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번쩍 뜨였다. 누가 폭죽을 귓구멍 속에 잔뜩 욱여넣고 불을 질러 터뜨린 것 같았다. 귓가가 얼얼했다. 잠에 취한 머리는 손을 올려 귀가 제대로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하곤 몽롱함 속으로 가라앉았다. 불이 꺼지듯 사방이 온통 새카매지려는 찰나 빛이 눈앞을 어른거렸다. 리드미컬하게 번쩍대는 붉은 빛은 소리까지 달고 있었다. 멀어지던 정신이 다시 돌아오고 움찔대던 눈꺼풀이 위로 올라갔다. 커튼을 치지 않은 창문을 통과한 빛은 무례하게 방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계세요? 경찰입니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별해 내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머리가 몸이 움직이는 것을 방해했다. 눈만 겨우 굴려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경찰이라고 한 사람은 방정맞은 박자로 문을 두드려 댔다. 한순간 쾅쾅대는 소리가 멎었다. 천천히 문손잡이가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문을 언제 잠그고 살았는지 까마득했다.
“아이고 학생. 여자 혼자 살면서 이렇게 문도 안 잠그고 있으면 어떻게 해.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옆 건물에서 편의점을 하는 집주인 아줌마였다. 사방에 굴러다니는 맥주병을 보고 혀를 쯧쯧 찬다. 빌려줘 놓고 제집처럼 성큼성큼 들어와서 남의 몸을 흔들어 대는 꼴이 예의라고는 개에게나 줘버린 모양이다.
“저기 미안한데. 좀 일어나봐. 지금 밑에 큰일 났어. 105호. 거기 살던 학생이랑 친했지?”
새하얀 피부에 앵두 같은 입술을 가진 곱상한 녀석의 얼굴이 떠올랐다. 대낮부터 맥주병이 한가득 든 비닐봉지를 들고 놀러 오던 그. 우진. 우리는 자주 함께 맥주를 마셨다. 어제 우진은 고향으로 내려갈 거라고 했다. 문득 현관을 나서던 그의 인사말이 떠올랐다.
“너는 꼭 살아.”
어디서 구했는지 한번 마셔보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던 맥주를 사 와서 평소보다 많이 마셨다. 해롱대는 머리가 우진이 하는 말을 헛소리로 치부하고 한 귀로 내보냈다. 물먹은 솜 같은 몸을 겨우 일으켜 확성기 같은 목소리로 떠드는 주인아줌마를 쳐다봤다. 뒤로 보이는 현관에 경찰이 한 명 서 있었다. 경찰을 따라 우진의 집으로 갔다. 가린다고 가렸지만 여기저기 튀어 있는 붉은 점들이 그의 마지막을 알려 주었다. 그는 저 점보다 붉은 입술로 언제나처럼 웃었을까.
반년쯤 전이었다. 전국적으로 방송되는 텔레비전 뉴스에서 한국에 운석이 떨어질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인 천문학 박사가 직접 보내왔다는 편지가 소개됐다. 하필 운석이 떨어지는 곳이 이 동네였다. 도심과 떨어진 넓은 숲속 동네여서 2차 피해가 적을 거라고 했다. 사는 사람이 적으므로 대피하는 것도 상대적으로 쉬울 거라며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소식이 알려지고 한 달도 되지 않아 천문학 박사는 직접 동네를 찾아왔다. 그는 알아먹지도 못하는 영어로 운석이 언제쯤 떨어지며 어떤 피해를 보게 될 것인지 설명해 주었다. 파란 눈을 가진 별 전문가는 미국행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어떤 정신 나간 대학생의 수제 총을 맞고 저세상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사건은 마을 이장이 준비한 파티에서 일어났다. 영화 같은 운석 충돌 동영상을 보여주던 중에 학생이 쏜 총에 맞았다. 화면 속 세상이 찌그러지고 부서지는 동안 그의 몸도 종말을 맞이했다.
한동안 뉴스는 수제 총을 맞고 죽은 천문학자의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진짜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머리에 나사가 빠져버린 기자가 수제 총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상세히 쓴 기사를 내보낸 탓이다. 기사를 본 사람들의 강렬한 비판으로 금세 삭제되었지만 이미 인터넷상에 퍼질 대로 퍼졌다. 덕분에 전국에서 수제 총을 만들어 쏴대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 동네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살 의지를 잃은 사람들이 수제 총을 만들어 자살했다. 심지어는 가족 모두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석 달쯤 지나자 동네는 한 집 건너 빈집이 되었다.
우리 부모님은 버스가 하루에 2번밖에 들어가지 않는 시골에 사는 탓에 가끔 하는 전화통화 외에는 내 소식을 몰랐다. 전화 빈도가 한 달에 한 번에서 일 년에 한 번 정도로 바뀌었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임을 당연한 듯 여기는 부모님은 그다지 자식 걱정에 목을 매지 않았다. 물론 그런 부모 밑에서 큰 나도 마찬가지였다. 집까지 멀기도 멀고 가기 귀찮기도 한 나는 집으로 가는 것을 포기했다. 무슨 일이야 있겠나 싶은 마음도 한몫했다.
우진은 내가 떠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남겠다고 했다. 나는 그가 날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젠가 우리 집에서 둘이 술이 떡이 됐던 날 자는 나를 덮치려 했던 그의 앵두 같은 입술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술로 범벅이 된 속이 올라오는 바람에 우진이 화장실로 달려가지 않았다면 우린 그날 하나가 되지 않았을까.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왜 죽어버렸을까. 나는 아직 그의 속마음을 알지도 못하는데. 그는 한 번도 자신의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매일 붙어 있던 것도 아니지만 우진이 없는 날 들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의 허여멀건 얼굴이 씩 웃으며 현관문을 열어젖힐 것 같아서 하루에도 몇 번씩 그쪽을 바라보았다.
날은 잘도 흘렀다. 이제 오늘. 그 빌어먹을 운석이 떨어진다. 사방에서 사이렌이 울리며 곧 위험이 닥칠 것을 경고한다. 그간 동네를 떠나라는 몇 번의 권고에도 나는 귀를 막고 못 들은 척했다. 문을 꼭 잠가 놓고 집에만 있는 날이 늘어나니 찾아오는 사람도 뜸해졌다. 여전히 가만히 누워있으면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린다. 다른 방법도 많을 텐데 하필 총이라니. 낭만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운석을 내 온몸으로 받아내리라 마음먹었다. 우진이 병나발을 불었던 맥주병을 오른쪽 팔로 고이 껴안고 누웠다. 그의 체취가 느껴질까 봐 병을 들고 킁킁거려봤지만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간접 키스라도 해볼까 봐 병나발을 불었다. 두꺼운 유리병의 감촉이 지랄맞다.
바람에 날려오는 총소리와 함께 해가 지고 죽음의 순간을 상상했다. 아플까? 금방 끝날까? 어디서 새소리가 들려왔다. 머릿속이 윙윙 울렸다. 종말의 시작이었다. 눈을 꼭 감았다. 머릿속을 울리던 것은 점차 리듬을 가지게 됐다.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머리맡에 놓여 있던 전화기가 울고 있었다. 들이치는 햇살에 눈이 부셨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엄마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시끄럽게 터져 나왔다. 경운기 타면서 전화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덜덜대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야이. 느그는 뭐시다냐. 운석인가 뭔가 하는거 말이랑. 그거 깨져서 날라갔노. 느그는 괜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