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끝까지 달린다
[Day 7] 이제 신났지, 뭐
강사님께서 눈만 마주치면 말씀하신다. 흐뭇하게 미소 지으시며, 첫날 했던 말이 맞지 않냐며 웃으셨다. 그 말 그대로 마지막 주가 되자 대부분 달리고 있었다. 내일 피날레를 찍을 마지막 라이딩을 기대하며, 다들 주행 연습에 한참이었다.
지난주에는 자전거가 흔들릴까 코앞만 보고 달렸는데, 몇 번 더 연습했다고 이제는 제법 안정적이었다. 없던 여유가 생기면서 스리슬쩍 주변을 구경하는 재미도 생겼다. 선선한 가을 날씨에 운동 나온 사람들이 늘었는데, 그 모습들이 각양각색이었다. 혼자 나온 사람도 있었지만, 가족 단위로 자전거 타는 사람들도, 동호회로 그룹 지어 나온 사람들도 상당했다. 여전히 안전 장비를 풀 장착한 나와 달리, 복장부터 전문가 포스 팡팡 풍기는 모습에 감탄이 나왔다. 크~!
아직도 발을 떼지 못한 분들이 연습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제는 강사님이 뒤를 잡아 주기도 하며 전담 마크 중이셨다. 6일 차에 보이지 않아 포기하셨나 싶었던 분도 다시 뵈니 무척 반가웠다. 뙤약볕 아래 쉼 없이 노력하는 모습에 박수가 나왔다. 나이가 많으신데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멋지고 감동적이었다. 속으로 무한히 응원하며, 나도 실력이 늘도록 열심히 트랙을 돌고 또 돌았다.
쉬지 않고 한 시간 가까이 달리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게 운동의 여파로 충격받았던 둘째 날이 떠올랐다. 자전거는 확실히 유산소 운동이네, 새삼 느끼며 헉헉거리는 숨을 골랐다. ‘계속 자전거를 탄다면 저질 체력도 좋아질까?’ 힘들어 퍼져 있으면서도 속으로는 야무진 꿈을 꾸어 보았다.
라이딩을 한 번 해볼게요
오 마이 갓. 내일 아침 비가 많이 온다는 슬픈 예보가 있단다. 그래서 오늘 예고편으로 짧게 라이딩을 다녀오잔다. 운동 나온 사람들과 자전거들이 많으니 사고 나지 않게 조심하자는 당부도 덧붙이셨다. 아직 자신 없는데, 큰일 났다 싶었다. 막연히 내일이라 생각했던 일이 마음의 준비도 없이 닥친 것이다. ‘이 정도로 힘들어하는 내가 속도를 맞추고 열을 맞춰 잘 달릴 수 있을까? 달려오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주지 않으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웃어 보려 해도 긴장으로 얼굴 근육이 굳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또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갈팡질팡한 맘에, 아~ 어쩌란 말이냐 소리가 절로 나왔다.
“10km 정도로만 달릴 거예요.” 걱정을 한가득 하고 있으니 강사님께서 다가와 말씀하셨다. 천천히 달릴 거니 안심하라고 하셨지만, 그치만요... 저는 그 속도가 빠른지, 느린지 알지 못하답니다... 자전거도 초보 딱지가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꼈다. 있다면 등짝에, 이마에 크게 붙여놓고 싶었다. “다들 우리보다 잘 타는 분들이라 알아서 피해 갈 거예요.” 그러니 우리는 우리 길만 주욱 직진하면 된다고 했다. 어려울 것 하나 없다는 그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믿자! 혀 끌끌 차면서 피해 가시겠지. 괜히 불안해하다 사고 치지 말자고 마인드 컨트롤했다.
