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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리의 테이블 Oct 26. 2021

정의를 행하는 것보다 그렇게 보이는 것이 더 현명하다?

국가 제2권, 아무도 보지 않아도 '정의'를 행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플라톤과 글라우콘은 국가 2권에서 정의를 행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대화를 나눕니다. 

글라우콘은 당시 그리스의 보편적 여론을 소개합니다. 

"대중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들은 보수를 받거나 사람들에게 인심을 얻기 위해서는 정의를 실행해야 하지만, 그 자체는 어려워서 회피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부류에 포함시키니까요" 


그 당시 보편적인 사람들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정의는 '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사람들은 불의보다는 정의를 선호했죠. 다만, 그 이유는 정의를 행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거나 보수를 받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대한민국은 어떤가요? 

박인제 감독 영화 <특별 시민>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서울시장 재선 후보인 변종구는 자신의 선거캠프 홍보팀 신입직원을 면접하는 자라에서 자신의 애완견을 보여줍니다. 신입 직원 김경은 그 강아지를 보며


"강아지 너무 귀여운데요"

"이거 강아지 아닌데, 이거 늑대예요. 늑대 새끼, 박 선생! 내가 늑대 새끼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늑대 새끼라고 믿게끔 만드는 게 박 선생 일이에요. 그게 바로 선거예요. 

자~ 다시! 이게 뭐예요?" 

"늑대입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늑대 새끼야? 개 새끼지!" 

"예, 강아집니다"

"그렇지, 그거야! 박 선생은 나한테만은 진실을 말해야 해요. 정치는 기본적으로 패밀리 비즈니스야" 

https://www.youtube.com/watch?v=qCG7BUU21T4

영화의 또 다른 장면은 서울 시내에서 '싱크홀' 사고가 발생합니다. 변종구 시장은 급히 재난 지역으로 달려갑니다. 수많은 카메라의 주목을 받으며 희생자 구조에 최선을 다하도록 지시합니다. 잠시 후 임시 재난 센터에 누워있던 변종구 시장에게 한 사람이 구급약품 박스를 가지고 오는데요. 그 박스에 약품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초밥이 담겨 있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함께 고생하는 척 보여주지만,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익 때문에 정의를 행한다]


글라우콘이 말한 보수와 인심을 얻기 위해서 '정의'를 행한다는 말이 고대 그리스뿐 아니라, 오늘의 대한민국에서도 통용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선거철이 되면 각종 비리가 폭로되고, 후보자들은 자신은 그 일과 상관이 없으며, 자신은 명백하다고 주장합니다. 후보를 검증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만, 정작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질문에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물론 어떤 사람이 겉과 속, 보여주는 나와 진짜 나의 모습이 100% 일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약속한 법을 지키려는 노력은 사람들의 시선 밖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라우콘은 사람들이 '정의'를 행하는 것은 그것을 행함으로 얻어지는 이익이 있기 때문이며, 그 이익이 없다면 어느 누구도 '정의'를 행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면서 '기게스의 반지' 이야기를 꺼냅니다. 


[기게스의 반지]

https://www.youtube.com/watch?v=YV95MqyRbck

리디아에 살고 있는 양치기 소년 '기게스'는 어느 날, 천둥번개와 함께 소나기가 내리고 지진이 나며 땅이 갈라지는 경험 합니다. 양들에게 풀을 먹이고 있던 곳에 큰 틈이 생겼습니다. 

기게스는 놀라서 아래로 내려갔더니, 그 안에는 청동 말과 문이 있었고 그 안에는 시체가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시체는 금반지 하나를 끼고 있었습니다. 기게스는 그 금반지를 빼서 밖으로 가지고 나왔습니다. 


