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상념을 잘라낼 필요가 있다.

어릴 때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방 안에 피아노와 나 둘이 남아 건반을 두드리면 온몸이 소리로 가득 찼다. 선생님은 손톱으로 건반을 치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 끝의 뭉툭한 곳, 손톱 아래쪽으로 치라고 말씀하셨다. 손가락이 작을 때에는 무거운 건반을 꾹꾹 누르는 것도 힘에 겨워 아무렇게나 일단 누르고 보면 손톱이 닿아서 딱딱 소리가 났다. 높낮이도 없이 딱딱거리는 소리가 음표에 맞게 눌러 리듬을 타는 것을 방해하는 것 같아 손을 둥그렇게 말아보았다가 있는 데로 벌려 건반 위에 누운 손가락으로 쳐 보았다가 했더랬다.


커서는 컴퓨터 키보드 두들기는 일이 많았다. 타자를 친다는 것이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것과 그렇게 다르지 않아서 비슷한 자세로 힘을 좀 빼고 두드리면 화면에 원하는 글자가 나타나는 식이다. 키보드 위에서 손을 주먹 쥐듯 조금 더 말면 손톱이 닿아서 따닥 거리는 것도 비슷하다. 버튼은 음을 내는 도구가 아니라 높낮이가 없는 소리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손톱 닿는 소리는 걸리적거린다.


길게 자라면 꼭 잘라내야 하는 것이 손톱이라 때가 되면 깎아내는 것이 귀찮아 싫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머리카락 역시 다르지 않은데 끝이 어깨나 등 어딘가 혹은 얼굴에 닿으면 걸리적거린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확 치워버리고 싶고 묶으려고 모아 잡았을 때 흘러내리면 그러잡고 있던 손을 놓아버리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내 멋대로 잘라버릴 수는 없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자를 수 있는 기술도 없거니와 그럴듯하게 보이게 할 수 있는 센스도 없기 때문이다. 내 몸 하나면 될 때야 아무 때나 미용실을 정해 찾아가면 되지만 아이가 있고 집안일을 포함한 스케줄로 하루가 빠듯할 땐 나를 위한 시간은 뒷전이다. 그러니 길러야지. 되도록 흐트러지지 않게 하나로 모아 질끈 묶고 돌돌 말아 뭉쳐 놓는다.


쓸데없는 생각은 손톱이나 머리카락처럼 자라난다. 한 가지만 떠올리던 것이 가지를 불려 점점 커다랗게 몸집을 부풀린다. 눈에 보이지도 않으면서 손톱이 건반이나 키보드에 닿아서 딱딱대는 것보다 시끄럽고 머리카락 끝이 몸에 닿는 것보다 걸리적거린다.


머리를 다 밀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할 즈음이었다.


"그 머리 좀 자르고 오지 그래."


틈만 보며 속으로 생각만 하던 것을 남편의 입을 통해 들었다. 말처럼 쉬우면 누가 안 하나 싶은 생각 잠깐. 이 참에 미용실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화르륵 치솟았다. 이제껏 망설이던 것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몇 시간 뒤 어느 미용실의 의자에 앉아 스타일리스트와 상담을 했다.


"짧게. 최대한 짧게요. 손질도 적게 할수록 좋고요. 귀찮은 게 너무 싫어서요."


어깨 아래로 반뼘쯤 내려오는 머리를 보며 스타일리스트는 정말 짧게 잘라도 되냐고 몇 번이나 물었다. 그때마다 나는 웃었는데 자기 머리카락도 아니면서 아까워하는 스타일리스트를 보니 머릿속을 꽉 채우던 쓸데없는 생각들이 다 별 볼일 없이 느껴졌다. 하려면 내가 할 고민을 왜 쓸데없이 하고 있담. 어쩌면 내가 하고 있는 생각들도 사실 필요 없는데 껴안고 있는 것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샥샥 가위질이 계속될 때마다 가볍게 바람이 불면서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흩어져갔다. 머리를 바닥으로 잡아 내리던 머리카락들이 짧아지면서 무거웠던 목도 어깨도 가벼워졌다. 가위질하느라 젖어 있던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리고 보니 고개가 이리저리 돌아가도 제 자리에서 붕붕 뜰뿐 걸리적거리는 것 한 올 없었다. 삐죽빼죽 자란 잡초처럼 뻗쳐 나가지도 않은 것이 깔끔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후련했다.


가끔은 길어진 손톱을 딱딱 소리 내가며 손톱깎기로 짧게 깎아내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자르고, 가지가 무성하게 흐드러진 생각을 쳐낼 필요가 있다. 때(時)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때(時)를 만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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