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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산 Feb 06. 2022

#5. 유년시절

– 골목길의 추억


 나의 첫 기억은 집 대문을 나온 기억이다. 누구는 엄마 뱃속부터 기억난다고 한다. 다섯 살 즈음 그렇게 난 처음으로 나온 골목길은 모든 게 생경했다. 옆집에 사는 내 또래 아이도 있었다. 지나가는 아줌마는 엄마처럼 반가웠다. 농번기로 엄마 아빠 두 분이 바쁘면 난 혼자 집에 있었다고 한다. 요즘 말하면 방치되었던 것이다. 1980년대가 지금처럼 돌봄 시스템이 잘 갖춰지지 않았던 농촌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형이나 누나들이 학교에 간 오전의 시간은 오롯이 혼자 있어야 한다. 그때 예전에 형이랑 함께 목욕했던 주황색 큰 대야가 나의 놀이터이지 안전한 장소였다고 한다. 그날따라 내가 컸다는 반증이었는지 그 대야를 나와서 난 손수레가 빠진 외양간 옆 빈터를 지나 은색 양철 대문 밖으로 나갔던 것이다. 

 이 어렴풋한 기억이 나의 첫 유년시절 장면이다. 집을 나선 대문은 밖 골목길은 다섯 살 이후로 새로운 놀이터가 된다. 지금이야 농촌에서 아이들 울음소리 듣기 힘든 시기지만 그때는 한 집에 넷다섯은 기본이었다. 육아는 온 마을이 함께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삼 형제 아들 손자들을 보러 가끔 오시고. 아니면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이 모두 보모였다. 그때는 밖에 나가서 해질 녘 전에 돌아오지 않아도 찾지를 않았다. 어디에서 누군가 집에서 으레 점심을 챙겨 주었을 것이고 동네 형 누나들이랑 잘 놀고 있을 거라는 안심되는 그 무언가 안전장치가 있었다. 비슷한 또래 아이들 많아서 골목길은 항상 북적였다. 플라스틱이나 고무로 만든 인공의 장난감이 없었다. 다들 자연물로 장난감을 만들었다. 어는 골목에 모래산이 쌓여 있으면 거기가 하루 종일 놀이터가 되었다. 발등으로 신발 자국이 까맣게 생기는 검정고무신. 그때는 그걸 조선 나이키라 불렀다. 하얀 고무신은 일본 나이키. 그러고 보면 나이키의 역사도 참 길다. 그 검정고무신을 뒤집어서 탱크를 만들고 거기에 물을 담아서 모래산에 웅덩이를 만들곤 했다. 또 나름 깊게 파서 우물도 만들고, 집도 만들고 벽도 쌓고. 정해진 것 없이 상상력은 그렇게 키워졌다. 또 깨진 기와 돌이나 둥근 자갈을 이용해 공기놀이도 많이 했다. 몇 단까지 있는지 모르지만 다양한 규칙이 단계별로 있어서 그걸 넘어서는 재미가 컸다. 오단 공기놀이보다 복잡하고 재미있는 놀이가 있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안 난다.   

 겨울에는 눈이 내리면 다들 마당 한가득 쌓인 눈들을 치웠다. 참 부지런한 어르신들이다. 그냥 두면 녹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는데. 마당 물기를 없애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빙판길이 되어 다칠까 봐 였을까. 눈을 다들 모아서 동네 한 곳에 모았다. 길과 논의 간격이 높은 곳에 쏟아부었다. 그러면 거기 또한 멋진 놀이터가 되었다. 비스듬히 쌓인 그곳을 삽으로 이리저리 파서 미끄럼틀로 만들고 빈 비료부대 비닐을 타고 내려가곤 했다. 일찍 나온 짖꿎은 형들은 그 미끄럼틀 한가운데에 웅덩이를 파 함정이라 부르고선 내려오다 푹 들어가 심하게 말하면 곤두박질하는 동생들의 모습을 보고 웃곤 했다. 그때 함께 놀았던 동네 형들 누나들 동생들 다들 무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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