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속에 찻잔이 들어 있어서 조금씩 쌓이다가 넘치면 꽃가루 알레르기가 생긴대."
어느 봄이었다. 올해에는 어디서 벚꽃을 구경할까 떠들어대는 옆에서 연신 재채기를 하던 친구가 말했다. 안 그래도 붉게 충혈된 눈을 자꾸 손으로 비비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병원에 가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다. 얼굴을 할퀴어 대는 것 같은 바람이 따뜻해진 것 말고는 몸으로 느껴지는 변화가 그다지 없던 때였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꽃 냄새가 나는데 코가 막혀 모른다는 친구를 보며 이 좋은 향기를 맡을 수가 없구나 싶었다.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어."
어떻게 하냐는 내 물음에 봄이 끝나기를 기다린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것도 빨리. 따뜻해지나 싶으면 더워져서 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듯 해 아쉬운 게 봄이라는 계절인데 친구는 그마저도 길어서 빨리 끝나면 좋겠단다.
"괜찮아. 시간이 지나면 나아져."
봄이 끝날 무렵까지 친구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시간은 정말로 많은 것을 바꾼다. 나는 일을 하다가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첫째가 아직 누워서 꼬물대기만 하던 날의 일이다. 투명한 커튼 너머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이 좋아서 창문을 활짝 열었다. 베란다에 서서 밖을 보면 멀리 공원이 있는 숲이 보이는데 거뭇한 갈색 가지들이 조금 푸릇해진 듯도 했다. 산들산들 부는 바람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말을 알아듣는지 마는지 알지도 못하는 첫째를 내려다보며 한참 봄에 대해 떠들어댔다. 너도 숨 좀 크게 쉬어 보라며 몇 번이고 큰 숨을 쉬어 봄바람을 몸속에 불어넣었다.
그날 밤이었다. 한쪽 코가 막히는가 싶더니 금세 양쪽 코가 사이좋게 못 쓰게 되었다. 흐르는 느낌도 없이 파도처럼 밀려 나온 콧물이 주르륵 흘렀다. 휴지를 돌돌 말아 코에 넣어보았지만 순식간에 축축해졌다. 무심코 눈을 비볐을 때는 들러붙어버린 손을 떼어내느라 고생을 했다. 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나는 외국에서 온 사람이라 몸속에 찻잔 따위는 들어 있지 않은 줄 알았다. 내 몸은 꽃가루를 적으로 돌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알레르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꽃가루 알레르기와도 인연이 없을 거라 믿었다.
다 틀렸다. 꽃가루 알레르기 당첨. 코는 점점 심하게 막혔고 입으로 숨 쉬는 것은 기본이요. 자다가 일어나서 몇 번이나 코를 다시 휴지로 틀어막아야 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에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데 재빨리 손을 펼쳐 코 밑에 대지 않으면 주르륵 흘러내린 콧물이 어디론가로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세수 시간 역시 배로 걸렸다. 특히 눈을 한참 씻었는데 아무리 씻어도 개운하지가 않은 통에 언제 씻기를 멈춰야 할지 가늠할 수가 없어서였다. 매일 밤 잠을 잘 때 내일은 오늘보다 휴지를 덜 쓰기를, 재채기가 조금 나기를, 눈이 덜 간지럽기를 같은 것을 빌었다.
수유를 하던 때라 약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흐르는 콧물을 되도록 살살 닦아내고 아이 얼굴에 재채기를 하지 않도록 노력할 뿐. 아. 틈 날 때마다 눈을 씻고 빨래를 밖에 널지 않기 같은 것도 했다. 어쩌고저쩌고 늘어놓았지만 결국 원한다고 증상을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니 흘러가게 놔뒀다는 소리다. 맑았다가 흐렸다가 비가 왔다가 더웠다가 다시 춥다가. 나무들이 조금 더 푸릇해지나 싶은 아주 약간의 변화와 함께 시간이 흘렀다. 언젠가부터 재채기를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밤에 잠을 자다 일어나지도 않았고 흘러넘치던 콧물과 눈물도 말라버렸는지 나오지 않았다.
그 사이 벚꽃은 하늘거리는 꽃잎을 떨어뜨리고 불긋불긋한 잎을 내밀었다. 그러고 보니 꽃이 피고 떨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 중에 하나이지. 어쩔 수 없다고 하니까 꼭 나쁜 것을 말하는 것 같지만 다른 말로 바꾸면 흘러간다와 같으려나. 나에게 봄은 괴롭지만 흘러가는 중인 것임이 확실하고 결국에는 나아질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면 그럭저럭 지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언젠가의 친구의 말은 맞았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진다는 말. 그래도 이왕이면 괴로운 시간은 빨리 지나가면 좋긴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