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마음이 드러나도록 할 것인가? 악이 드러나도록 할 것인가?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꼭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오늘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저의 오랜 관심사와 그것에 대한 질문에 대한 것입니다.
저의 오랜 관심사는 '인간이 선한가? 악한가?'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 이 질문은 오랜 철학적 질문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선합니까? 악합니까?
선하다고 말한 철학자들도 있고, 악하다고 말한 철학자들도 있습니다.
홉스와 맹자는 악하다고 했고, 루소와 순자는 선하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선하게 지음을 받았지만, 타락하여 악해졌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요? 마음 깊은 곳에는 '악'이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선'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의 질문은 잘못됐습니다.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는 잘못된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선을 바라지만, 악에게 통제되어 버리는 인간 존재가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착한 삶'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선한 존재'이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다양한 이유로 악에게 나 자신을 내어줍니다.
문제는 우리가 선한가 악한가의 관점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선과 악 중 어떠한 것이 드러나도록 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올바른 질문은 '선한 양심에 호소할 것인가? 악한 본성을 드러낼 것인가?'입니다.
앞 서 언급한 '소셜 딜레마'의 트리스탄 해리스(구글 윤리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소셜 네트워크를 만들어 낸 "기술 그 자체가 실제로 위험하다는 게 아니라 사회의 어두운 면을 끌어내는 기술의 능력과 사회의 어두운 면이 실질적인 위협인 거예요. 기술이 대향 혼돈을 야기하고 분노, 무례, 서로 간의 불신, 외로움, 소외, 분극화, 선거 해킹, 포퓰리즘 등으로 진짜 문제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가장 문제입니다."
그는 소셜 네트워크가 그 자체로 악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악한 면을 드러내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과거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고백록에서 자신이 선과 악의 경계에 서 있는 존재로서 날마다 하나님께 선한 길로 가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인간은 경계에 서 있는 존재로 빛에 조명함을 받아 살아야 하는데 악에 이끌려 살고 있다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인간은 선을 바라지만, 악을 행하는 경계에 선 존재로서 어떻게 하면 인간의 선한 마음을 깨워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경제 구조, 정치 구조, 교육의 문제 등에 너무 중요한 이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