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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 Apr 21. 2024

생애 최초의 방: 영화 <다섯 번째 방> 리뷰

[영화] 다섯 번째 방


영화 <다섯 번째 방> 포스터


영화 소개


  <다섯 번째 방>은 늦은 나이에 시댁을 떠나 본인의 삶을 찾아 독립하는 엄마 '효정'의 여정을 그린 다큐 영화다. 오랜 시간동안 시댁살이를 해온 효정은  세 번이나 다른 방으로 이사했다. 이는 효정의 의지가 아니라 누군가가 떠난 빈 방에 효정이 자리를 옮기는 방식으로, 타의적인 이동이었다. 전업주부로 20년을 살아온 효정은 상담사라는 직업을 갖고, 집안의 새로운 가장이 되었다. 하지만 아빠는 여전히 순종적인 아내의 역할을 원하고, 효정은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 

하지만 아빠는 여전히 순종적인 아내의 역할을 원하고, 여전히 집안일은 효정의 몫이다. 엄마는 안전한 공간으로 독립을 원한다. 각방살이 중에도 아빠의 침입이 이어진다. 엄마가 계속 방을 옮겨도 아빠는 계속해서 엄마의 공간에 훼방을 놓는다. 



여성과 공간


  효정은 평생 자신의 방을 가져본 적이 없다. 영화 말미에 효정이 자신의 힘으로 구한 집 역시 효정의 다섯 번째 방이 아닌 '첫 번째 방'이었다. 상담사 일을 시작하며 얻게 된 1층 안방, 이후 옮겨 간 2층 방 역시 남편이 불시에 출입하는 독립적이지 못한 공간이었다. 

  이런 와중에 시어머니는 효정이 살고 있는 2층 집의 지분 일부를 자신의 딸(감독의 고모)에게 넘기겠다고 한다. 효정은 본인과의 상의는 일절 없이 이뤄진 시어머니의 독단적인 결정에 충격을 받는다. 그에 효정은 자신의 서러움을 시어머니에게 토로해 보지만 시어머니는 알아주지 않는다. 그렇게 효정은 자신이 오롯이 소유하고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나선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가족’과 ‘집’의 의미를 다시 곱씹어보게 한다. 무능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 헌신적인 어머니, 이를 그저 바라보는 자녀들. 절망적이지만 이러한 구도는 우리에게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전업주부로 지내던 효정은 남편의 소파 사업이 어려워지며 자녀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뒤늦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효정은 여전히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무능한 남편을 뒤로 하고 설거지와 빨래를 해야 했다. 때로는 집안일이 밀렸다며 시어머니께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 2층 집의 모든 집안일은 당연히 효정의 몫으로 되어 있었다. 가족 그 누구도 효정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았다.


  감독은 경제적 독립을 통해 전통적이고 가부장적인 가족 형태에서 벗어날 것을 강조한다. 효정이 돈을 벌지 못했더라면 독립에 필요한 비용은 물론 독립에 대한 의지조차 키우지 못했을 것이다. 효정은 가정 폭력 상담사라는 자신의 직업과 모순되는 자신의 일상을 다큐멘터리 촬영 과정을 통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는 효정이 독립을 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일은 하기 싫고, 가부장제는 지키고 싶고


영화 <다섯 번째 방> 스틸컷

  효정과 달리, 효정의 남편은 평생을 의존적으로 살아왔다. 아버지를 통해 직장을 얻고, 어머니의 집에 얹혀산, 자기의 손으로 이룬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남편은 불안한 마음에 딸(작품의 감독)에게 ‘아빠가 좋냐 싫냐’와 같은 질문을 습관적으로 던진다. 하지만 감독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 남편은 감독인 딸과 종종 드라이브를 가기도 하고, 또 영화감독으로 일하는 딸을 자랑스러워한다. 아빠를 막연히 미워할 수 없다는 것, 또 이러한 작품을 찍으며 아빠를 나쁜 사람으로 그리는 것은 감독에게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감독이 느끼는 이러한 감정들은 상당히 현실적이다. 가족이라는 형태 안에서 우리는 상처를 받기도 하고, 사랑을 받기도 한다. 아버지의 폭력적인 면을 수차례 목격했음에도 그 관계를 잘라내지 못하는 모습이 역설적이게도 ‘가족적’으로 느껴졌다.


  효정에게 ‘2층 집’은 고된 시가살이의 버팀목이었다. 찰나의 역경만 견디면 언젠간 이 집이 나의 집이 될 것이라는, 막연하지만 자연스러운 희망을 품고 살았다. 그러나 효정에게 ‘2층 집’은 가장 불편하고 또 언젠가는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정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효정의 남편은 상담이 진행되고 있는 효정의 방에 불쑥 들어와 훼방을 놓는 것은 물론, 술에 잔뜩 취한 채로 2층에 올라와 잠긴 효정의 방문을 힘껏 두드리며 ‘넌 나한테 안된다’등과 같은 협박성 발언을 일삼기도 한다. 이는 효정의 커리어는 물론 일상적인 삶마저 위협하는 폭력적인 행위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효정은 자신의 안위와 직업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방을 찾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영화는 전통적인 가족 형태로부터의 탈피를 강조하는 동시에, 경제적 자립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효정은 직업을 가지면서 당당한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남편의 요구에 순종적이고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이던 전과 달리,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밝힐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효정은 경제적 독립을 통해 '믿을 구석'이 생기면서  자유롭고 솔직하게 의사를 개진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 <다섯 번째 방> 스틸컷

  영화는 효정이 딸과 함께 봄나물을 따러 가며 마무리된다. 추운 겨울을 지나 효정이 딸과 함께 웃으며 봄나물을 따러 가는 모습은 우리를 울컥하게 만든다. 관객들은 자신의 어머니를 효정에 투영시킨다. 가정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해온 어머니의 미소는 우리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여러 복합적인 감정을 환기시킨다.  고된 겨울 끝에 찾게된 효정의 첫 번째 방에도 따뜻한 봄바람이 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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