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주택, 유은실, 비룡소, 2022}
오래간만에 뭉클했다. 어떤 사람이 어른인지 알려준 책이다. "수림아 어떤 사람이 어른인지 아니?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이야." 누가 누가 더 어린가 내기하는 세상을 향해 이 시대의 이야기꾼인 유은실이 던지는 유쾌한 위로이다. 다 말아먹은 시즌 마지막 야구 경기 같은 가족 속에 눈부시게 등장한 구원투수 16세 오수림, 여기에 인생의 달인 75세 순례 씨가 뭉쳤다.
이 책의 소개글처럼 어떤 이가 어른인지를 보여준 책이다. 재력이 다가 아니고 명예가 다가 아니다는 걸 보여줬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게 세상사. 감사보다 요구가 많은 관광객처럼 살고 있지는 않는지. 남들에게 기대어사는 기생충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만든 책이다. 수림이 같은 아이가 지금 이 시대에 있을까 의심스럽지만 있을 거라 믿는다. 그래야 희망이 있고. 신은 공평한 거니까. 신이 있다면 말이다.
유머와 재치, 풍자가 있는 문장을 많이 발견했다. 그래서 사진으로도 찍었다.
"낙천적이고 성숙합니다. 생활지능이 높은 학생으로, 세상을 잘 헤쳐 나갈 것으로 기대됩니다."
주인공 수림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 거다. 생활지능이란 학교에서, 교육과정에서 말하는 미래핵심역량이 떠올랐다. 살아가는 힘, 살아가는 지혜가 높은 아이 수림. 거기다가 낙천적이기까지 한다. 그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겠지. 소설이라 꾸밈이 많으리라 생각되지만 어딘가에 이런 청소년들이 많이 있으리라 믿는다. 신문과 방송에 나오는 건 드물고 희귀해서 나온 거겠지. 수림이 같은 아이들이 많을 거라는 희망을 갖자. 그래야 세상이 밝아진다.
"네 학비를 댄 걸 후회한다. 내가 공부할걸 그랬다.- 큰누나
어렸을 때 너에게 계란과 우유를 양보한 걸 후회한다. 나는 벌써 골다공증이다. - 둘째 누나
네가 명문대 나왔다고 자랑한 걸 후회한다. 네가 나온 학교가 명문이 아니거나, 네가 제대로 배운 사람이 아닌 거다. - 셋째 누나
부모님께 용돈 드린 걸 후회한다. 부모님이 너에게 다 뜯겼지. 돌아가신 부모님 병원비는 결국 누나들이 냈다. -넷째 누나
너에겐 10원도 더 안 준다. 연락하지 마라. - 누나들
누나들 하소연이 담긴 이 대목에서 한참을 웃었다. 그 뒤 씁쓸했다. 난 어떤지를. 6년간 대학을 다니고 임용 전 재수생활까지. 부모님 언저리에서 기생한 삶을 반성했다. 지금도 반찬을 번번이 챙겨주시는 어머니 전화를 받을 때마다. 난 수림이 처럼 생활지능이 높은 학생은 아닌가 보다. 스스로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요리도 배우고, 생활살림법도 하나씩 배워야겠다. 거실에서 빈둥대는 삶을 청산해야지. 누가 누가 더 어린가 내기하는 세상에 한몫을 더하기보다 다 말아먹은 시즌 마지막 야구 9회 말 같은 상황 역전만루포 같은 도움 되는 타자가 되어야겠다.
주인공인 착한 건물주 순례여사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 개연성이 부족하다 느꼈다. 남편의 불로소득이 싫어서 떼탑으로 만든 건물이라니. 그리고 종종 나오는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한 보존활동도 인상 깊었다. 분리수거를 해야 한다. 일을 해야 한다 등. 뒷부분 주인공 순례여사와 수림이 가족의 갈등이 더 길게 펼쳐졌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상속을 받기 위해 꼬리를 내리는 수림이 부모 모습이 측은했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타협을 생각해 보았다.
순례길을 멀리 스페인 산티아고 까지 떠날 필요가 있을까 고민하는 이들에게, 배울 어른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어른들에게 가까이 그래도 참된 어른이 있다고 말하게 만든 책이다. 그리고 착한 건물주와 착한 어른, 청소년을 만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지금도 삶에서 다가오는 어려움을 실패와 낙오자가 아닌 경험과 순례자라고 여기며 부와 명예를 위해 발버둥 치기 지친 이들이 읽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