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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nautes 프리나우트 May 24. 2024

매미

아이들의 여름은 곤충천국

 * 언젠가 여름의 기억.

 

 뜨겁다. 햇빛이 옷 밖으로 드러난 살을 콕콕 찔러댄다. 비가 내린 기억이 별로 없는데 벌써 장마가 끝났나 깜짝 놀라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장마라고 했지. 수국이 한창 자글자글한 꽃 잎을 둥그렇게 피어내고 있으니 장마가 끝나려면 멀었다. 아. 조금 더 비오는 날을 즐길 수 있겠어. 참 다행이야. 


 “씨-씨-씨-씨-”


 지붕이 뚫릴 것처럼 비가 내린 다음 날. 학교와 유치원에 가는 아이들을 배웅하러 현관문을 나서는데 온 사방이 매미 소리로 가득하다. 시끄럽게 쏟아지던 빗소리에 깜짝 놀라 땅속에서 일제히 튀어나온 모양이다. 매미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반가운 소리에 신이 나서 몸이 들썩들썩 거린다. 벌레가 좋아서 찌는듯한 더위마저 좋다는 첫째가 주말에 곤충채집을 가자며 신신당부하고 학교에 갔다. 덩달아 오빠에게 지기 싫은 둘째도 자기가 더 많이 잡겠다고 난리다.


 배웅하고 나서 집에 가는 길에 있는 ‘녹지(緑地)’라 불리는 자그마한 동산 같은 곳에 들렀다. 매미가 나왔나 살펴보러 간 것이었다. 장마가 끝날 무렵 내린 비로 겨우내 단단해졌던 땅이 부드러워지면 잠을 자던 매미가 구멍을 파고 땅 위로 나온다. 구멍은 동그란 것이 우산 끝으로 콕콕 찍어낸 것 처럼 생겼다. 음.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새파란 잎을 늘어뜨리고 있는 나무 위 어딘가에서 그런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 매미가 울어댄다. 저 매미는 어디서 나왔을까.


 첫째가 유치원에 들어가서 맞이하는 첫번째 여름. 둘째가 아직 갓난아기였던 그때, 나는 매미가 허물을 벗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첫째에게 보여주고 싶어 매일 아침 일찍 정원을 샅샅이 뒤지며 허물 벗을 준비를 하는 매미를 찾았다. 매일같이 새 매미 허물이 붙어 있던 풀 근처를 살필 때였다. 햇빛에 반짝이는 둥그런 몸을 한 요상한 것이 바닥을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매미!”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것 같은 우렁찬 소리를 내질렀다. 재빨리 둘째와 함께 1층 거실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놀고 있는 첫째에게 달려들어 갔다.


 “매미가 나왔어! 얼른 와 봐!”


 이번에는 할아버지까지 합세해서 첫째와 달려 나와 관찰을 시작했다. 허물을 벗기 전의 매미는 꼭 우주에서 날아온 외계인 같았다. 동글동글한 몸통과 땡그란 눈이 귀엽다. 물론, 이건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열심히 땅을 파던 짤막한 다리를 열심히 놀려 높은 곳을 찾았다. 보고 있자니 힘내라는 말이 절로 나와 첫째와 힘내라 손뼉까지 치며 외쳐줬다. 아직 나무는 매미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할아버지는 1층 베란다에서 잘 보이는 나무에 매미를 올려주었다. 


 새하얀 매미가 허물을 벗고 나오기까지의 몇 시간 동안. 첫째보다 흥분했던 나는 엉덩이가 들썩거려 바깥을 수도 없이 들락거리며 매미를 들여다보았다. 홀로 자리를 잡고 날개 달린 몸으로 변신하는 녀석이 너무나 기특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매미가 허물을 벗고 나온다는 사실을 안 것은 서른이 다 될 무렵 일본에서의 일이다. 회사 동료와 밥을 먹고 오던 길이었다. 갑자기 멈춰서 길가의 풀숲을 뒤지던 그녀는 뜬금없이 나보고 손바닥을 펼치라고 했다. 이내 올려진 것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투명한 갈색 플라스틱 같은 것이었다. 위쪽의 갈라진 곳으로 허연 실 같은 것이 삐져나와 있었다. 팝콘에 붙어 있는 옥수수 껍질 같은 색의 그것이 매미 허물이라고 했다. 그때 이후로 여름만 되면 곳곳에서 매미 허물이 눈에 들어온다.


