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하루 속 작은 행운

정성스럽게, 평범하게.

그날의 일과를 마치고 불 끈 방에서 이불 속에 들어가 잠을 청할 때 무사히 하루가 지나갔음에 안도한다. 보통 그냥 자는 것이 아까워 나만의 시간을 가진다는 핑계로 동영상을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다가 까무룩 잠이 든다. 그럼에도 빼놓지 않고 하는 것은 얼마쯤 내일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매일 약간의 희망을 걸다 보면 언젠가 몇 번은 (한 번은 아쉬우니까 횟수를 살짝만 늘려 욕심낸다.) 활짝 웃을만한 행운을 반드시 마주할 것이라 믿는다.


운전이 서툴다고 생각한다. 집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나갈 때에는 초보딱지를 붙이고 나가고만 싶어진다. 갱신을 두 번 했고, 한 손의 손가락으로 다 꼽지 못할 만큼의 년수가 쌓였지만 여전히 운전대를 잡을 때는 바짝 힘이 들어간다. 가장 난이도가 높다고 생각하는 것은 주차인데 뒤를 확인하고 운전대를 돌려 원하는 방향으로 차 꽁무니를 들이미는 것에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는다. 부딪히면 어떻게 하나, 뒤에서 오는 차가 나 때문에 기다리면서 뭐라고 하지는 않을까, 몇 번씩 방향을 바꿔 들어갔다 나갔다 하느라 시간을 많이 쓰면 안 될 텐데. 생각이 늘어날 때마다 실수도 늘어난다. 주차장에 들어섰을 때 차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으면 절로 손에 땀이 베인다. 빈자리. 한자리만 빈 것이 아닌 너른 곳을 찾다 보면 꿀꺽 마른침이 절로 넘어간다. 그런 자리가 없을 때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거다.


그날은 유치원에 다니는 둥이가 도시락을 먹지 않고 오는 날이었다. 오전에 유치원 임원 일이 있어 참여하는 날이기도 했다. 한 줌이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보겠다고 번개처럼 일을 마치고 모두와 눈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었다.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점심을 준비하는 시간도 줄여야 했으므로 편의점에 들렀다. 둥이가 불평불만 없이 먹어치우는 것들을 장바구니에 넣고 마지막으로 너겟을 주문했다. 편의점 아저씨는 바코드를 찍으며 너겟은 직접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다. 너겟은 계산대 옆으로 놓인 튀긴 음식 진열대(?)에 있었는데 집어 오는 동안 장바구니에 든 마지막 먹을 것이 비닐봉지로 들어가고 있었다. 편의점 아저씨의 분주한 손은 물건 찍던 기계를 그대로 내가 내밀고 있는 스마트폰의 바코드에 대었다. 삑. 계산 완료. 테이블 위에 올려진 너겟이 비닐봉지로 들어가려는 찰나였다. "저, 너겟 계산 안 했는데요." 부스럭대는 소리가 멈추고 아저씨와 내 눈이 마주쳤다. 우린 서로 씩 웃고 너겟은 다시 꺼내져 바코드를 읽혔다. "감사합니다." 감사인사와 함께 환한 미소를 보너스로 받고 편의점을 나왔다.


주차해 놓은 차 주변으로 다른 차들이 멈춰 있었다. 아까는 여유롭던 주차장 가운데 공간에도 차가 보였다. 어쩌나. 하필 나는 차와 차 사이에 주차된 모양새였고 그대로 뒤로 갈 수도, 그렇다고 차를 뒤로 빼다가 바로 방향을 바꿀 수도 없는 상태였다. 시간은 간당간당하고 마음은 급한데 주차장에서 제대로 차를 빼서 집으로 향할 수 있을까. 그때였다. 내 옆자리에 주차했던 차가 움직이더니 자리가 비었다. 이때다. 시동을 걸고 후진을 하다가 왼쪽으로 서서히 방향을 바꿨다. 이대로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뒤를 보니 새로 들어오는 차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마음이 더 급해졌다. 어서 비켜줘야 주차를 할 것 아닌가 말이다. 오른쪽으로 다시 방향을 틀었다가 다시 후진을 하면서 무심코 사이드 미러를 보다가 시야 끝에 빨간 것이 걸렸다. 어. 어어. 아까는 없었는데. 분명히 그랬는데 빨간색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여기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었나. 오른쪽으로 조금만 더 크게 꺾었으면 면허 따고 처음으로 차를 긁은 날로 기억될 뻔했다. 반뼘. 딱 그 정도의 거리를 두고 지나가는 중이었다. 뒷덜미가 서늘해지면서 운전대를 있는 대로 꽉 쥐고 굳어버린 나와 달리 빨간 차의 주인은 스마트폰에 정신이 뺏겨 이쪽은 보지도 않았다. 나는 진짜 긴 한숨과 함께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천천히 주차장을 빠져나와 도로로 나설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혹시 아까 너겟 계산할 때 모른척하지 않고 바코드 안 찍었다고 잘 말해서 그랬나. 편의점 아저씨가 웃음과 함께 행운을 준 것 같기도 하고. 괜히 오늘 하루까지 돌아봤지 뭔가. 눈에 띄게 잘한 일이라도 있었나? 그래서 보답이라도 받은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바쁜 시간 쪼개서 열심히 제 할 일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미루지 않고 대충 끝내려 하지 않고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 했다 이거다. 예를 들면 쓰레기 내놓으면서 쓰레기통을 깨끗이 닦아서 새로 비닐을 씌워둔다던가 하는. 자고 일어난 이불을 널브러뜨리지 않고 착착 개어 놓았다던가 하는.


덕분에 나와 남의 차를 확 긁어버렸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핸들을 절묘하게 꺾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한순간에 눈앞이 캄캄해졌다가 나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릴 만큼 안도했더니 별 것에 다 의미를 두고 싶어 지더라. 그래서 하찮은 것도 다 허투루 하지 않고 잘. 잘. 잘. 성의 있게 하자고 마음먹었다 이거다. 꼭 "앞으로 착한 사람이 될게요."라고 다짐하는 것 같지만. 그런 마음인 걸 어쩌겠는가. 그리 지내다 보면 평범한 하루 속에서도 럭키 스러운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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