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워워워! 어딜 건드리시나. 남편은 내가 얘기 좀 하자고 잡으니 벌레 보듯 얼굴에 있는 인상을 다 쓰며 내 손을 뿌리치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뭐 예상했던 행동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바람은 자기가 피워놓고 당당하게 이혼하자고 이혼서류를 내민 남편에게 내가 이혼은 안 하겠다고 분명히 말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 기가 찼는지 며칠 외박하다 집에 들어오더니 이 집은 자기 집이라며 나보고 나가라고 그런다. 그는 내 몸에 손을 안 댄다. 손을 대면 당장 자기 몸이 썩어 없어질 것 같이 진저리를 친다. 대신 말로 나를 때린다. 마치 나 같은 사람은 살 자격이 없다는 듯, 동물보다 못한 듯, 해충보다 못한 듯, 아니 낡은 가죽소파에 살포시 앉아있는 먼지보다 못한 듯 나를 쳐다보며 말로 짓누른다. 내 주제를 파악하라고. 나도 모르는 내 주제를 그는 파악하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이혼을 안 하는 이유는 아직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 그에게 자유를 줄 때가 아니다. 당분간은 그의 바퀴벌레가 될 것이다. 그 사람이 그토록 싫어하는 해충이 되어 그를 갉아먹을 것이다. 그가 티브이를 볼 때, 밥을 먹을 때, 잠을 잘 때 불쑥불쑥 그의 옆으로 기어나가 소스라치게 놀라게 해 줄 것이다. 그가 제일 싫어하는 존재가 벌레라면 기꺼이 벌레가 될 것이다. 그는 벌레를 무서워한다. 자기보다 100배는 존재감 없는 벌레도 무서워서 잡질 못한다. 그렇게 한심한 사람한테 이혼당하느니 내가 벌레가 되는 게 낫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의 말이 무기가 되기 시작한 건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때쯤일 것이다. 아이가 조금씩 공부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할 무렵 남편은 아들은 엄마 머리를 닮는다더니 맞는 말인가 보네. 사교육의 천국인 대한민국에서 애 교육 하나 제대로 못 시키느냐. 돈 벌어다 주는 거 다 어디 쓰느냐. 한마디 한마디가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아이의 귀를 막을 수도 없고 나는 부랴부랴 기숙사가 있는 중학교를 알아봐서 도망가다시피 입학시킨다. 아이가 없는 집에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의 말 폭력은 나 혼자 감당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 사업이 잘되어 경제적으로 잘 풀리니 그는 나를 점점 무시했고 돌을 던진 냇물의 물결이 퍼지듯 그의 말은 옆으로 옆으로 퍼져 나간다. 나한테서 나의 엄마로 나의 아빠로 나의 친구로 심지어 자기 피가 섞인 아들한테로. 그 물결은 왜 자신의 엄마나 아빠로는 퍼지지 않는 걸까. 그 말은 얼어붙은 날카로운 고드름이 되어 듣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찌르고 또 찌른다.
남편은 그의 후배나 동료들한테 수시로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이다. 너 그렇게 살면 안 돼. 나만 믿고 따라 해 봐. 인생이 활짝 필 거다. 그러고선 자신이 다니는 골프클럽에 데리고 다니며 개똥철학을 주입시킨다. 애인도 그 골프클럽에 다니는 사업하는 여자라지. 지금 생각하면 나는 그의 가스라이팅이 안 통하는 철통 같은 여자였다. 그는 그런 나에게 반해서 쓸개콩팥까지 다 내줄 것처럼 달라붙어 사랑 구애를 했다. 그 당시는 그의 말솜씨와 잔머리가 젊은 패기로 비쳤고 결국 나와 그는 결혼에 골인하고 만다. 불쌍한 남자. 그는 지금까지도 가스라이팅이 전혀 먹히지 않는 여자와 함께 살며 말을 하다 하다 안돼 윽박지르고 무시하고 쌍욕을 한다.
나의 직업은 작가다. 그동안 단편소설집 한 권과 에세이 한 권을 출간했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을 남편이 아마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가장 한심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부류가 글 쓰는 사람들이다. 방구석에 처박혀서 글이나 쓰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말로 교화시키려 한다. 방구석에서 나오라고. 인생을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날아다니는 말을 스스로 붙들지도 못하는 불쌍한 사람이다. 그래도 그 개똥철학이 사업수완에는 도움이 되었는지 아직은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으니 저리 떵떵거리는 거겠지. 지금 쓰고 있는 글이 완성되면 그땐 그를 떠나 날개 달린 바퀴벌레가 되리라. 지금이라도 떠날 수 있지만 쉽사리 그에게 자유를 허락하고 싶지 않다. 그의 말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피를 흘리지 않으려고 나를 지키고자 나는 책을 방패로 삼고 팬을 무기로 들었다. 그렇다고 지나온 세월 동안 받아온 정신적인 고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잊을만하면 자존감은 눈물과 함께 아래로 깊숙이 흘러내려 다시 일어서기가 힘들 지경이 된다. 그럴 때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커피를 내릴 힘조차 없어진다. 실제로 하루 종일 누워 있었던 적도 있고 꼭 움직여야 할 때는 계속 집안을 기어 다닌 적도 있다. 그리고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글을 썼다. 캐릭터를 만들고 상상 속에서 그 캐릭터를 죽였다 살렸다를 반복했다.
글을 쓰는 동안 그가 냄새나는 입에서 독소를 내뿜을 때마다 별 대꾸를 안 했다. 거기에 대꾸하면 그가 배출하는 독소에 오염될 뿐이다. 내 에너지를 쓰레기한테 낭비하기는 싫으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나를 더럽게 봐서 손을 대지 않는다. 나는 굴욕적인 말들을 들으며 열심히 글을 써서 드디어 세상에 책을 냈다.
나는 이 책을 쓰며 철저히 남편을 이용하였고 내 가슴에 쌓인 상처에 단단히 반창고를 붙여 치료했다.
나의 책은 예상외로 판매가 잘 됐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3쇄를 찍을 때쯤 나는 남편이 올려놓은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그 위에 내 책을 올려놓은 후 집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