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고동

“그거 봤어요? 요즘 짧은 드라마가 아주 난리예요.”

“아유. 그러니까. 나 어제 애들 재우고 그거 보다가 밤을 다 샜다니까? 갑자기 기상 알람이 울려서 얼마나 깜짝 놀랐다고.”

눈앞에서 쉼 없이 떠드는 사람들을 보던 세령은 반도 채 먹지 못한 점심 세트를 두고 일어섰다. 점차 커지는 목소리는 줄어들 줄 몰랐다. 시선이 이쪽으로 향하는 일도 없었다.

“급한 일이 있었는데 깜빡하고 나왔네. 저 먼저 가볼게요.”

“어. 그래.”

“이따 봐.”

한 입도 마시지 않은 수프에서는 아직도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하아….”

계산하고 가게를 나서 내리쬐는 햇살만큼 뜨거운 숨을 내쉬고 나니 그제야 살 것 같았다. 세령은 그늘 하나 없는 아스팔트 길을 터덜터덜 걸었다. 신발 밑창이 뜨거워 걷기가 힘들어질 무렵 빈손인 것을 깨달았다. 매번 거절하던 점심 모임을 허락한 이유. 그게 없었다.

‘유환이 게임 해요? 우리 게임기를 새로 샀거든. 그래서 혹시 필요하면 줄까 하고. 몇 년 전껀데 아직 잘 돌아가.’

안 그래도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부쩍 게임기를 사달라고 조르는 아들로 곤란하던 참이었다. 종이가방에 들어 있던 게임기와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네모난 소프트들이 눈에 어른거렸다. 좋아할 아이의 모습과 게임을 주고 얻어낼 달콤한 혼자의 시간도 떠올랐다. 연락하려고 핸드폰을 켜자마자 메시지 알림창에 뜬 링크가 보였다.

‘그렇게 재미있어요?’

‘어. 유환이 엄마도 한번 봐봐. 내가 링크 보내놓을게.’

아직 유환이 올 때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세령은 카페에 들어가 시원한 커피를 시켜 놓고 링크를 눌렀다. 주변의 소음이 점점 작아지더니 어느새 조용해졌다. 세령의 세상은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배우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기울인 컵을 타고 입에 들어온 물이 밍밍한 커피 맛이 되고 나서야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유환아!”

아이가 돌아오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세령은 벌떡 일어나 가방을 챙겨 들고 집을 향해 달렸다.

“엄마! 어디 갔다 와!”

현관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아파트가 떠나가라 울던 유환이 세령을 보고 달려와 안겼다.

“미안. 미안. 우리 유환이 오래 기다렸어? 엄마가 친구들이랑 좀 만나고 오느라고 늦었어.”

유환을 안고 달래는 세령의 눈이 손목에 걸린 작은 손가방 속 핸드폰에 머물렀다. 작은 화면에서는 좀 전에 봤던 드라마가 흐르고 있었다. 그날 밤. 세령은 가족들이 모두 잠들자마자 몰래 빠져나와 창고로 쓰는 방으로 향했다. 그녀의 손에는 핸드폰이 꼭 쥐어져 있었다.

“엄마. 나 물통.”

“아빠한테 가서 달라고 해. 왜 이 밤에 물통이야.”

“나 학교 가야 해.”

아이가 아빠에게 가서 물통을 달라고 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유환을 재운 것이 몇 분 전이었다.

“꿈 한번 현실적이네.”

세령은 휴대폰 화면에 눈을 고정하고 중얼거렸다.

“유환이 엄마. 여기서 뭐 해. 애 학교 가는 거 안 도와줘?”

“당신 있잖아. 가끔은 아빠가 좀 도와주면 되지.”

남편 목소리가 들리길래 대충 대답해 줬다.

“원래 꿈에서 말 거는 거 대답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어깨를 잡고 부드럽게 흔들던 손길이 우악스럽게 변했지만 세령의 고개를 돌리지는 못했다. 휴대폰 속 화면은 계속해서 바뀌었고 끝이 없었으며 마음에 드는 것은 반드시 거기 있었다. 눈은 손바닥보다 작은 네모 속을 헤엄치느라 바빴다. 귀로 들어온 소리는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손가락은 연신 휴대폰 위를 미끄러지며 새로운 것을 찾아냈다.


“선생님. 애 엄마는 좀 진전이 있습니까.”

“글쎄요. 여전히 휴대폰 이외의 것에 대한 반응이 없습니다.”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를 사이에 두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사내와 키가 말쑥하게 큰 젊은 청년이 문에 뚫린 작은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 여자가 핸드폰을 꼭 쥐고 있는 것이 보였다. 유환은 갑자기 오래전 놀이동산에 가서 먹었던 작은 소라 고동이 떠올랐다. 쪽쪽 빨아 먹으면 그렇게 맛있어서 손에 묻은 국물까지 핥아 먹곤 했었다. 이불을 돌돌 말고 옆으로 누워있는 모습이 똑 닮았다.

“꼭. 소라고동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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