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고 있었다. 그 어깨의 섬유 향까지 선명했다. 회색 니트의 까슬한 결, 옷 너머로 전해지는 체온, 그의 손이 내 손등 위에 살짝 얹힌 무게. 우리는 벤치에 앉아 있었고, 가로등이 둘러싼 공원 길은 오후 다섯시의 빛을 하고 있었다. 그가 내 쪽으로 몸을 약간 기울였다. 그리곤 내 머릿결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너 오늘 왜이렇게 예뻐."
그는 내가 무슨 말을 듣고 싶어하는지 알고 있었다. 내가 요즘 뭘 고민하는지도 진지하게 들어줬다. 그에겐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꿈 속의 나는 스물다섯 살 정도였다. 아이들은 당연히 없고, 남편도 없었다. 깃털보다 더 가벼웠다.
그가 내 손을 쥐려고 하는 순간, “엄마!!!”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기가 좋아하는, 신생아 시절부터 덮어온 너덜너덜한 애착 이불을 몸에 칭칭 감고 나타난 3살 딸아이였다.
나는 눈을 떴다. 아침의 밝은 빛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임신 36주차의 배가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골반에서 익숙하고 둔한 통증이 올라왔다. 방광은 저려오기 시작했다. 남편은 머리에 까치집을 하고 눈곱을 떼면서 발을 질질 끌며 걸어왔다. 익숙한 아침의 풍경과 소리였다.
어쩐지 실망감이 느껴졌다.
눈을 떼자마자 꿈 속의 그 남자가 그리워졌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실망을 하고 있었다. 예쁜 딸 아이와, 남편과, 그리고 뱃속의 아이까지 있었지만.
나는 한참을 천장만 봤다. 그리고 휴대폰을 열었다. 오전 일곱시. 나는 아이가 옆에서 채근하는데도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일어나는 순간 그 꿈이 머릿속에서 전부 지워질 것 같았다. 벤치의 회색 니트와, 그 손등의 무게와, 내 이름을 부를 필요가 없었던 편안함이, 아이의 아침밥으로 볶음밥을 열심히 볶아주는 사이, 망각할 것만 같았다.
임신 중에는 꿈이 유독 생생하다. 학계 정설까지는 아니지만 임신 중 여성의 렘수면이 길어지고, 프로게스테론과 에스트로겐 변화가 꿈의 생생함과 감정 강도를 올린다는 관찰이 반복적으로 보고된다.
70년대에 이 주제를 처음 체계적으로 다룬 심리학자 패트리샤 메이브럭(Patricia Maybruck)은 임산부 1,000여 명의 꿈을 수집해 《Pregnancy and Dreams》라는 책을 썼다. 그녀는 임산부의 꿈이 일반 성인보다 훨씬 더 영화 같은 서사 구조를 가진다고 했다.
그러니까 나의 그 벤치 장면은 영화처럼 편집되어 있었던 것이다.
호르몬이 편집자였다. 연출은 무의식이었다.
이것을 알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의학적 현상이다. 만삭 여자가 꿈에서 남자친구를 사귀어도 정신병은 아니다. 손가락질 받을 일도 아니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점은 있었다. 내 무의식이 고른 소재가 왜 하필 ‘새로운 남자친구’였을까. 난 지금 당장 연애가 하고 싶지 않다. 펭귄처럼 무겁고 뚱뚱한 배가 하루 빨리 홀쭉해지고, 무한한 세계를 여행하며 오로라를 보고 싶다. 대학 시절 친구들을 만나 맥주를 홀짝 거리고 싶다. 또는 하와이에서 파도에 다리를 적시며 하와이안 노래를 듣고 싶은데. 왜 하필 회색 니트를 입은 낯선 남자의 어깨에 기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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