양들의 상태를 왕에게 보고하는 정기 모임이 있던 어느 날, 기게스는 시체에서 빼난 반지를 끼고 모임에 가게 됩니다. 많은 양치기들이 모인 자리에게 무심코 자신의 손가락에 있는 반지를 안쪽으로 돌렸더니 갑자기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자신이 없는 것처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에 놀라 기게스는 다시 반지를 원래 상태로 돌렸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사람들이 다시 자기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반지가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기게스는 반지를 안쪽으로 돌리고 왕궁으로 들어갑니다. 왕궁에 들어간 기게스는 왕비를 유혹하여 왕을 살해하고, 왕궁을 장악합니다. 


글라우콘은 말합니다. 기게스의 반지 이야기만 보더라도, 타인의 시선이 없는 상태에서 정의를 행할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자신은 원하지 않으면서 '정의;올바른 일'을 타인이 행하도록 원하는 것일까요?  

글라우콘은 정의의 기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본래 인간은 모두 이기적으로 행동합니다. 저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일할 뿐이지요.

이러한 상황은 곧 '무질서한 사회의 혼란'으로 빠져들게 되며, 어느 누구도 이익을 취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들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홉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라고 말했습니다.  


[홉스의 자연 상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홉스는 먼저 국가가 없는 상황, 즉 자연 상태를 가정하고 자 신의 논리를 전개시킨다. 그에 의하면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이기적으로 자기 보존만을 추구하는 존재다. 이기적인 개인 들은 무제한의 힘을 추구하고 경쟁한다. 그리하여 사회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자연 상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모든 사람을 복종시킬 만한 공동 권력이 없을 때, 인간은 ‘투쟁’ 상태에 처하게 된다. 여기서는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을 적대하게 된다. 가장 나쁜 것은 계속되는 두려움, 갑작스러운 죽음의 위험이다.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비천하고 그리고 짧다.” 이런 상황에서는 약자도 공포 속에 살아가지만, 강한 자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 가장 힘센 자도 누군가로부터 기습을 당하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강한 자도 이러한 공포에서 벗어나길 원한다. 결국 모두가 평화를 위해 사회 계약을 맺는 것에 동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자신의 손에 있는 무기를 내려놓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즉, 인간은 스스로 자기의 생명을 지키기를 포기하고 자연권을 포기한다는 계약을 상호 간에 맺어 ‘공동 권력’을 형성함으로써 만인의 투쟁 상 태를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글라우콘의 생각은 홉스의 생각과 일치합니다. 정의라는 것은 결국 '이익의 보전'을 위해서 탄생한 것이며,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서 '정의'를 행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감시되지 않는 상태가 보장된다면, 사람들은 법을 무시하고 자기 이익을 탐하게 될 것이며, 오히려 '정의롭게 보이는' 것이 중요하지, 실제로 정의를 행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정의롭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의를 행하여 이득을 얻는 자'입니다. 


"정의가 개인에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그도 그럴 것이, 각자는 불의를 행할 수 있겠다 싶으면 어디서나 불의를 행하니까요. 개인에게는 불의가 정의보다 훨씬 더 이익이 된다고 누구나 다 그렇게 믿고 있답니다." 


글라우콘은 신조차도 자신에게 좋은 제물을 바치는 자를 좋아하고, 복을 준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이야기의 근거는 호메로스로 대표되는 그리스의 서사시입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는 전사들을 지켜주는 수호신들이 있는데, 수호신들이 영웅을 지키는 이유가 자신들에게 좋은 제물을 바쳤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내가 올바르다 해도 올바른 자로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도 없고 고통과 형벌만 안겨줄 것이 뻔해, 반면 내가 불의해도 올바르다는 명성을 얻으면 내게는 신과 같은 삶이 약속되어 있어" 


글라우콘은 소크라테스에게 묻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에게 정의가 불의보다 더 낫다는 것만 증명하실 것이 아니라, 정의와 불의가 그 소유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기에 그중 하나는 그 자체로 나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자체로 좋은 것인지 설명해주세요." 


과연 정의는 그 자체로 좋은 것인가요? 그래서 어떠한 이익이 없더라도 지킬만한 것입니까? 법을 지킴으로 어떠한 유익이 없는데도 그것을 행하는 것이 옳은 이유가 있습니까?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어떻게 이야기 하게 될까요?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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