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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nautes 프리나우트 Aug 21. 2024

공벌레가 데구루루

 형은 곤충을 좋아한다. 정원에 나가서 놀 때면 쪼그리고 앉아 풀을 뒤적거릴 때가 많다. 뭘 하나 궁금해서 똑같이 풀을 잡고 뒤적거려 봤지만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옆에 찰싹 붙어서 들여다봐도 알 수가 없어서 물어보기로 했다. "뭐 해?" 눈앞에 형의 주먹이 날아왔다. 두 눈을 꼭 감았다. "이거 봐봐." 살짝 뜬 눈에 쫙 펴진 형의 손바닥이 보였다. 거뭇하고 반짝이는 것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언젠가 만화에서 본 커다란 괴물이 줄어든 것 같은 모습이었다. "공벌레야." 손가락 끝으로 톡 건드리니 공벌레가 동그랗게 말렸다. 이름 그대로 공이 되었다. 신기했다. "만져봐도 돼?" 손바닥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아직 움직이고 있던 공벌레가 내 손가락 끝에 닿더니 깜짝 놀랐는지 몸을 말았다. 손 끝에 닿는 느낌이 단단해서 꼭 장군들이 입는 갑주를 만지는 것 같았다. 그 사이 말려있던 다른 공벌레가 몸을 다시 펴더니 내 손위로 슬금슬금 기어 왔다. "아악." 간질간질한 느낌이 이상해서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그 바람에 손에 붙어 있던 공벌레가 뚝 떨어졌다. 동그랗게 말려 굴러가는 공벌레를 따라 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어떻게 해." "괜찮아. 얘네는 단단해서 이런 걸로 안 다쳐." 형이 씩 웃었다. 나도 마주 보고 웃었다. 바닥을 구르던 공벌레는 그 사이 다시 몸을 펴고 기어가기 시작했다.





 신기했다. 정원에 깔려 있는 돌멩이를 들추면, 풀이 잔뜩 자란 곳의 어둑한 밑부분을 살펴보면, 어김없이 공벌레가 있었다. 다 똑같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새카만 것은 수컷이고 조금 밝은 색에 점박이 같은 무늬가 있는 것은 암컷이라고 했다. 아주아주 작고 하얀 방금 알을 깨고 나온 것 같은 아기 공벌레를 찾을 때도 있었다. 동그랗게 말린 것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좋았다. "손에 너무 힘 꽉 주면 안 돼. 공벌레 다쳐." 가끔 내 손에 공벌레가 있는 것을 보면 형이나 엄마가 시끄럽게 뭐라고 했다. 알아서 잘하는데 그것도 모르나 보다.





 그날은 엄마와 쌍둥이 동생과 정원에서 놀았다. 뭐가 있는지 구석구석을 뒤지기도 하고 여기저기 피어있는 꽃을 구경하기도 했다. 앉아서 풀을 뽑는 할머니를 구경하다가 공벌레가 눈에 띄었다. 우리는 서로 자기가 먼저 발견했다고 소리를 질러가며 공처럼 만들어 굴리며 놀았다. 그러다가 탐험 놀이를 하기로 했다. 우리는 가끔 집을 빙글빙글 돌며 놀았는데 그것을 탐험 놀이라고 불렀다. 동생은 손을 탁탁 털고 일어났다. 공벌레는 바닥에 놔둔 채였다. 나는 그대로 두고 가기가 아쉬워서 한 마리를 손에 쥐고 걸었다. 집 뒤쪽을 걸을 때였다. 할머니가 꽃에 물을 준다고 받아둔 물통 근처를 지나면서 재미있는 생각이 났다. 들고 있던 공벌레를 물속에 살그머니 내려놓았다. "안돼." 엄마가 손을 휘저었다. 아마 잡으려고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작고 동그란 공벌레는 천천히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몸이 단단하니까 물속에서도 잘 걸어 다니겠지. 곧 몸을 펴고 걸어 다닐 것을 생각하며 가라앉은 공벌레를 쳐다봤다. 


 엄마는 화장실에 가고 싶은 사람 같았다. 자꾸 일어나서 두리번거리고 물속을 들여다보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뭐가 생각난 것처럼 할머니가 굴러다니는 물건 놓아둔 곳으로 가더니 작은 잠자리채를 가지고 왔다. 옛날에 곤충채집을 한다고 휘두르고 다니던 것이었다. 엄마는 잠자리채를 물속에 넣어 공벌레를 건져 올렸다. "공벌레는 물속에 넣으면 안 돼. 숨을 못 쉬어." 아직 물이 뚝뚝 떨어지는 잠자리채를 햇빛이 환한 곳으로 들고 가서 툭 털어냈다. 안에 있던 공벌레가 데구루루 굴러 나왔다. "안 움직이면 어쩌지." 엄마와 나와 동생은 둥그렇게 서서 머리를 맞대고 쭈그려 앉았다. 물속에서 숨을 못 쉰다는 말에 걱정이 되었다. 한참이 지났다. 안 움직일 줄 알았던 공벌레가 몸을 쫙 폈다. 그러더니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기어가기 시작했다. "와!" 우리는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아 다행이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것 같았다. 박수소리가 제일 컸다. 


 공벌레와 노는 것은 여전히 재미있다. 나뭇잎이 겹겹이 쌓인 곳이나 어둑어둑한 흙가에서 공벌레를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꼭 손으로 톡 건드려서 데구루루 굴린다. 가끔 뒤집어져서 발을 버둥거리는 공벌레를 보면 뒤집어주기도 한다. 어쩌다가 허물을 벗고 나온 하얀 껍데기를 보면 보석을 찾은 것 같고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물속에 넣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엄마한테는 비밀인데 우리는 친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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