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장정일, 마티
장정일의 독서일기가 꾸준히 이어오고 있었다. 시기마다 다른 이름으로 독서일기에서 시작해서 계속 진행 중이다. 몰랐다. 대단한 분이다. 그 끈기와 노력. 책 한 권을 내면 게을러질 것 같은데 이 작가는 계속 읽는다. 그리고 그 힘으로 쓰는 게 아닐까. 100권에 책을 읽어야 1권을 쓴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책을 파고들수록 현실로 돌아온다는 말이 새삼 무겁게 다가왔다. 치열하게 책도 읽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사유를 깊게 하는 것도 아닌 채 무조건 쓰려고만 하는 걸 반성한다.
작가는 60세가 될 때까지 20여 권 넘는 독서일기를 내는 것이 꿈이란다. 아직 40대이니 아직 창창하다. 한 번 도전해 봐야겠다. 책을 읽고 휘발하는 것보다 그래도 한 줄이라도 기록해 두면 그 책에 대한 단상이 오래 남겠지. 이 책을 훑어보니 내가 읽었던 책 보다 안 읽었던 책이 더 많다. 5권 정도 찾았다. 읽었던 책 독서감상문 두 권을 찾았다. 88만 원 세대, 오 하느님. 이것 역시 내공이 쌓인 작가와 역시 차이가 많이 난다. 그리고 독서감상문, 독후감, 독서일기 내용 차이가 많이 난다. 현실을 연결하는 내공이랄지, 책 내용으로만 끝나는 게 아닌 대안을 제시하거나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안목 등 역시 작가 장정일은 고수다.
읽고 싶은 책, 내 일상과 비슷한(?) 독후감을 적어본다. 이 책에 나온 독서일기 중 하나인 '또라이 공화국 / 또라이 제로조직 / 로버트 서든/ 2007 작품이다.
"당신이 일하는 직장의 상사 가운데 부하의 의견을 묵살하고 모욕하거나 호통을 치는 사람이 있는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직원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고 아무렇지도 않게 인신공격을 하는 상사는? 드러나지 않는 감시와 횡포는 물론이고 폭력마저 불사하는 상사, 혹은 부하 여직원만 보면 성적 농담을 하거나 껴안으려는 상사가 있는가? 어느 일터에나 있게 마련인 그런 ' 또라이' 들 때문에 오늘도 당신의 출근길은 무겁다.
<미친놈 제로조직>을 쓴 로버트 서튼은 이런 '또라이'을 방치하는 직장은 먼저, 조직 내의 구성원을 병들게 만든다고 말한다. " 수면장애, 불안, 무기력증, 만성피로, 신경과민, 화, 우울증" 등은 다혈질적이고 공격적이며 비열한 폭군이 도사린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겪는 정신적, 신체적 병증이다.
조직의 구성원이 매일 조금씩 죽어가고 있으니, 그 조직 또한 성할리 없다. '또라이' 들의 특징은 우선 직장 구성원들의 활력과 창의력을 송두리째 빨아들이고, 구성원에게 필요한 "열정, 헌신, 조직과의 일체감" 따위를 앗아간다. 그곳에서는 충성심이나 애사심을 잊은 채 그저 월급날을 기다릴 뿐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해결하기보다는 서로 떠넘긴다. 회사보다는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비열한 인간이 조직을 이끌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 최고의 인재들을 끌어올 수 없을뿐더러, 이미지 손상으로 ' 투자자들의 믿음과 신뢰' 마저 흔들리게 된다. 직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중할 줄 아는 기업은 엄청난 경쟁력을 얻는다.
이 책에서 말하는 "또라이"는 자기보다 약한 자를 무시하고 못살게 구는 자들을 일컫는다. 저자에 따르면 "직위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가 인격을 가늠하는 좋은 잣대" 라지만 "수백 편의 연구 결과를 보더라도 사람들은 권력의 자리에 오르게 되면 말부터 많아"지고 "자기보다 힘없는 사람들이 자기 행동을 보고 어떻게 반응할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라고 한다. " 한마디로 권력의 지위에 들게 되면 자신들이 미친놈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감아" 버린다. 불현듯 대한민국이 걱정되는 대목이다. 공교육도 걱정되는 대목이다. 그래서 학부모들이 사교육을 찾는지 모르겠다. 미친놈들이 갑질신고와 미투선언, 공직자 부조리 방지 신고 등으로 그래도 많이 사라지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들이 내성이 생겨 더 강력한 멘털로 뻔뻔하게 변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또라이를 피해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기거나 부서를 옮기면 꼭 또 다른 또라이들이 있는 머피의 법칙 같은 일들을 경험하곤 한다.
미친놈 제로 조직이 필요하다. 그 미친놈들은 조직의 발전을 위해 자신들이 악역을 당당히 자처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는 이들도 있다. 미친놈 제로 조직이 없는 곳은 아마 자연에서 일하는 농부들이지 않을까. 개인사업이고, 자연과 일을 하니 농작물인 식물들이 말을 많이 하거나, 자기보다 약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태양 빛, 온도, 영양분이 서로 공생하는 생태계 법칙만 있겠지. 미친놈 짓이라는 게 사람 영역이지 신의 영역은 아닐 것이다. 날씨변화, 자연재해는 사람 영역 밖이니 뭐라 할 수 없다. 미친놈 제로 조직이 없다는 가정하에 이렇게 자연에서 일하는 일을 생각해 보곤 한다.
거창하게 이름 진 '나의 서평일지' 멘토가 된 작가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응원하며 책이 책 속에만 머무르는 현학적이지 않고 현실과 함께 하는 즉 앎과 삶이 함께하는 그런 독서일기, 서평을 쓰고 싶다. 내 삶과 크게 동떨어지지 않고 책과 함께 숨 쉬는 그런 살아있는 글, 서평을 쓰고 싶다. 또라이처럼 말부터 많아지기보다 논리적인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