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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아 Apr 08. 2018

디어마이프렌드

J에게
오늘 낮에 햇빛을 맞으면서 개나리꽃 벚꽃 핀 것을 보고 너에게 편지를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최근 너에게 여러 일들이 많이 닥쳐서 놀랐을거라 생각해.

나에게 있어 뉴스 헤드라인은 
안친한 사람들이 모여 어색한 간극을 메우기 위해 할 수 있는 대화의 주제라고 생각해.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해
상관없는 사람들은 너무 많이 얘기하곤 하지.

그래서 너는 꽤 오랫동안(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너의 가족을 향한 시선에 상처를 받아왔는데도 
또 한번 큰 생채기가 났을거야.

처음에 난 조금 어리둥절하다 
너가 괜찮은지 떠올리지 않을수 없었어.

사랑과 연애에 관해 가장 앞서나간것처럼
자유롭게 말했던 너의 자신만만했던 모습이
이 사건으로 조금이라도 풀이 꺾이지는 않았을까.

아 그렇다면 안타까운일이야.

뜻밖의 일들은 언제나 뜻밖의 성질을 갖고 있어서
처음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함이 온 몸을 지배하겠지만
시간을 조금 가지면 또 다른 형태의 파형이 찾아오는걸 느낄거야.

시간이 주는 가장 큰 힘이 바로 사건을 멀리 떨어져서 볼수 있다는거야.
잘 생각해본다면 또다른 새로운 기회가 생겨나는 순간일거라 믿어.

수많은 분노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이 사건에 대해 아무런 감정도 없어.
인생이 참 아이러니하다는 걸 다시한번 깨달았을 뿐
어떤 일이 있어도 난 너의 친구라는 믿음을 주겠다고 다시한번 다짐했을 뿐

혹시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 말이 응원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대한민국 국민 중 유명하지 않은 부모님을 둔 대다수 사람들 중 한명으로서
그럭저럭 내 길을 걷고 있어.

그리고 이런 나의 주어진 조건은
바닥을 드러낸 샴푸통도 물로 몇번씩 희석해 머리를 감아야하고
백화점보다 강남 지하상가 쇼핑이 안정적인 소비습관을 길러줬지만 
부모님이 부자에다 대단한 존재가 아니더라도 감사할점이 정말 많지.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부모님이 어떤 존재건간에
넌 이미 독립적인 존재가 되버렸다는거야.

일본의 불량스러운 작가 무라카미 류가 한 말이 아주 선명하게 기억이 남아.
아마 '자살보다 SEX'라는 책에서 읽은 구절인 것 같아.

*그 문장을 더 정확하게 더듬으려고 책장을 뒤지다 엄마에게
"자살보다 섹스 못봤어?"라고 물어봤어.
엄마는 당연히 못봤다고 대답했고 나는 책장 한 구석에서 책을 찾았어.
어쨌든 책에는 내가 찾는 내용이 없었어. 아마 다른 책에서였나봐.
하지만 무라카미 류가 했던 말이라고는 확신하고 있어.

바로 자식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에게 '자식을 버리라'고 진지하게 조언해주는 대목이었지.
부모는 아이들을 귀여워서 키우는거고
유아기의 타고난 귀염성이 사라지는 순간, 자식들은 버려지게 돼.
그건 타고난 법칙이랄까.

그러니까 하고싶었던 말은 
어떤 부모가 있건간에 우리는 그들이 모는 수레바퀴에서 뛰어내려야한다는 사실이지.
그들의 삶은 나와는 전혀 다른 궤도로 흘러가.
이 생각은 두렵지만 한편으로 용기를 준다.
앞으로 나아가 뭐라도 싸질러도 괜찮다는 용기.

어떤 작은 바람이 불어도 너만의 유쾌함을 잃지 않는 하루가 되길.

-
이 편지는 J를 만나기 전 쓴 엽서다. 
J는 만나자마자 요즘 주위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다닌다는 근황을 전했다.
다행히도 그애는 여전히 걸으면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럼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젊은 청년의 생기를 빼앗아갈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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