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정아은/마름모
제목에서 조금 성의가 없다 느꼈지만 실 내용은 알찼다. 글쓰기와 작가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게 된 책이다. 글쓰기 작법서가 시들해질 즈음 직설 화법으로 사실적으로 접근한 책이다. 정아은 작가를 모르고 있었다는 게 창파 하기까지 할 정도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어 떠오르는 문장, 기록하고 픈 문장은 아래와 같다.
"잘 쓰지 않겠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끝까지 쓰겠다. 나는 그저 많이 쓰겠다. 글쓰기는 양이다!"
이 말을 유념해 두기로 했다. 잘 쓰려고 해서 쓰지 못했다. 이런 글 왜 써야 하나? 누가 봐줄까? 등 잘 쓰려는 욕심에 머뭇거리고 그만 두었적이 많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듯 초고는 쓰레기라는 생각으로 우선 쓰고 그다음 고치고 또 고치고, 고쳐 쓰는 과정을 통해 득도하듯 무념무상의 글, 잘 써야겠다는 마음이 사라진 뒤에 잘 쓴 글이 나온다는 작가의 말을 기억해 둔다.
글쓰기 모임과 합평을 운영하면서 내상을 입지 않는 방법 안내가 인상적이었다. 이는 글만 해당되지 않고 사람 사이 관계나 대화 등 일상 인간관계에서도 통할 만한 방법이다. '글'이라는 단어를 '사람'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첫째, 글을 평가할 때는 비하의 뜻이 담기지 않은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한다. 가독성이 떨어진다, 재미없다, 허술하다 등과 같이 단어 자체에 강력한 폄하가 내포된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둘째, 모호하게 뭉뚱그린 평가의 말을 피한다. 누가 무엇을 하는 장면에서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거나, 그 장면에서 사용한 특정 단어가 앞뒤 맥락상 잘 어울리지 않았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대목으로 한정해 언급한다.
셋째, 평가하려는 글에 내재된 장점을 한 가지 이상 파악해 쥐고 있자. 파악한 장점을 평을 시작할 때 우선 언급하자. 거짓말을 하라는 뜻이 아니다. 모든 글에는 그 글에만 서린 특유의 장점이 반드시 있다. 성의 있게 들여다보면 이내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을 알아보고 평의 서두에 표현해 주면 글쓴이가 합평을 해주는 사람이 이후에 해나가는 발언을 신뢰하고 수용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이 문단이 인상 깊었다. 넷째,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이 상대에게 가닿을 때 어떤 반향이 일어날지를 생각해 보고 발언한다. 지금부터 하려는 말을 나 자신이 듣는다면 어떨까? 상상해 본 뒤 괜찮겠다 싶으면 그대로 말한다. 불쾌하겠다 싶으면 그렇게 말하려 했던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나는 왜 타인이 쓴 글에 그런 말을 하려 했을까? 상대의 글쓰기에 도움을 주겠다는 의도였을까? 혹시 누군가의 글에 혹평을 내림으로써 우월감을 맛보고 싶었던 건 아닐까? 평가를 내릴 수 있는 힘을 손에 넣은 것 자체를 즐기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래 나도 그 면전을 주면서 우월감을 누리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반성해 본다. 평가를 내린다는 그 선 넘음을 즐기는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일방적인 의도로 말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평가의 끝에는 대안을 제시한다. 대안이 꼭 특단의 비결을 담고 있을 필요는 없다. 아이디어를 일러주는 차원이라기보다, 평가를 해주는 내가 평가의 대상이 된 글을 여러 번 읽어보고 글쓴이가 했던 것만큼 공들여 대안을 생각해 보았음을 나타내주는 차원이다. 마음을 보여주고 리포를 형성하기 위한 대안 제시라는 말이다. "
대안이 숙제처럼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난으로 끝나지 않고 반대를 위한 반대만이 아닌 함께한다는 의미에서 대안제시는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진상 민원인을 대처하는 방벙으로 응용할 수 있는 이야기도 나온다. 갑자기 공격적인 말을 폭격하는 이에 대처하는 법, 이들을 냉철하게 읽어내는 방법을 알려준다.