 더 웃기는 건 매미 종류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도 역시 일본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첫째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와 곤충채집을 간 적이 있었다. 매미를 찾으러 들어간 숲에서는 여러 가지 소리가 화음처럼 어우러져 들려왔다. ‘지리지리지리지리’ 우는 유지매미(アブラゼミ : 아부라제미), ‘치---’ 하고 바늘처럼 찌르듯이 우는 씽씽매미(ニイニイゼミ : 니이니이제미), ‘맴맴맴맴’ 귀에 익은 울음소리를 내는 참매미(ミンミンゼミ : 밍밍제미), 해 질 녘에 자주 듣던 ‘카나카나’ 하는 소리를 내는 쓰르라미(ひぐらし : 히구라시). 숲에서 발견한 매미가 이렇게나 많았다. 첫째에게 하나하나 보여주며 알려주시는 할아버지 덕에 나까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린 시절 내가 알던 매미 소리는 ‘맴맴’ 뿐이었다. 산속에 살던 외할머니집에서도 우리 집 뒷산에서도 매미는 늘 ‘맴맴’ 하고 울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 아파트 뒤에 있던 산이 깎이고 도로가 들어서고 학교가 생겼다. 조금 남은 산에서는 여름이 되자 ‘치---’ 하는 높은음의 소리가 났다. 하늘을 찔러대듯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공해로 매미가 오염이 돼서 ‘맴맴’ 하고 울지 않게 되었다고 제멋대로 생각했었다. 벌레 소리도 바뀔 만큼 환경이 오염되어 어떻게 하냐고 걱정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제는 안다. 그것은 숲이 바뀌며 사는 매미의 종류가 달라졌던 것이 원인이라는 것을. 여름내 우는 매미들의 소리와 함께 계절이 흐른다.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면 ‘치---’ 하고 우는 씽씽매미(ニイニイゼミ : 니이니이제미) 가 나온다. 자그마한 녀석은 나무에 달라붙어 있으면 어디 붙어 있는지 헷갈리는 숨바꼭질의 대가이다. 운이 좋으면 ‘샹샹샹샹’ 하고 잔잔하게 우는 말매미(クマゼミ : 쿠마제미) 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지리지리지리지리’ 우는 유지매미(アブラゼミ : 아부라제미) 와 ‘맴맴맴맴’ 우는 참매미(ミンミンゼミ : 밍밍제미) 가 나올 때면 여름은 피크에 달한다. 밤낮으로 더운 날이 계속되며 열대야에 허덕이느라 에어컨을 끌 수가 없다. 이때쯤 되면 애매미(つくつくぼうし : 츠쿠츠쿠보우시) 가 기다려진다. ‘츠쿠츠쿠보우시-’ 하는 애매미의 울음은 여름이 끝나간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아. 해 질 녘이면 들려오는 ‘카나카나’ 우는 쓰르라미(ひぐらし : 히구라시) 도 빼 먹을 순 없지.


 여름내 바깥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귀 기울여 보는 것은 얼마나 재미있는지.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늘어지는 주말 찜통 같은 날씨에도 아이들은 곤충채집을 한다고 아빠를 졸라 공원으로 나갔다. 발그레한 얼굴로 땀에 절어 딱 붙은 머리를 하고도 깔깔대는 청량한 웃음과 함께 돌아왔다. 


 “엄마! 유지매미(アブラゼミ : 아부라제미) 가 나왔어!” 


 잘 다녀왔냐며 계단을 한달음에 뛰어 내려가 마중하는 내게 첫째가 흥분해서 떠들어댄다.





 “엄마! 이거 봐”


 선둥이의 시커먼 손에 씽씽매미(ニイニイゼミ : 니이니이제미) 의 작은 허물이 들려있다. 흙이 묻어 지저분한 작은 허물을 소중하게 들고 있는 야무진 손이 앙증맞다. 





 여태 ‘맴맴’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보니 여름은 한참 남은 것 같다. 장마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37도에 육박하는 뜨거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게 여름이지. 아이들의 청량한 웃음소리와 바깥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매일의 변화를 즐겨야겠다. 녹아내리는 얼음처럼 흘러내리는 나의 땀도 병아리 눈물만큼으로 줄어들기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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