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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nautes 프리나우트 Aug 19. 2024

영어 스펠 'M'은 잠자리의 'M'

* 잠자리의 허물을 벗고 나오는 순간의 사진이 있습니다.  곤충사진이 싫으신 분은 흐린 눈으로 봐주세요.

 


 학교에서 배운 영어 스펠 중에서 가장 자신 있는 것은 'M'이다. 잠자리(トンボ : 톤보)를 영어로 썼을 때 들어있는 글자이기 때문이다. 그럼 왜 'M'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가 하면. 일본어에서  'ン'을 영어로 쓰면 'N'을 쓰기도 하고,  'M'을 쓰기도 하는데 잠자리의 경우에는 'M'을 쓴다는 점이 인상적이어서이다. (사실 좋아했던 곤충방송에서 들었다.) 


 잠자리는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아한다. 옛날 장군들도 나처럼 잠자리를 좋아했다고 한다. 후퇴하지 않는다고 해서 승리의 벌레(勝ち虫)라고 불렀단다. 언젠가 싸울 때 머리에 쓰는 투구에 잠자리가 붙어 있는 걸 보고 신기했던 적이 있었다. 다 이겨버릴 거라는 마음으로 붙였던가보다. 그러고 보니 잠자리가 뒤로 나는 것은 본 적이 없다. 재미있는 사실 중 하나로 기억해 둬야겠다. 


 내가 잠자리. 아니 곤충채집을 하러 처음 간 것은 아직 유치원 여름방학 때였다. 매일매일 더웠다. 에어컨을 틀고 아무리 온도를 내려도 땀이 났다. 아침을 먹고 할아버지가 계신 일층에 내려갔을 때 곤충채집에 가자는 이야기를 들었다. 며칠 전 할아버지는 내 몸보다 커다란 잠자리채를 사 오셨다. 그래서 곤충채집 하러 갈 날만 기다리던 중이었다. 데리고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하셨다. 신이 났다. 엄마를 부르고 동생에게 자랑을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엄마, 동생과 나까지 탄 차는 빈자리가 없이 꽉 찼다. 트렁크에 잠자리채와 곤충 채집통을 잘 넣고 출발했다. 점심으로 근처 슈퍼에 들러 오니기리를 샀다. 논이 보이기 시작하고 나무들의 초록색이 점점 넓게 퍼지면서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길쭉한 잡초 같은 것이 빽빽한 논 위에 잠자리들이 잔뜩 날아다녔다. 하늘은 매미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풀 숲을 조금만 휘저으면 뭔가가 튀고 나느라 바스락댔다. 우리는 줄지어서 논 옆으로 난 길을 걸었다. 도중에 할아버지가 날 불렀다. 그리고 삐죽 솟은 풀 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휙. 순식간에 들고 있던 잠자리채를 휘둘렀다. 얼른 달려가서 바닥에 납작하게 붙어 있는 투명한 그물 속을 살폈다. 꼬리가 빨간 잠자리 한 마리가 있었다. "잡았다!" 나도 모르게 양손을 번쩍 들고 펄쩍펄쩍 뛰었다. 할아버지는 고추잠자리(赤トンボ : 아까톤보)라고 알려주시며 투명한 날개를 모아 손가락 사이에 끼워주셨다. 그때였다. 잠자리가 좋아하는 곤충 중 가장 윗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은.


 얼마 전 캠프를 갔을 때였다. 그때 우리는 정말 운이 좋았다. 산을 끼고 언덕도 있고, 넓은 풀밭에 연못이며 개울도 있는 곳을 전부 빌린 듯이 쓸 수 있었다. 행사가 취소되었다고 했던가. 우리 집 텐트 말고 딱 한 텐트가 있었다. 거기서 난 최고로 흥분되는 발견을 했다. 손바닥만 한 장수잠자리(オニヤンマ : 오니얀마)가 허물을 벗고 나오는 순간을 것이다. 



검은 몸에 선명한 노란줄무늬. 금방 허물을 벗고 나온 장수잠자리.



 날아다니는 모습만 봐도 흥분될 텐데. 허물을 벗고 나오는 순간까지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너무 흥분돼서 소리를 꽥꽥 질러대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았다. 깜짝 놀라서 허물에서 제대로 나오지도 못하고 떨어질까 봐서였다.




 

 잠자리의 허물을 본 것은 두 번째였다. 캠프를 가기 전에 놀러 갔던 공원에서도 장수잠자리의 허물보다 작은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연못이 있는 공원으로 오징어채를 가지고 가서 가재(ザリガニ : 자리가니)를 잡으려다 발견했다. 그때까지 곤충의 허물이라고는 매미나 사마귀의 것밖에 본 적이 없었다.



수컷은 푸른빛을 띄고 암컷은 노란빛을 띈다는 밀잠자리(しおからトンボ : 시오카라톤보) 의 허물이었을까?


  

 캠프장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잠자리들이 있었다. 쌩쌩 날아다니는 왕잠자리(ギンヤンマ : 깅얀마) 도 있었는데 잡지 못해서 아쉬웠다. 얼마나 빠르고 힘도 좋은지. 계속 날기만 하고 어디 앉지를 않아서 잡을 수가 없었다. 가슴과 배 근처가 하늘색으로 빛났으니 아마 내가 본 것은 왕잠자리 수컷이었을 것이다. 대신 호버링하며 제자리에서 벌레라도 노리는지 멈춰서 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어릴 때는 물속에 살면서 나뭇잎 같은 모습을 하고 지내는데 어떻게 이렇게 멋지게 변신할 수 있는 걸까. 오래전 수족관에서 강가의 생물 중에 괴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곤충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무슨 곤충이길래 이렇게 신기하고 멋지게 생겼나 하고 살펴보니 잠자리의 유충(ヤゴ : 야고)였다. 거기다 물속 생물은 뭐든지 먹고, 잠자리가 돼서는 육식을 한다는 사실이 정말 재미있다.

 

 올해 난 가지 위에 앉은 잠자리를 맨손으로 잡는 데 성공했다. 다음에는 기다랗고 그물이 커다란 잠자리채를 가지고 왕잠자리도 잡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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