" 저 사람이 지금 '자존감을 높이기 운동 욕구'에 점령당했구나. 낮아진 자존감을 도닥이기 위해 엉뚱한 곳에서 이빨을 드러내고 있구나. 참으로 가엾구나."라고 얼마나 세련되게 대처하는 방법인가. 내면으로 소화한다. 함께 화내거나 흥분하지 않고 말이다. 다혈질인 내가 배워야 할 내면 소화 방법이 아니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어떻게 시작하는가?, 어떻게 쓰는가? 쓰는 마음, 작가를 둘러싼 사람들' 이렇게 네 가지 챕터로 나눠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중 '어떻게 쓰는가' 부분에서 '서평' 이야기가 확 공감되었다. 서평 쓰기를 어려워만 했는데 다른 글쓰기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다고 한다. 왜냐면 비빌언덕이 있다는 거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반쯤은 있다는 거다. 일반 글쓰기가 주관식 문제라면 서평 쓰기는 예시가 내정된 객관식 문제라고. 그런데 난 왜 이리 어려울까. 그래 사지선다형 객관식이다. 쉽게 접근하자. 서평 쓰기에서 중요한 것은 해석 부분이다. 작가와 교감하며 작가의 생각은 그런데 나의 생각은 이렇다. 비슷한 경험이나 차이점을 이야기하고, 책 속에서 알게 된 지식을 비교하고 대조해 새로 들어온 정보를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게 하는 게 서평의 역할이라고 했다. 또 장점으로 책을 쓴 작가와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최근에 이곳 브런치에서 정문정 작가 서평을 써서 그의 댓글은 아니었지만 라이킷을 받았다. 이런 과정으로 더 서평을 쓰고 싶다는 동기가 더욱 생겼다.
두 번째로 글의 종류인 에세이 글의 가장 큰 힘은 다가서기에 쉽다. 그래서 근엄하지 않고 친근하다. 근엄한 분위기의 집안에서 자라서일까 싸늘한 눈빛과 긴장감이 감도는 냉랭한 분위기보다 훈훈한 분위기가 좋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호들갑스러운, 또는 격한 분위기는 싫다. 둘째는 공감이다. 너도 그랬니? 나도 그랬는데!라는. 동료가 있구나 하는 안도감을 찾는 맛에 찾게 되는 글쓰기 종류가 에세이 글쓰기다. 이 에세이글쓰기에서 중요한 무기는 솔직함과 디테일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대의와 영웅담에 빠진 이들을 구하는 것은 소소함을 표현하는 디테일이다. 이 책에서 소개된 작가의 '엄마의 독서'라는 책을 읽어봐야겠다. 제목은 서평같지만 에세이 요소가 있는 공감과 디테일을 찾기 위해.
세 번째 종류는 소설이다. 이 장르에서 중요한 표현기법인 '보여주기'가 '설명하기'보다 더 큰 영향력을 미치는 까닭을 속 시원하게 말한다. 아니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유전적으로 아니 선천적으로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고 태어난다고. 인간 누구나 몸과 내 몸 안에 깃든 생명, 즉 영혼 혹은 정신이라 불릴 진한 덩어리의 주인이라고. 인생 자체가 본인 것이니 내가 아닌 타인이 이래라저래라 하며 나와 내 인생을 조정하려 들면 반감이 생긴다고. 누구나 육신과 삶을 내 의지대로 살고 싶기 때문이라고. 이때 생각나는 노래 장기하의 '그건 네 생각이고' 노랫말이 순간 지나간다. "내가 너로 살아봤냐 아니잖아. 네가 나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설명하기'는 어쩌면 계몽소설과 같다. 꼰대 선생님처럼 잔소리로만 쭈욱 이어진다면 독자 친화적이지 않다. 작가 중심적인 내용 전개다. 그렇게 인생사도 설명하기보다 보여주는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말과 글보다 그 사람의 행동과 실천이 대변하는 것처럼. 더 감화받는 것처럼.
마지막으로 왜 쓰는가는 계속 이어지는 화두다. 나 역시 작가처럼 자본주의에 지지 않기 위해 쓰고 싶다. 아니 휘둘리고 싶지 않기 위해 쓴다랄까. 두 번째는 나 역시 인정욕구가 크다. 내적 관종을 자처하면서까지. 하지만 그게 관종보다는 조금 고급스러운 루트를 통해 세련되게 인정받고 싶다. 그래서 쓴다. 잘 쓰려하지 않고 많이 쓰려고 한다. 단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쓰련다. 이렇게 작가가 됨을 알려준 정아은 작가에게 저래서 작가가 되는구나를 배운 책이다.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그리고 도서관 연체일을 넘기면서 까지 읽고, 스마트폰 메모장에 글귀를 쓰고 싶게 만드는 재미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