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럴 때가 있지.

거실 한쪽에 있는 식탁 앞에 자주 앉는다. 때가 되면 밥을 차려 먹고,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느라 가위며 천이며 온갖 것들을 늘어놓고 손을 움직이고, 자주 컴퓨터를 올려놓고 들여다본다. 아이들이 있건 없건 앉아 있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기만 하면 거실 전체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뿐인가. 살짝 정면을 향해 눈을 들면 커다란 창 너머로 푸릇한 잎을 단 나무와 좁은 도로, 집 같은 것들도 보인다. 창문에 달린 격자는 바깥 풍경을 보는 나를 방해할 힘이 없다. 그래서 나는 식탁 앞자리를 명당이라고 부르고 나만을 위한 공간이라고도 한다.


변덕이 죽 끓듯 때때로 초원처럼 넓게 탁 트인 자리가 싫다고 불만을 터뜨릴 때가 있다.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신나게 놀던 아이들이 별 것도 아닌 이유를 가지고 달려올 때.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시도 때도 없이 와서 미주알고주알 떠들 때가 주로 그렇다. 매일이 다르게 쑥쑥 크는 아이들이 작은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와서 열심히 종알종알 거리는 것은 귀엽다. 귀여운데 나의 기분과 상황에 상관없이 사시사철 밤낮 그럴 순 없다.


아이들 목소리는 늘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동굴에 사는 것도 아닌데 자주 귀가 먹먹하다. 웃거나 울거나 투닥대거나 나에게서 떨어진 곳에서 들리기만 한다면 그것은 배경음으로 꽤 적절하다. 잘 모여 있구나 가늠하게 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친근하게 부르며 가까워지는 목소리가 때로는 귓가에서 다 튕겨 버리고 싶을 만큼 귀찮을 때가 있다. 가끔. 어쩌면 조금 자주. 괜한 짜증이 섞인 대답을 하게 되는 때다. 듣지 않으려는 귀를 억지로 열고 소리를 집어넣어 생각까지 해야 하니 당연한 결과다.


한편으로는 엄마면서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무성의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웃던 아이의 얼굴이 내 대답하나로 일그러져버리면 자괴감마저 든다. 빠르게 내 기분을 인정하는 날은 있는 대로 설명을 한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방해받아서 싫었다는 둥. 태도를 급 바꾼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고 스스로의 기분을 인정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으니 모른 척 흘려보내는 날이 더 많다. 그럴 땐 내 자리에 보이지 않는 막이 절로 처졌으면 하는 엉뚱한 바람을 하곤 한다. 또 그랬네.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불쑥 끼어들지만 뭐, 항상 좋은 일만 생기는 것도 아닌데 가끔 그럴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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