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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산 Jun 17. 2024

내가 가장 나빠질 때는 흙을 멀리할 때

내가 가장 착해질 때/서정홍/나라말/2012

한때 카카오스토리가 한창일 때인 걸로 기억된다. 다양한 또 다른 SNS가 유행이지만. 그때 다섯 살 귀여움이 으뜸인 시절의 두 아이들 사진을 연일 올릴 때다. 가끔 부모님 시골 농사일을 돕는 사진을 설정처럼 가끔 올렸던 적이 있다. 설정이라 하기에 너무 주말에 자주 가서 돕기는 했다. 아내가 그런 모습을 안쓰러워하기는 했지만. 육아로 힘든데 집안을 조금 도와줬으면 했다. 부모님 벼, 딸기, 멜론 농사를 돕느라 정신없을 때가 있었다. 지금은 기계화되고 많은 부분을 젊은 그곳 청년들에게 맡기기에 햇볕을 덜 보고 비타민 디를 조금 먹어서 인지 진한 구릿빛 피부가 연한 구릿빛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때 아마 얻은 별명이 농부교사였다. 이때  내가 가장 착해질 때를 쓴 농부시인 서정홍의 시를 만났다.

 


내가 가장 착해질 때

                        서정홍

이랑을 만들고

흙을 만지며

씨를 뿌릴 때

나는 저절로 착해진다.


위 시를 통해 알게 된 서정홍 농부시인인 본인은 그냥 농부라는 직업만 원한다고 하신다. 시인이라는 호칭은 부담스럽고 요즘말로 부캐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찐 농부셨다. 농부의 아들이지만 이렇게 농부를 찬양(?)하고 농업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신 분은 처음 본다. 내가 꿈꾸는 대농이 아니고 소농을 이야기하시지만. 우리 어렸을 때 이런 분들이 많았으면 농업이 이리되지는 않았을 텐데. 지금처럼 천덕꾸러기 같은 처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요즘 우면산 산사태처럼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 현상이 줄어들지 않았을까 싶다. 환경오염도 소농이 사라지고 경제발전만을 위한 세태에서 나타난 현상이라 생각한다. 자본주의 효율성을 따지다 보니 과정보다는 결과가 좋게 나오기를 바라는 인간의 욕심이 이런 기후위기를 만들었다.

 저자인 서정홍시인은 농부로서 농사짓는 것 자체에 행복을 느끼는지, 아님  농사짓는 과정을 매개로 시를 짓는 것을 행복을 느끼는 건지 궁금했다. 자신이 하는 일에 행복을 느끼고 이렇게 행복론을 쓴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겠지. 보통은 본 업보다 다른 곳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다. 언젠가 나 역시 행복론을 써봐야겠다. 농부 교사 행복론, 아니 농부행복론을 써보고 싶다. 작가는 녹색평론집에서 다양한 이들의 글귀를 인용해 농부의 위대함을 이야기한다.


 농부 찬양 글귀

1. 한 사람의 농부가 농사를 짓지 않으면

   천하는 반드시 굶주리게 될 것이다.

                                  - 후한의 유학자 왕부

2. 농업과 농민을 우대하지 않으면, 바다를 건너 막대기를 벗 삼아

   이민하는 것보다 못하다. - 다산 정약용

3. 농사는 천하의 대본이라는 말은 결단코 묵은 문자가 아닙니다. 이것은 억만년이 가고 또 가도 변할 수 없는 대 진리입니다. 사람이 먹고사는 식량품을 비롯해 의복, 주옥은 말할 것도 없고 상업과 공업의 원료까지 하나도 농업의 생산에 기대지 않는 것이 없으니,

  - 윤봉길 의사가 쓴 <농민독본> 중에서

4. 독일 정부가 말하는 농업의 열 가지 기능

  1) 식량을 보장한다.

  2) 국민산업의 기반이다.

  3) 국민의 가계비 부담을 덜어준다.

  4) 문화경관을 보존한다.

  5) 마을과 농촌공간을 유지한다.

  6) 환경을 책임진다.

  7) 국민의 휴양 공간을 만들어 준다.

  8) 값비싼 공업원료 작물을 생산한다.

  9) 에너지 문제 해결에 기여한다.

  10) 새로운 직업을 제공한다.

