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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산 Jul 12. 2024

모모는 왜 행복한가?

<자기 앞의 생>/에밀아자르, 문학동네, 2003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곗바늘이다

모모는 방랑자 

모모는 외로운 그림자

너무 기뻐서 박수를 치듯이 날갯짓하며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이 꿈꾸는 모모는 환상가 

그런데 왜 모모 앞에 있는 생은 행복한가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모모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대학가요제 / 노래 김만준  

7080 세대에게는 익숙한 대학가요제 노랫말이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된다는 것을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에서' 단서를 찾았다. 그전에는 미하일엔더의 '모모' 소설로 착각하고 있었다. 작가의 개명, 필명을 바꾼 사연만큼 묵직하게 여운이 남는 소설이었다. 어찌 보면 작가의 자서전적인 이야기처럼 매 문장이 자신의 이야기 같았다.  <자기 앞의 生>(문학동네, 2003)은 프랑스 소설가 에밀아자르(로맹가리)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1914년 러시아에서 유태계로 태어났다. 이후 프랑스 니스에 정착해 살았다. 프랑스에서 권위 있는 공쿠르 상을 1956년 <하늘의 뿌리>로 수상했다. 19년 후인 1975년 에밀아자르라는 가명으로 쓴 <자기 앞의 생>으로 두 번째 수상한다. 이 사실은 1980년 유서를 통해 당시 프랑스 비평가들이 자신에게 갖고 있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고자 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을 살아간 작가이다.


작품의 등장인물은 한결 같이 사회의 소외된 이들이지만 결코 어둡거나 왜곡되지 않았다. 한 사회 자리 잡은 이들로 인정한다. 열네 살 소년의 목소리로 천진난만함과 유머, 순수함으로 담담하게 전달하고 있다. 주인공 모모가 자주 말하고 닮고 싶은 빅토르 위고 작품 ‘레미제라블’처럼 불쌍한 사람 이야기다. 하지만 그 불쌍한 사람 이야기로 멈추지 않는다. 그들이 함께 연대하며 살아가는 것을 독자에게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준다. "그녀는 일어서서 진열대로 가더니 달걀을 하나 더 집어서 내게 주었다. 그러고는 나에게 뽀뽀를 해주었다. 한순간 나는 희망 비슷한 것을 맛보았다. 나는 내 생이 모두 거기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겨우 달걀 하나뿐이었는데. (p.18) 이 장면은 빅토르위고 레미제라블의 장발장 모습과 겹친다. 장발장은 은촛대지만 모모는 작은 달걀에서 생의 희망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 거지."(p.96), "우리에겐 인간의 형상을 만드는 것을 신을 모독하는 것이라 해서 금지되어있다.(중략) 그래서 나는 아르튀르에게 그려준 눈 코 입을 지워버리고"(p.89), "이건 얼굴이 아니에요. 그냥 헝겊이에요. 우리는 얼굴 같은 걸 만들면 안 돼요."(p.135) 이처럼 인간을 인종과 종교로 규정짓는 모순과 사람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서술한다. 완벽한 진실이 다른 한쪽에서 바라봤을 때는 거짓으로 보이는 상대적인 삶을 이야기한다. 제3세계 사람들을 동정하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걸 보여준다. 오히려 더 뛰어날 수 있다는 것을 로자 아줌마와 함께 한 이들의 삶을 통해 작가는 말한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중략) 사랑해야 한다.(p.310)는 이 마지막 문장은 주인공 모모가 독자들에게 함께 비를 맞듯이 서로 시간을 보내며 함께 연대하라고 다시 한번 강조한다.


작가는 모모의 목소리와 시선을 통해 '자기 앞의 생'을 이야기한다. 꼬마철학자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신선함과 위트가 있다. 쉬운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가 가독성이 높다. 유태인으로 힘든 삶과 생의 끝을 힘들게 경험하는 로자 아줌마와 그 주변 따뜻한 이웃들의 삶의 관계를 통해 생은 결코 혼자만의 일이 아닌 함께 해야 하는 통과의례라는 걸 보여준다. 제목이 다소 모호하지만 '자기 앞의 생'- 여생,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모모 미래는 이들과 함께해서 희망이 있음을 예고한듯하다. 화자인 모모가 나이에 비해 너무 성숙하고 어른이 생각할 법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금 아쉬웠다. 반면 어린아이다운 순진한 행동과 심리표현을 나타내는 장면은 예리하다. 책을 읽는 내내 독자 자신의 유년을 돌아보게 만든다. 작가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유태인과 아랍인을 연결 짓고, 거리 아이들, 트랜스젠더, 창녀, 아프리카 이주민 등 제3세계에 관심이 많아 그들을 동정하기보다는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그려낸다. 좌우, 세대, 계층 간 대립이 심한 요즘 우리가 꼭 읽고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를 갖게 해 준 책이다. 인간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책이라고나 할까. 앞에서 이야기했듯 같은 이름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미하일엔더의 모모’와 비교해서 읽는 것을 권한다. ‘시간’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좋겠다. 과거의 힘든 삶의 찌들어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사랑하기 두려운 사람이나 남에게 상처받기를 피해 조금 움츠러든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아니 그 이후에 모모와 친구들, 그의 가족과 지인들을 통해 세상이 달리 보일 수 있다. 아니 주위를 살피고 옆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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