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하늘
생각해 보면 아주 어릴 적부터 물건이 비뚤어진 것을 보는 것이 싫었다. 가끔 엄마가 물걸레질을 시키면 화장대 위에 올려져 있던 전화기를 모서리에 맞춰 바르게 놓는다고 다리가 저리도록 앉아있곤 했다. 항상 그렇지만 마음에 드는 순간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시화야, 나와. 저녁 준비 다 됐어.” “응. 이것만 쓰고.” 반듯하게 깔아 문진으로 꼭 눌러놓은 화선지가 아무리 손으로 잡아도 이리저리 움직였다. 손끝이 하얗게 세도록 쥔 붓이 주인 마음도 모르고 이리저리 제멋대로 까만 흔적을 남겨댄다. “아, 좀.” 침착하게 써야 하는데 자꾸 된 발음으로 된 단어를 확 뱉어내고 싶어 입에 힘이 들어간다. “뭐 해.” “깜짝이야.” 위에서 내려오던 붓 자국이 삐죽 혀를 내민다. 약이 오른다. “이거 삐뚤어졌잖아.” 조금 전까지 완벽했는데 놀라는 바람에 글자가 이상해진 것만 같다. 소리를 빽 지르고는 쓰던 종이를 홱 낚아채 옆으로 던졌다. 가벼운 탓에 던져도 속 시원하게 날아가지 않는 것이 답답한 속을 더 꾹꾹 누른다. 두 글자로 된 단어를 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못한 결과물이 착착 쌓여간다. 커다란 화선지는 처음에 반으로 잘리고 또 반으로 잘리다가 나중에는 허여멀건한 부분을 다 내주고서야 쓰임을 다 해 널브러졌다. 신나게 갈아놓았던 먹물이 다 어디로 가고 붓이 벼루에 자꾸 달라붙었다. 잘 써보겠다고 붓끝을 모아 달랜다면서 죄 없는 벼루를 긁어대니 북북 긁어내어 사방으로 치솟은 머리카락처럼 사방으로 퍼졌다. 종이는 없고 밖은 컴컴하고 문방구는 집 앞인데 나가는 게 무서워 엄마에게 종이를 사달라 떼를 썼다. 기다리면서 먹은 저녁밥은 쉴 새 없이 입에 떠 넣은 밥은 무슨 맛인지 느껴지지 않았다.
엄마는 화선지를 책 한 권 엮을 수 있을 만큼 잔뜩 사 왔다. 책상 끄트머리에 맞춰 종이를 잘 올려두고 심호흡을 한 다음 먹을 갈았다. 받아쓰기를 하면 매번 선생님께 글자가 반듯하다고 칭찬을 받곤 했다. 붓글씨라고 못 쓸 이유가 없었다. 선생님이 보고 쓰라고 알려준 책에 나온 글자와 똑같이 써서 친구들이 깜짝 놀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의식이라도 치르는 사람처럼 종이를 가슴 앞에 펼치고 문진을 아래에서부터 눌러 천천히 화선지 위로 올렸다. 먹물을 벼루에 붓고 쓱쓱 먹을 갈면서 책에 나온 글자처럼 쓰일 내 글씨를 상상했다. 다들 입을 떡 하니 벌리고 얼마나 깜짝 놀랄까. 붓끝을 잘 모아서 반듯하게 들고 종이에 내리고 머릿속에 떠올렸던 글자를 썼다. 같은 굵기로 쓰려고 그었던 선이 가늘다가 굵어졌다. 동그라미가 찌그러져 이상하게 벌린 입 모양 같았다. 마무리를 하려고 힘을 빼고 내려 그었더니 이번에는 끝이 휙 말려들어 갔다. 다시 쓰려 뻗은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눈물이 났다. 왜 계속 쓰는데 책 글씨처럼 안 써지는 건지 모르겠다. 쓰다가 망쳤다고 검은 줄을 죽죽 그어댄 종이를 끌어와 지우개로 벅벅 지웠더니 일그러지던 글자가 찢어졌다. “뭐 해. 아직도 써?” 눈을 반쯤 감은 엄마가 잠긴 목소리로 물어온다. 잘 시간이 지났나 싶어 창문을 돌아보니 푸른빛이 돈다. 방금 전에 밥을 먹었는데 이제야 해가 지나 싶었다.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어.” 보란 듯이 망쳐버린 글자가 박힌 종이를 손에 쥐어 꾸깃꾸깃 말아 던져버렸다. “이거 잘 썼네. 이걸로 가져가.” “글자 크기가 다르잖아.” “이것도 괜찮은데?” “끝이 휙 뻗쳐야지. 끝부분이 굵잖아.” “이걸로 해. 그럼.” “안돼. 여기 튀어나왔잖아.”
골라내는 것마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커다랗게 눈에 들어왔다. “가져갈 거 없다고.” 뒤적거리면서 괜찮은 글씨를 찾던 손은 결국 책상 위에 있던 종이를 다 내 던졌다. 속에 쌓였던 답답한 것들이 꽥 터졌다. 종이 모자란 탓을 하는 나 때문에 잠이 깬 엄마는 열지도 않은 문방구 셔터를 두드린 끝에 어제 사고 남은 종이를 다 사 왔다.
아침밥도 거르고 잡았던 붓은 학교 갈 시간이 다 돼서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책상 위에는 손바닥만 한 종이가 남았다. 하얗게 남은 곳을 시커멓게 채우다가 겨우 건져낸 결과였다. 마음에 쏙 드는 건 없었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잘 써진 곳만 보기로 하고 가방에 넣었다.
“어제 써 오라고 했던 붓글씨 써 왔죠? 다들 책상 위에 꺼내보세요.” 뒤에서부터 걷어가면 되지 왜 책상 위에 꺼내라고 하는지 불만 가득한 생각을 한숨으로 뱉어냈다. 길어서 팔랑대는 다른 친구들의 숙제와 다르게 가방에서 꺼낸 종이는 소리도 없이 책상 위에 펼쳐졌다. “우와. 너 되게 잘 썼다.” “책이랑 똑같아.” 옆에 앉은 짝이 하는 말을 듣고 앞에 앉은 아이와 뒤에 있던 아이가 책상 위를 들여다봤다. 몸에 딱 붙게 올려놨던 종이를 잘 보이는 곳에 살짝 밀면서 툭 튀어나왔던 입이 슬그머니 들어가고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