5. 우리와 우리의 자식들이 살아남고, 살아남을 뿐 아니라 진실로 사람다운 삶을 누릴 수 있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협동적인 공동체를 만들고, 상부상조의 사회관계를 회복하고, 하늘과 땅의 이치에 따르는 농업중심의 경제생활을 창조적으로 복구하는 것과 같은 생태학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조직하는 일밖에 다른 선택이 없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생활의 창조적 재조직이 가능하려면,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한 겸손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정신적 자질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보인다. - 김종철 선생이 쓴 <녹색평론선집 1> 머리말 중  


다시 시 이야기로 돌아가 마음속에 새겨진 여러 가지 시들을 나열해 본다.

 

"메마르고 숨 가쁘고 안절부절못하는 젊은이를 수없이 봅니다. 흙과 떨어지고, 일하는 즐거움과 힘겨움에서 떠난 결과가 이렇게 되는구나 싶습니다. 밥이 시시하고, 흙을 모르고, 세상에 무서운 게 없으면 망하는구나 싶습니다."  - 고집쟁이 농사꾼 전우익 선생이 쓴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중에서


우리말 사랑 4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 죽으면

사망했다 하고

넉넉하고 잘 배운 사람들 죽으면

타계했다

별세했다

유명을 달리했다 하고

높은 사람 죽으면

서거했다

붕어했다

승하했다 한다.

죽었으면 죽은 거지

죽었다는 말도

이렇게 달리 쓴다, 우리는

나이 어린 사람이면 죽었다

나이 든 사람이면 돌아가셨다

이러면 될걸.   



아들에게 2        

아들아

아비의 손을 보아라.

마디마다, 지문 속까지

기계기름에 얼룩진 손이란다.

예전에는

아비 스스로

이 손이 싫어서

남에게 드러내기를 싫어했단다.

내 손을 보면

까무잡잡한 농촌 아가씨마저

얼굴을 돌리고

사람대접 한번 받지 못했단다.

아들아

아비의 손을 보아라.

이제는

이 손이 자랑스러워

남에게 드러내기를 즐긴단다.

노동자의 손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것을

알고, 실천하고부터란다.

아들아

가난하지만 티끌 없는

아비의 손을 보아라.

늘 옳은 일에 주리고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이 없는

힘 있는 손이란다.

아비의 손을 부끄러워 말아라.

사랑하는 내 아들아.   



교육의 대한 이야기도 하셨다.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서정오 선생님 말씀처럼 교사들의 꿈은 아이들을 한번 열심히, 제대로, 온 힘을 다해 가르쳐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써야 할 힘을 죄다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잡일'에 쏟고 있다고 합니다. 공문서 쓰고 서류 만들고 출장 가고 통계 내느라 진땀을 빼고 있답니다. 공문서 쓰고 서류 만드는 일 따위가 '본일'이요 아이들 가르치는 일은 '잡일'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라 합니다.

서정오 선생님 말씀처럼, 학교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 잡일이 많긴 많은가 보다. 저렇게까지 허풍을 치는 걸 보니' 하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교사들을 괴롭히는 게 또 있다고 합니다. '위'에서 내려오는 온갖 부당한 지시와 간섭, 통제와 모욕도 참고 견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길로 '목이 잘린'답니다. 조금도 부풀려서 하는 말이 아니랍니다. 차라리 부풀려서 하신 말씀이라면 마음이나 편할 텐데 말입니다. 대한민국 많은 교사들의 현실이 이렇다고 하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 우리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 2009년 12월호 중



삶을 가꾸는 농부의 시 쓰기 삶을 보여준 서정홍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아직 직접 대면을 못했지만 나중에 작가와의 만남 같은 강연자리에서 만난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다. 생태귀농을 꿈꾸는 벗들에게 들려주는 생명이야기로 많은 이들이 농촌으로 돌아와 우리 아이가 시골에 가면 할머니들과 동무삼아 놀기보다 또래 아이들이 더욱 많이 늘어나길 바랍니다. 나 역시 다시 한번 다짐을 합니다. 생태귀농을, 그 방법이 변이 된 스마트팜이라는 할지라도. 농업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이들이 많아져 확산되길 바란다. 세상이 아무리 경제논리로 똘똘 뭉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더라도 또 다른 제3의 영역을 꿈꾸는 이들이 그래도 살아남아 이 자연이 오랜 시간 지속되기를 바란다. 인간만을 위한 자연이 아닌 생태계를 이루는 다양한 영역의 주체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메마르고 숨 가쁘고 안절부절못하는 중년이 된 이유가 이랑을 만들지 않고, 흙을 멀리하고, 씨를 뿌리지 않았기에 저절로 나빠졌는지도 모르겠다.  

<2011.7.11-2011.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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