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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리의 테이블 Nov 01. 2021

로봇 개, 학대하면 안되나?

일상의 소소한 깨달음

최근에 모 대통령 후보가 한 박람회에서 복원 능력 테스트를 위해 '로봇 개'를 뒤집어 넘어트린 일이 언론에 보도가 되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 이 후보의 행동을 '로봇 학대'로 규정하면서 비판 여론이 일어났는데요. 

후보는 이에 대해서 로봇의 복원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것이었지, 개를 학대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저 역시도 이러한 관점을 수용하고, 정치 평론이 아니라 사회현상에 대해서 이 사건을 바라보도록 하겠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로봇 개'는 '살아 있는 개'가 아니기에 특별히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입니다.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고, 통증도 느끼지 않기에 로봇 개를 넘어트린 행위에 '학대'라는 단어를 연결하는 것은 본질적으로는 옳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왜 이런 비난 여론이 형성되는 것일까요?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A.I.(에이아이)에는 인간과 동일한 외모, 감정을 가진 어린아이 로봇이 등장합니다. 

아들을 잃은 한 엄마를 위로하기 아들의 모습과 동일하게 만들어져 판매된 로봇입니다. 

엄마는 처음에는 로봇을 경계하고, 어색해하지만, 곧 로봇을 아들로 생각할 만큼 둘은 가까워지게 됩니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으로 로봇을 폐기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됩니다. 

엄마는 차마 로봇을 폐기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로봇이 도망갈 수 있도록 하죠.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는 영화 속 엄마의 감정에 이입됩니다. 로봇이 폐기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편치 않습니다. 영화에서 엄마는 분명히 그 존재가 로봇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로봇이 폐기 되도록 하지 못한 것일까요? 


이 질문이 바로 로봇 개의 복원능력 실험이 로봇 학대로 다가오는 이유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답은 '연결됨'입니다. 

레비나스는 인간을 타자와 연결되어 있는 존재로 묘사하였습니다. 

인간은 홀로 생각하는 존재이기도 하고,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특징은 타자와 연결하여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신'과도 연결하며, '사람'과도 연결하지만, 동물 심지어는 사물과도 연결합니다. 

특정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물건을 소중히 여깁니다. 

대표적인 것이 '결혼반지'입니다. 반지는 그저 반지일 뿐이지만, 그 반지와 연결되어 있는 의미 있는 사람, 시간, 공간이 그 안에 의미부여되어 있기에 소중한 것입니다. 

영화 A.I. 에서도 아이 로봇 '데이빗'도 본질적으로는 로봇이지만, 엄마는 그 로봇에게 자신의 소중한 감정과 기억을 연결하여 소중한 존재로 대하였습니다. 자신에게 소중하게 연결되어 있는 존재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폐기할 수 없었습니다. 


로봇 개는 로봇일 뿐입니다. 

하지만, 개의 모습을 닮은 개는 단순한 로봇이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 개는 '반려'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존재로 의미부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후보자가 넘어트린 로봇의 모양이 '나무토막' 모양이었다면, 사람들이 지금처럼 반응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대상이 로봇이건 아니건, 그 사물이 인간과 어떠한 관계망을 가지고 있느냐를 깊게 생각해야 합니다. 

구성 요소가 물질이라고 해서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이유는 그 물질이 빚어낸 형상이 인간과 소중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현실 때문입니다. 


후보자도 이러한 점을 생각하며 조금 더 신중했더라면 대중적 비난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지지 않았을까? 

최소한 "죄송하지만, 실험 한번 하겠습니다'라는 언급 정도만 있었어도 괜찮았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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