오 마이 갓갓. 원치 않게 강사님 바로 뒤에 서게 되었다. 끄트머리에서 휴식하고 있다 그대로 방향을 180도 돌리니 내가 1번이 된 것이다. 부담감이 아주 그냥 팍! 치솟았다. 무조건 강사님 뒤를 바짝 쫓아가야 했다. 최대한 빨리. ‘절대 쳐지면 안 돼! 휘청거려도 안 돼!’ 세상 제일 쓸모없는 몸뚱이라 여겼건만, 지금 이 순간 믿을 수 있는 건 내 몸 내 다리뿐이었다. 잘하자, 스스로 다짐하며 힘차게 발을 굴렀다.
수십 년간 체득한 건 난 몸으로 하는 건 웬만해선 못했다. 그러니 몸으로 무얼 할 엄두도 못 냈다. 연습보다 실전엔 더 약했다. 라이딩을 기대하면서도 자신 없었던 이유였다. 그런데 뒤늦게 몸으로 배운 자전거로 천을 따라 길을 달렸다. 태어나 처음 맛본 종류의 성취감이었다. 잘 가다가도 사고 낼 것 같은 두려움은 여전했지만, 그럴수록 정신 바짝 차리려 했다. 긴장한 와중에도 눈에 박히는 장면들이 있었다. 알록달록 꽃밭이며, 초록빛 가로수며, 푸르른 물살이며, 지금껏 본 적 없는 풍경들이 경험한 적 없는 속도로 휙휙 지나갔다. 자전거 핸들 너머 잡히는 앵글이 낯설었다. 이거, 영화에서만 보던 장면 아닌가?
“화이팅!” “힘내요.” “잘한다!” “예뻐요~.” 뒤에서 빠르게 치고 나가면서, 반대편에서 스쳐 지나가면서 자전거 선배들의 응원이 이어졌다. 그분들의 눈에는 노란 조끼를 입고 나란히 달리는 우리가 그야말로 병아리 같아 보였을지도 모른다. 아직 기어 변속도, 따릉 벨을 울리는 것도 해본 적 없는 초급반이니 맞긴 했다. 그래도 생판 모르는 사이인데, 자전거라는 공통점 하나로 이렇게 힘찬 기운을 주시다니 새로운 경험이었다. 짧은 마주침 동안 자전거 새싹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싹을 틔워 주려 하셨다. 평소 같았으면 부끄러워만 했을 텐데, 감회가 새로웠다. 해냈다는 기분이 커서인지 기쁘고 뿌듯했다. 트랙에서 연습할 때와는 또 다른 도로 위의 분위기와 응원 소리에 힘도 나고 감사했다. 감히 화답할 여유는 없었지만.
우리 편도로만 20분 달렸어요
믿을 수 없었다. 얼마 달린 것 같지 않았는데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담. 자전거에서 내리니 스르륵 철퍼덕 주저앉았다. 몸이 힘들어하는 걸 보니 몇 십분 쉬지 않고 달린 게 맞나 보다. 그래도 기분은 상쾌했다. 거센 바람을 가르며(?), 처음 만난 자유를 만끽하며(??), 본능에 따라 거침없이 내달린(???) 나 자신에게 치얼스~ 후후. 이것이 말로만 듣던 라이딩이구나! 그 묘미를 쬐에끔 맛본 것 같았다. ‘러닝 하이’처럼 자전거 하이란 것도 있을 법했다. 다시 돌아가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잠시 쉬다 보니 벅찼던 감정이 조금씩 가라앉으면서 현실을 직시했다. 겸손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끝에서 1번으로 달렸다. 선두가 아닌 꼴찌로, 부담감을 좀 내려놓고 싶었다. 쉬엄쉬엄 가다 보니 어느샌가 앞사람과의 간격이 잔뜩 벌어졌다. 어이쿠 싶어 빠르게 페달을 돌렸는데, 다시 간격을 좁히기가 쉽지 않았다. 엔진이 약하니 액셀을 밟아도 안 나가는구나, 허탈했다. 애초에 간격이 조금이라도 벌어지면 안 되나 보다. 그래도 무사고로 골인하며 인생 첫 라이딩을 마쳤다.
‘제발, 내일 비가 안 오기를. 라이딩 한 번 더 할 수 있길!’ 마지막 날다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기를 빌고 또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