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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산 Jul 01. 2024

좋은 곳으로 가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행복한 방법은?

더 좋은 곳으로 가자/정문정/문학동네

저자와 출판사 담당자가 제목을 정할 때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다. ' 더 좋은 곳으로 가자' - 능력에 요령을 더하면 멋지게 갈 수 있다. 이 타이틀을 '더 높은 곳'으로 하지 않고 '좋은 곳'으로 하는데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을까 싶다. 높은 곳이라고 하면 능력주의를 강조하고, 거창한 계급 상승을 위한 몸부림처럼 느껴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마지막 장 제목처럼 과거의 어둠은 베이스캠프에 묻어두고서 어딘가로 또 떠나길 바란다. 현실만족, 안분지족 한다는 것은 도태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 어딘가로 계속 떠나야 되는구나. 유목민의 후예답게.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이후로 앞뒤로 읽어도 똑같은 이름 정문정 작가의 글에 관심이 많이 생겼다. 글이 어렵지 않고 쉽게 읽힌다. 이게 글쓰기 고수라는 걸 증명한다. 그래서 그의 글을 계속 읽어보려고 한다. 이 번 책이 두 번째이고 세바시 영상에서도 이 책에 대한 소개 모습을 보았다. 가난한 사람들과 부자인 사람들의 차이가 문화적 자본 차이라는 걸. 시간이 힘이 되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그 시간을 허비해서 성장하는데 어려움이 생긴다는 말. 그래서 대학 장학금을 성적순으로 주는 게 아니라 아르바이트하는 시간 순으로 줘서 당장 학비와 교재비를 벌기 위해 공부할 시간을 알바시간으로 허비하는 그 대학생을 구제해야 한다는 정책이 크게 와닿았다. 우리나라에슨 보편복지를 지향하는데 이게 적용될지 모르겠지만 모든 대학생들이 공평하게 생계가 아닌 학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되길 바란다. 아래 글처럼 가슴 아픈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미국 아이비리그나 최고 공립대학들도 모두 성적장학금을 폐지했다. 거의 100퍼센트 저소득층 장학금이다. 덕분에 이런 곳 합격만 하면 저소득층인 사람도 등록금, 생활비 걱정 없이 학교를 마칠 수 있다. 나도 수혜자 중 한 명이었다. 아니 그게 없었다면 학교를 마치지 못했을 것이다. 고려대에 와서도 학부 가르칠 때는 알바 때문에 수업 시간에 결석하거나 자고 있는 학생들에게 어쩔 수 없이 F를 줄 때 정말 가슴 찢어졌다."


작가 정문정은 뜬구름 잡는 식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즉 지나치게 이상적이거나, 아프니까 중년이라거나 성장을 위해서는 고통과 실패가 필요하다는 식은 아니다. 작가의 실제 삶과 경험에서 울어 나온 이야기다.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이야기. 그래서 더 공감이 간다. '나도 그랬었지, 맞아 그래서 내가 이렇게 되었구나. 그때 이 책을 미리 보았다면, 이런 멘토가 곁에 있었다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썼을까? 나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등 아쉬움이 들 때가 있었다. 그때 어리석은 후회라고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지금까지 오는 한 과정이었기에 그 부분 역시 필요한 단계였다고 말하고 싶다.


이 책에는 '가난'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작가도 그랬지만 나 역시 유년시절, 학창 시절 부유한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대학시절 방학이면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야 했다. 전액 장학금은 받지 못했지만 중간중간받는 장학금은 큰 보탬이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가 그 시절 알바를 해서 돈을 벌게 아니라 더 공부를 해서 진로를 바르게 찾았어야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건 아니라는 합리화를 한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다고. 그 아르바이트 경험도 또 다른 생활 밑천이 되었다고. 그것 역시 <데미안>에 나오는 문장처럼 "깨어난 인간에게는 단 한 가지, 자기 자신을 탐색하고, 자기 안에서 더욱 확고해지고, 그것이 어디로 향하든 자신만의 길을 계속 더듬어나가는 것 말고는 달리 그 어떤, 어떤, 어떤 의무도 없다고. 


재능이란 단어의 뜻을 재발견하는 기회도 가졌다. 재능이 영재, 즉 천부적으로 타고난 사람만이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로 돈을 못 벌 것 같으면 다른 직업인 해야 하는 일로 돈을 벌어서라도 좋아하는 일을 놓지 않는 꾸준함에 깃드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글쓰기를 계속 이어가려는 것도 재능의 끈을 놓지 않고 다가가려는 요령이라 생각한다. 우유부단하고 남들 시선을 신경 쓰는 기질인데 여기서 남을 의식하지 말라는 충고가 재차 와닿았다. 확고한 고집이나 주관이 있으면 오해받기 쉽고 의도치 않게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를 보았다. 자기 검열을 과하게 하면 창의적인 생각이 없고 무난하고 진부한 내용이 나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워왔다. 항상 그 중간이, 균형 잡기가 맹점이다. 비판과 지적을 받아들이는 열린 태도와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고 배우려는 부드러움이 필요하다. 흔히 상대방에 대해 훈수는 잘 두지만 자기 경기에서는 그 훈수처럼 조절하고 진행하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남의 결과만 보고 판단을 내리거나 평가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걸 창조하는 사람이 되는 건 호락호락하지 않다. 모든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라. 하지만 자신의 결정에 따라 행동하라는 유대인 속담처럼 해야 한다. 


이 책 속에는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자존감: 스스로 품위를 지키고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 자기 인격성의 절대적 가치와 존엄을 스스로 깨달아 아는 일이라고 어학사전에서는 정의한다. 이 자존이 흔들리는 이유는 상대적인 비교와 주위 사람들의 지나친 기대감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인스타그램 등 상대비교를 조장하는 많은 SNS 이미지와 너튜브 등 화려한 영상 광고의 홍수시대라 그 비교수치는 높고 상대적 박탈감도 크다.   자신의 단점이 이해받기 원하면서 타인의 단점은 너무 쉽게 바꾸라고 지적하는 내로남불 같은 일이 흔하다. 그리고 그 단점을 개선하려고 애쓰다 보면 감자나 고구마 뿌리처럼 장점과 단점이 서로 얽혀있는데 단점을 제거하려다 장점마저 잘려나갈 수 있다는 말이 새삼 와닿았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 누구나 보이지 않는 상처와 과거는 있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공정과 상식 있는 사회'를 바라고 흔들리는 자존감을 되찾고 싶은 청년들에게,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성장이 아닌 성찰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유엔 기준 청년의 나이가 18~65세까지이니 나 역시 아직 청년이다. 중년이 아니라. "불행한 아이였다고 해서 가난하게 태어났다고 해서, 불행한 어른이 가난한 어른이 되라는 법은 없다. 어찌 됐건 살아남았다면, 어른이 된 후에는 자기 삶의 기록을 더 나은 쪽으로 고쳐 쓰는 연습을 해야 한다." 

자신의 인생 주인공이 행복한 결말 쪽으로 결론을 내고 싶다면 매사 모든 선택을 버려진다고 느끼기보다 발견되고 있다는 긍정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 지금도 버려지는 게 아니고 새롭게 발견되는 순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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