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35주차의 어느 밤. 첫째 아이를 재우고, 울렁대는 배를 기대 쉬고 있었다. 아이가 언제라도 나올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남편은 한달이 넘도록 커리어 선택의 기로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나는 물었다. “당신이 제일 하고 싶은 게 뭐야? 그 마음을 따라.”
남편은 한참동안 말이 없다가 간신히 답했다.
“난 그냥 전업주부로 살면 제일 행복할 것 같아.”
배 안에서 아이가 발차기를 했다. 농담같은 말이기도 했지만, 나는 웃지 못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머릿속에 세 가지 장면이 동시에 떠올랐다.
얼마 전, 남편이 3살 첫째에게 소리를 지르고 장난감을 집어 던졌던 장면이었다.
또 하나는 내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아이의 떼부림과 울음을, 어떻게든 다른 분위기로 전환시키려 애쓰는 장면들.
마지막 하나는 — 이건 가장 이상한 감정이었다 — “내가 정말 돈 버는 역할을 할 수 있나? 나에겐 그럴 능력이 있나?”라는 자기 의심.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이었을까?
얼마 전 저녁이었다. 아이가 저녁을 먹고 기름 묻은 손을 씻으러 가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었다. 남편이 말했다. “손 닦자.” “싫어.” “밥 먹었으니까 닦아야지. 약속했잖아.” “아니야.” “손 안 닦으면 다음엔 밥 먹지 마. 약속 안 지켰으니까.”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지금 아빠랑 더 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읽던 책을 꼭 껴안고 있었으니까. 남편은 책을 읽어주는 오디오 장난감 책을 바닥에 던졌다.
“그렇게 약속을 어기면 다음엔 아무것도 안 해줄 거야!”
그 순간, 나는 크게 울고 있는 아이를 안아 올렸다. "울지마. 울지마."
아이는 서럽다는 듯 울고 있었다. 남편도 자기 분을 못참고 씩씩대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달래고, 어느정도 울음이 진정되자 욕실 쪽으로 데려가며 말했다. “아빠랑 더 놀고 싶었는데 손 씻어야 해서 속상했지. 그런데 이거 봐. 거품이 엄청 크게 부풀어. 누가 더 큰 거품을 만드는지 해볼래?”
훌쩍이던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거품을 한 움큼 손등에 올려서 보여주고, 후후 불었더니 결국 미소가 번졌다. 결국 거품놀이를 재밌게 하면서, 목욕까지 잘 끝낼 수 있었다. 아이 목욕을 마치고 거실로 돌아왔을 때 남편은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는 “육아에 전념하는 삶이 꿈”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가 꿈꾸는 육아란 대체 어떤 것일까?
그가 그려본 ’육아에 전념하는 삶’을 잠깐 상상해봤다. 아이와 공원에서 손을 잡고 걷는 오후. 그림책을 같이 읽는 소파. 저녁 식탁의 웃음소리. 맞다. 그런 순간들도 있다. 그런 순간들이 없다면 육아라는 행복한 지옥은 아무도 견디지 못한다. 그런데 그가 그린 풍경에서 빠진 것들도 분명 있다.
손에 온갖 기름과 음식물을 묻힌 채 버티는 3살. 자기가 좋아하는 뽀로로 노래를 한 번만 더 듣겠다고 울다가 결국 숨넘어가는 아이. 아이스크림을 먹겠다고 바닥을 뒹구는 오후. 잠투정에 30분 넘게 고래고래 악쓰고 울어대는 아이를 붙들고 흔들리는 고막을 진정시켜야 하는 시간들. 이 장면들이 사실 육아의 80%는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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