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벌이기를 좋아한다. 할 만해서, 하고 싶어서, 부탁해도 되냐는 말에 그야 물론이라고 고개를 끄덕여버려서, 맡은 일이라서 같은 오만가지 이유를 붙여 할 것을 만들고 하느라 그야말로 1분 1초가 아깝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 사서고생이 되는 일도 허다하다.
어릴 때에는 크리스마스 같은 행사 때 반 친구들에게 한 명도 빠짐없이 엽서를 보낸다고 매년 난리를 떨었다. 때가 되면 사방에 깔리는 붉고 푸른 혹은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느낌 물씬 나는 엽서를 사다 쓰면 되건만. 한 장씩 그림을 그리고 서로 다른 메시지를 쓰느라 잠잘 시간도 아껴가며 책상 앞에서 끙끙거렸다. 회사 다닐 때에는 할 만한 일을 다 받아서 하다 보니 걸핏하면 전철이 끊길 시간에 짐을 챙겨 뛰어 나가야 했다. 하다 하다 버릇이 되었는가 원래 태어날 때부터 바쁘게 움직일 팔자를 타고 태어난 건가. 결혼을 하고 나서는 아이를 네 명이나 낳았는데 내 시간은 줄었는데 골라서 할 수 있는 일은 몇 곱절로 늘었으니 참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해는 초등학교 임원이자 유치원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느라 말 그대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시작은 만물이 파릇하게 싹을 틔워내는 봄에 얼굴을 마주 보고 인사하는 것부터였다. 준비 땅! 출발 신호가 울렸다. 미리부터 주먹 꼭 쥐고 달리기 태세로 준비하고 있던 나는 바지런히 달리기 시작했다. 헉헉 대면서 땅을 박차는 다리를 멈추지 않는다. 몇 날 며칠 어두운 밤에 깔딱깔딱 키보드를 두드리며 홍보지를 만들고 손수 그림까지 그려가며 지도 작성과 팸플릿 만드는데 정성을 쏟았다. 뻣뻣한 막대기 몸으로 삐그덕 대기나 할 줄 아는 몸을 흔들어 달래며 아이들 앞에서 춤도 췄다. 하늘이 파랗게 높아지고 아침 공기가 서늘하던 11월. 이른 아침부터 모여 천명이 넘는 손님을 맞이하는 유치원 이벤트를 치러냈다. 달리느라 지친 다리는 갈지자로 뻗어 나갈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갔다.
“있잖아. 지난번에 맡았던 일 힘들지 않았어?”
문득 치고 들어온 질문에 머릿속이 하얗게 새었다. 떠오르는 것이 하나도 없어 ‘뭐가?’ 같은 멍청한 질문을 돌려줬다.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것이라니 감상은커녕 그게 뭐였는지 생각하는데도 한참 시간을 들여야 했다. 그제야 알았다. 손에 들어온 일을 끝내버린 뒤에는 기억 저 깊숙한 곳에 갈무리해 버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마치 만들기를 하면서 책상 한가득 종이 조각이며 셀로판테이프의 일부며 늘어놨다가 원하는 것이 완성되고 나서 싹 치워 버버리는 것처럼. 그 뒤에 사방에 흩어져 있던 종이가 뭐에 쓰다 남겨졌던 건지 하나하나 기억하겠느냔 말이지. 달리기 할 때도 어디 뒤를 보고 달리지는 않는다. 오직 앞에 놓인 골을 목표로 나아갈 뿐. 결과가 어떻든 끝까지 달리고 난 뒤에 다음 골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지나간 길을 돼 밟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이 클라이맥스이기 때문이다. 당장하고 있는 것을 후회 없이 끝내고 다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산 넘어 산처럼 준비되어 있는 골을 정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므로 새로운 홍보지 작업을 하고 이벤트의 도우미를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유치원 문턱을 드나드는 지금, 헉헉 거리고는 있지만 이곳은 최고의 순간이다. 뒤돌아보지 않는 눈은 앞에 펼쳐진 골을 똑바로 바라보고 멈추지 않는 다리는 다음 클라이맥스를 향해 쭉 뻗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최고의 순간은 언제나 벅차고 매번 뿌듯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