm Hammershøi "Interior. With Piano and Woman in Black"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우리는 결국 우리의 내면을 바라보게 된다. 결국 분노와 억제하지 못하는 감정, 또는 회피성향 등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내면에서 왜 그런 상태가 나타나게 됐는지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감정에 휩쓸려 소리를 빽 지른다거나, 상대방의 얼굴 앞에 방문을 쾅 닫는다거나, 대화는 한마디도 하지 않도록 침묵만 흐르게 둬서는 안된다. 관계에 상처를 내는 것인데다 그런 행위를 했을 때 절대로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골이 한번 깊어지고 상처를 방치하면 서로에게 더 비난과 경멸, 무시를 쏟아내고 싶은 욕구가 들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처음 부부상담을 같이 받자고 했을 때, 남편은 순순히 동의했다. 남편은 우리 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면, 자신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 대화를 거부하는 성향을 보였다. 나는 빨리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그런 남편에게 소리를 치고, 대화를 하자고 더 몰아세우곤 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연애 때부터 보여왔던 패턴이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우린 그때보다 더 나이를 먹었으며, 책임져야 할 생명이 둘이나 늘어났다는 점이다. 그래서 더이상 혈기왕성한 20대처럼 서툴게 울고, 싸우며, 정 아니다 싶으면 갈라서는 선택지를 택할 만큼, 시행착오를 겪을 수는 없게 되어버렸다. 시간과 돈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상담시간마다 아이를 맡길 조부모의 손길이 필요했다. 그만큼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지만, 그렇게 상담을 받게 되었다.


첫 상담을 받으러 가는 길. 20분이나 일찍 상담실 근처에 도착한 바람에 우린 카페에 들러 차를 마셨다. 냉랭하고 차가운 분위기였다기 보다는 간만에 생긴 여유에 가벼운 해방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상담에서 나는 우리 관계 속의 곪은 문제들과, 내가 그동안 자라면서 수없이 외면해왔던

나 자신의 문제를 대면하게 된다.

스크린샷 2026-01-20 오후 9.25.19.png Mary Cassatt (1844–1926), Maternal Caress, 1896. Oil on canvas, 15 x 21¼ inches. Philadelphia Museum



혹시 이 글을 읽으며 “이 얘기, 꼭 우리 집 이야기 같은데…”
그런 생각이 스쳤다면, 아마도 당신은 이미 혼자가 아닙니다.


부부상담이라는 단어가 낯설고 무거워 보이지만, 사실 우리가 상담실에서 했던 이야기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한 번쯤 꾹꾹 눌러 담아두었던 말들이었어요.

말하지 않으면 사라질 줄 알았던 감정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 믿었던 마음들에 대해
우리는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아주 솔직하게 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연재에서는 완벽한 부부의 이야기나, 정답 같은 해결책을 내놓지 않으려 합니다.
다만 아이를 키우며, 사랑을 지키며,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는 한 사람의 기록을 천천히, 숨 고르듯 풀어내려 합니다.


조금 더 깊은 이야기들, 말로 꺼내기까지 오래 망설였던 감정의 속사정은 이 공간을 통해 이어가려고 해요.

혹시 지금의 당신에게도 '괜찮은 척', '완벽한 척'이 조금 버거운 날이 있다면,
이 곳이 조용히 기대 쉴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필요할 때, 준비가 되었을 때 천천히 함께 걸어와 주세요.

여기서는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으니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0kYc55bXJ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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