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투를 돌아보기
아침 일곱 시 반. 현관 앞에 분리수거 종이 박스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플라스틱, 비닐, 종이. 전날 밤 내가 분류해 둔 것들이다.
가방을 메는 남편에게 말했다. “나가는 길에 이거 좀 내놓고 가.”
남편은 내 시선을 피하면서 말했다.
“좀 더 부탁하는 말투로 해줄 수 있어? 그렇게 가시 돋힌 말투로 명령하듯 말하면 하기 싫어져.”
3초 정도 말이 없었다.
그 3초 동안 머릿속에서 여러 문장이 지나갔다.
“내가 언제 가시 돋힌 말투로 말했어?”
“당신도 평소에 얼마나 무심하게 말하는지 알아?”
“나가는 사람한테 분리수거 한 번 부탁하는 게 그렇게 잘못이야?”
이 중 어떤 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 3초는 나한테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었다.
“당신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해. 다음부터는 부탁하는 어조로 말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다만 한편으로 우리의 역할과 책임은 부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도 생각해. 내가 당신이 부탁해서 식구들 밥을 매일 차려주고, 하원을 시키고, 집안을 정리해놓고, 장을 보는 게 아니잖아. 이 점을 생각해줘. 아무튼 나도 좀더 듣기 좋은 말투를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
남편은 봉투를 들고 나갔다. 현관문이 닫히고 나서, 나는 식탁에 앉아 식은 커피를 마셨다.
이 글은 그날 아침의 3초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3초를 가능하게 한 두 개의 이론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부부싸움에서 말투는 바꾸되, 역할의 구조는 흐리지 않는 방법. 오늘 저녁 식탁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한 걸음을 나누려고 한다.
“가시 돋힌 말투”라는 말의 정체
먼저 솔직해지겠다. 아마도 내 말투에 가시가 있었을 거다.
나는 결혼 5년 차이고, 3살 아이를 키우고 있다.
집에서 글쓰면서 일하는 워킹맘이기도 하다.
아이의 아침밥, 하원, 저녁밥, 목욕, 재우기, 장보기, 집안 정리 — 이 중 90%는 내가 한다. 설거지는 안 한다. 이건 우리 부부의 작은 협상 결과다. 내가 모든 식사를 준비하니까 설거지는 남편이 한다. 그리고 분리수거.
근데 남편의 분리수거는 이런 식이다. 3일에 한 번. 그것도 내가 “분리수거가 너무 많이 쌓였네”라고 말해야 움직인다. 내가 분류해놓고, 봉투에 담아놓고, 현관 앞에 놔두면, 가끔 가지고 나간다.
그러니까 “나가는 길에 이거 좀 내놓고 가”라는 문장은 단순한 부탁이 아니었다. 쌓여진 분리수거를 바라볼 때마다 느낀 스트레스가 농축된 문장이었다. 어조에 가시가 없을 리 없다.
남편의 말이 맞다. 가시가 돋혀 있었다.
그런데 남편의 말에는 또 다른 가시가 있었다. “부탁하는 말투로 해줄 수 있어?”
이 문장은 분리수거를 ’부탁’의 영역으로 재정의하고 있었다.
한 번 재정의되고 나면 되돌리기 어렵다.
이게 오늘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가트만의 “부드러운 시작(Soft Start-up)”
존 가트만 박사는 40년간 3,000쌍 이상의 부부를 연구한 심리학자다. 워싱턴 대학의 “사랑 연구소(Love Lab)”에서 부부의 대화를 15분만 관찰하면 이혼 여부를 91%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찾아낸 이혼 예측 신호 중 첫 번째가 거친 시작(Harsh Start-up)이다. 대화의 첫 3분이 전체의 96%를 결정한다고 한다. 첫 문장이 비난이나 경멸로 시작하면, 그 대화는 이미 끝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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